요한복음 16:1-15

요한복음 16:1-15 (공동번역)

요16:1-15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며 제자들을 출교시키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다는 말씀에 제자들은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하나님도, 예수도 모르는 세상에 예수 없이 남을 제자들은 근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반복해서 보혜사 성령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성도는 성령의 도움없이 환난을 인내할 수 없고, 인내로 연단을, 연단으로 소망을 이룰 수 없다.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보혜사 예수께서 물리적으로 함께 계섰다면, 앞으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영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신 예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성도에게 알려주시는 성령. 아버지와 예수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은 같다. 삼위 하나님이 같은 말씀을 소유하시고 같은 말씀으로 교제하신다. 성도는 (제자들과 같이) 삼위하나님의 말씀의 교제에 초대된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이 성도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말씀의 교제를 나눌 때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다.

요한북음 15:18-27

요한북음 15:18-27 (공동번역)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계명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계명을 실천하는 제자들을 미워할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자신을 먼저 미워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이 서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서 가려내셨기 때문이다. 종이 주인보다 나을 수 없다. 따라서 세상이 주님을 박해했으면  제자들도 박해할 것이다. 만약 세상이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면 제자들의 말도 지킬 것이다. 그들은 제자들을 주님 대하듯 박해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를 보내신 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자기 죄를 (예수를 보내신 분을 모르는) 변명할 길이 없게 되었다. 예수를 미워 하는 자는 아버지까지도 미워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한 일을 보고서도 그들은 예수와 아버지까지 미워 한다. 그들은 성경의 기록된 대로 까닭없이 예수를 미워 하였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청하여 제자들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예수를 증언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제자들도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요15:18-27

//임마누엘! 예수 안에 거하면 예수와 함께 미움을 받게 된다. 성도는 예수와 공동운명체다.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픽박을 받게 된다. 세상은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지키기 않는다. 예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아무런 까닭없이 예수를 미워한다. 그들이 예수도 모르고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핑계치 못한다. 삼위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미 유죄다. //한편으로 예수를 알고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면 영생이다. (임마누엘! 이것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마지막 때는 먼 미래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처음 오심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가려내신 성도라면 끝까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고난 가운데서 진리의 성령님과 함께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삶이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려라!

요한복음 15:9-17

요한복음 15:9-17(공동번역)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예수도 제자들을 사랑하셨으니 제자들에게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하신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을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도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의 기쁨이듯이, 계명을 지켜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야 말로 제자들의 기쁨이다. 우리에게도 이보다 더 큰 (충만한) 기쁨은 없다. 예수의 계명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이다. 이것이 사랑의 시금석이다.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곧 예수의 친구라고 하신다. 예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명령(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다분히 조건적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인데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신다.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제자들에게 다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친구로 택해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셔서 아버지의 뜻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니, 무엇을 구하든 다 받게 되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라고 재차 명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시며 친구삼아 주셨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기 전에, 친구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에 친구라고 불러주셨다. (더이상 조건적이 아니다.) 제자들이 보혜사 성령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일까? 정말로 제자들은 목숨을 버리기까지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을 친구삼는 삶을 살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을 알려주느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조건만 따지다 사랑을 못하며 살고 있다. ㅠㅠ 그래서 또 다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삼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15:1-8

요한복음 15:1-8 (공동번역)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로지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떠난 사람은 잘려 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요15:1-8
//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이 잘 가꾸어주신 가지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잘 가꾸어 주시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잘 가꾸어 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열매를 맺지 못해 쳐내지는 가지는 결국은 잘 가꾸어 주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가지는 잘려나가 불에 던져 태워지고 만다. //하나님이 잘 가꾸어 주시는 이유는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참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는다면 가꿈을 받을 수 없고, 가꿈을 받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곧 가지가 물리적으로 포도나무에 붙어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도나무로부터 양분을 받아야 한다. 포도나무로부터 양분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7절 말씀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 두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구하는 것이 우리의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곧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니,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은 당연하다. ////임마누엘은 결국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말씀을 풀어주시는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다.

요한복음 14:25-31

요한복음 14:25-31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제 아버지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주실 협조자 성령께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모든 이야기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되새기게 해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고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평화를 주셨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그러니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갔다가 제자들에게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보다 훌륭하신 아버지께로 가니, 제자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을 미리 알려주니 그 일이 일어날 때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셨다. 세상 권력자들이 가까이 오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으니 일어나 가자고 하셨다.

요14:25-31
//임마누엘을 누리기 위해서는 협조자 성령님이 필수다.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 안에, 예수를 우리 안에 모시고 사귀는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가시면 물리적 임마누엘을 끝이난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영적 임마누엘만 누릴 수 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다. //물리적 임마누엘이 끝나면 제자들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영적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다. 물리적 임마누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임마누엘이다. 그래서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영적 임마누엘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하셨듯이, 우리도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삼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