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1-11

요한복음 13:1-11 (공동번역)

과월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드셨다.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맡겨주신 것과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시몬 베드로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시다니요?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왜 자신이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극구 안 된다고 사양했다. 예수께서는 씻어주지 않으면 자신과 이제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라고 하셨다. 제자들 모두 그처럼 깨끗하다고 말씀하시고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덧붙이셨다. 예수께서 이미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요13:1-11
//예수님은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차별이 없으셨다. 심지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가룟 유다마저 사랑하셨다. 그의 발도 씻어 주셨다. //유월절 만찬에서의 세족식은 누가복음 12:36-37 말씀을 떠올린다. 예수께서는 깨어서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깨어 있지도 않으면서 이 복을 이미 누린 것이다. 예수와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복을 누렸다. //그러나 영생은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 영생이다. 깨끗해지는 것이 구원받는 것이라면, 이 구원을 지속하는 것이 영생이다. 깨끗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암시다. 깨끗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더러워진다. //시인은 시편 119:9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하고 (자문자답하며) 노래한다. 결국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곧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악마가 심어준 생각이 마음에 들어와 또아리를 튼다. 가룟 유다가 그랬다. //우리는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영적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내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고 내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담아야 한다. 내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담는 것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라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내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2:37-50

요한복음 12:37-50 (공동번역)

예수께서 그렇게도 많은 기적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저자 요한은 이사야가 ‘주여, 우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으며 주께서 보여주신 능력을 누가 깨달았습니?’ 한 말씀의 성취라고 설명했다. 이사야가 ‘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마음을 둔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눈을 가지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여 끝내 나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고 나한테 온전히 고쳐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고 기록한 말씀의 성취다. 이사야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며 또 예수를 가리켜서 한 말이었다.
유다 지도자들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두려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드러내 놓고 하지 못했다. 회당에서 쫓겨날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 인간이 주는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까지 믿는 것이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새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친히 명하시는 대로 말했다. 나는 그 명령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일러주신 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요12:37-50
//기적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지만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한 까닭이다. 기적을 통하여 예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기적을 알아보지도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이랄까)유다 지도자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이들은 출교를 두려워하여 드러내놓고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 사람들이 주는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이런 숨은 믿음을 크게 정죄하지는 않으신다. 심지어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아도 직접 (당장은) 단죄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우선 구원하시고 보신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끝날에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말씀을 듣고 지켜야 영생인데,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으면 영생이 아닌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단죄가 유예될 수 있으나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명령이, 영생의 말씀이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셨다. 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배척하는 것이 된다. 배척하는 사람의 결국은 유죄다.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였어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았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다. 평생 믿음 생활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열심으로 삼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열심(뜻)에 순종해야 한다.

요한복음 12:27-36

요한복음 12:27-36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고 하신다. 아버지께 이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원해야 할까? 그러나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오셨다고 마음을 다잡으신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라고 기도한다. 그 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시겠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군중들은 하늘 음성을 천둥소리로 혹은 천사가 예수께 말하는 소리로 들었다. 예수께서는 하늘 음성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라고 하셨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자신에게 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다.
그때 군중이 율법서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사시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야 한다고 하시니 무슨 뜻이며, 그 사람의 아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빛이 그들과 잠시 같이 있으니 빛이 있는 동안 걸으라고 하셨다. 그래야 어둠이 그들을 덮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니 빛이 있는 동안 빛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라고 하셨다. 그리고 몸을 숨기셨다. 예수께서 그렇게도 많은 기적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건만 그들은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요12:27-36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고난의 때를 면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을 감내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받을 큰 영광이란 결국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내가 영광를 받아야 삼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 살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높임을) 받으신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자 아버지께서 영광을 드러내셨고 또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늘 음성을 들려주신다. 예수께서 왕으로 추대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시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이라고 확인시켜주신다.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는 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라고 하신다. 이 세상 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만왕의 왕이 되실 때다. (우리가 세상의 통치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도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룰 수 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땅에서 영원히 왕 되신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높이 들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높이 들리신다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심을 의미하는지, 부활 승천하여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것인지, 혹은 중의적인지 상관 없다.) 이 땅에서 빛으로 사신 예수를 따르는 삶이 곧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래야 어둠이 덮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이다. 우리 역시 예수를 따라 빛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0-26

요한복음 12:20-26(공동번역)

명절 때 예배를 드리러 올라왔던 사람들 중 그리스 사람도 몇이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 베싸이다에서 온 필립보에게 예수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에게 먼저 의논한 후 둘이 함께 예수께 그리스 사람들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12:20-26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예수께서 받으실 큰 영광이란 무엇인가? 2024년 작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때 가장 큰 영광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자. 물론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을 받은 사람은 노벨이다. 노벨의 이름이 온 세계로부터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받을 큰 영광이란, 실상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열방으로부터 받으실 영광이다.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다. 예수의 영광은 부활승천으로 뒤따라 왔을뿐이다. 삼위 하나님으로 받으실 영광이다. //출애굽도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제일 목적일지 모르나 애굽사람들에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홍해의 갈라짐도 애굽과 열방에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신)이 참 신(하나님)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큰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심으로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큰 영광을 열매 맺는 것으로 풀어가신다. 자신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제자의 길도 예수를 따라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를 따를 때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주 예수를 섬길 때, 우리도 높임을 받는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요한복음 12:12-19

요한복음 12:12-19 (공동번역)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와 있던 군중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는 소식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 찬미받으소서!’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오셨다. 이것은 성서에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 임금이 너에게로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당시에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다음에야 이것이 모두 예수를 두고 기록된 것이며 또 이런 일들이 그대로 예수께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께서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증언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마중 나간 이유도 예수게서 기적을 보여주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따라간다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수포로 돌아갈 것을 걱정했다.

요12:12-19
//왕으로 오시는 분과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 두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군중들은 왕을 기대했지만 정작 예수께서는 성서대로(슥9:9)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요한은 제자들도 당시에는 이 성서말씀을 깨닫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제자들도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왕으로 오시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가 왕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언했을 것이다. 이미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며 걱정한 이유도 백성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가랴 9:9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정복자 왕으로 오시지 않는다. 정의를 세우고 겸비한 왕으로 오신다. 병거와 군마를 없애고 활을 꺾으시고 평화를 선포하시는 왕으로 오신다. 그래서 말이나 병거가 아니라 새깨 나귀를 타고 오신다. 개선장군을 맞이하려는 백성들의 기대와는 사뭇 차이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도 정의와 평화로 다스림을 받는 나라다. 내가, 혹은 우리만 복 받는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온 세상이) 복받는 나라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높아져서는 안 된다. 평탄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우리 교회가 예수님처럼 겸비해야 한다. 더 낮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