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16-24

예레미야 26:16-24 (새번역)

주님의 경고를 전한 예레미야에게 고관들과 백성들은 한 발 물러선다. 그들은 에레미야를 죽일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주님의 이름으로 재앙과 저주의 예언을 했다고 인정했다. 지방의 장로들  몇 사람이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성전이 황폐한 언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미가를 언급했다. 그때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온 유다 백성이 미가를 죽이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하여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다시 경고성 예언을 하니 불순종하면 재앙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예레미야 말고도 우리야라는 예언자도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했다. (우리야는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로 소개 된다.) 그러자 여호야김 왕이 그를 죽이려고 찾아 다녔다. 우리야는 이집트로 도망하였지만 여호야김 왕이 엘라단에게 수행원을 딸려서 이집트로 보내 우리야를 잡아왔다. 여호야김 왕은 우리야를 칼로 죽이고 시체를 평민의 공동묘지에 던졌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보호로 그를 죽이려는 백성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고성 예언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경고성 예언에서 언급하신 재앙을 거두신다. 그러나 징벌적 예언의 말씀(재앙)은 성취되고야 만다. 그러니 경고성 예언의 말씀을 들었을 때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재앙을 면할 수 있다. 징벌적 예언의 말씀까지 듣게 된다면, 그때도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남은자에 속할 가능성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순종없는 생명은 없다. //경고성 예언을 한 예언자는 예레미야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야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야와 예레미야의 운명은 달랐다. 우리야는 이집트까지 도망갔으나 붙잡혀와 죽임을 당하고, 예레미야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우리야가 비겁하게 이집트로 도망쳐서 죽임을 당하고 예레미야는 당당하게 맞서 보호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엘리야도 이세벨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던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법이 달랐다. 젊었을 때는 예레미야의 운명이 많이 낫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야의 운명을 따르고 싶다. //두 왕. 히스기야 왕은 경고성 예언을 듣고 돌이켰다. 그러자 하나님도 재앙을 거두셨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재앙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왕을 따르는 것이 복되다.

예레미야 26:1-15

예레미야 26:1-15 (새번역)

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임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자에게 주님의 명령을 가감없이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면 주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키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고 율법을 행하지 않았고 주님이 보내신 주님의 종 선지자들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예루살렘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에게 말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붙잡고 죽이려고 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유다의 고관들과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는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고발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한 말은 주님의 말씀이라고 변론했다. 그런즉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고 권면한다. 청종하면 주님께서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말했다. 할 말을 다한 예레미야는 자신을 죽이려면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자신을 죽이면 무죄한 피를 너희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다시 한번 주님께서 자신을 보내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경고성 예언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면 주님은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키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경고를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성전도무너지고 예루살렘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고관과 백성들은 재앙과 저주를 담은  예언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다.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라고 권면한다. 청종하면 주님께서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말한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담대히 말한다. 그러나 무죄한 자신을 죽이면 피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경고의 말씀을 듣는다면 아직까지 기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8:1-31

사도행전 28:1-31

바울일행은 몰타 섬에 올라 목숨을 구했다. 섬 사람들이 바울일행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추운 날씨에 불을 피워 맞아주었다. 불을 피우자 뜨거운 기운에 독사가 튀어 나와 바울의 손에 달라 붙었다. 섬 사람들은 바울이 바다에서 살아 나왔지만 정의의 신은 바울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 말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버렸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바울이 독이 올라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섬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를 신이라고 하였다. 섬의 추장 보블리오는 농장으로 바울일행을 불러 사흘동안 친절하게 대접했다. 마침 추장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었는데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해주었다. 이 일로 섬에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고침을 받았다. 섬 사람들은 극진하게 바울일행을 대접했고 떠날 때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다 실어 주었다.

몰타에서 석달동안 겨울을 보내고 디오스구로라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출항했다. 수라구사 항에서 사흘 – 레기온 – 보디올에 이르러 신도들을 만나 일주일 동안 교제한 후 로마로 갔다. 로마 신도들이 바울일행의 소시글 듣고 마중나왔다. 바울은 로마 신도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로마에서 바울 일행은 한 병사의 감시하에 따로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갇히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로 자기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대 지도자들은 유대로부터 바울에 관하여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바울에 관한 나쁜 소문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종파에 대한 반대 소리가 높다고 말하며, 바울의 생각을 듣기 원한다고 말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만날 날짜를 정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나라를 엄숙히 증언했다. 그리고 성서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했다. 어떤 이는 바울의 말을 받아들였고 더러는 믿지 않았다. 바울은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이방사람에게 전파되었으며, 이방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셋집에서 이 년동안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을 살려주셨음은, 독사를 만진 바울이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사건으로 확정되었다. 섬 사람들은 바울은 신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바울은 섬 사람들이 자신을 신이라고 경배하지 않는 이상 굳이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권세를 베풀었다. 바울은 임마누엘을 누렸다.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서로 문안했던 로마의 형제자매들을 대면하여 만났다. 바울은 이들과 만나 하나님께 감사했고 용기를 얻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엄숙히 증언할 수 있었다. 바울 사역의 핵심은 (구약)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구원의 소식이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이방인에게도 열려있다고 말했다. 바울은 유대인 이방인 차별하지 않고 영접했다. 

사도행전 27:21-44

사도행전 27:21-44 (공동번역)

살아 돌아갈 희망을 아주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바울로는 아니었다. 바울로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고 그레데 섬을 떠나지 않았으면 이런 재난과 손실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뗐다. 그리고 이제라도 제발 기운을 내라고 말했다. 배을 잃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로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시는 하느님,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전해준 말이라고 했다. 하느님의 천사가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했으며, 바울로 자신이 반드시 황제 앞에 서게 될 것이며, 동행하는 여러분을 하느님께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 주셨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니 기운을 내라고 했다.바울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성취 된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곧 어떤 섬에 밀려가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류한지 열나흘째 되던 날 밤, 선원들은 육지가 가깝다는 짐작이 들었다. 깊이를 재어보니 스무 길이었다. 좀 더 나아가 재어보니 열다섯 길이었다. 배은 암초에 걸리지 않기 위해 네개의 닻을 내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선원들은 거룻배로 탈출하려고 했다. 그때 바울로는 율리오에게 선원들이 이 배를 떠나가면 군인들은 살아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밧줄을 끊어 거룻배를 떼어버렸다. 동이 틀 무렵, 바울로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했다. 먹어야만 살 수 있으며,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하고 떼어서 먹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모두 음식을 먹었다. 배에는 모두 이백칠심육명이 타고 있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배를 가벽게 하려고 식량도 바다에 던졌다. 날이 밝았다. 해변이 보여 그곳에 배를 대기로 하고 해변 쪽으로 배를 몰았다. 그런데 배가 모래톱에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할까 하여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율리오는 바울로를 살리기 위해 군인들의 의견을 꺾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뛰어내려 육지로 올라가라고 명려했다. 나머지 사람은 부서진 배 조각에 매달려 육지로 올라갔다. 이렇게 모두 무사히 육지로 올라갔다.

//갈릴리 호수(바다)에서 광풍을 만난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난리였다. 제자들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몰랐듯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몰랐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바울은 자신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배에 탄 사람들에게 선포했다. 그레데를 떠나지 말자고 한 것도 배는 잃어도 생명은 잃지 않는다는 말도 하나님의 천사의 말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은 믿는다고 선언한다. (바울의 믿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다에서 살아돌아갈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이 마침내 모두 무사히 육지로 올라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바울과 친구들이 로마를 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대로 살아가면 이웃을 살린다.

사도행전 27:1-20

사도행전 27:1-20 (공동번역)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의 여정은 유다 땅에서 2년여 멈췄다가 그디어 다시 시작한다. 아그리빠 왕와 베스도 총독은 바울로와 다른 죄수 몇을 율리오라는 친위대의 백인대장에게 념겨 주어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에 태웠다. 바울로의 친구들도 동선했다. 아드라키티움에서 온 배 한 척을 타고 떠났다. 바울로 일행 중에는 데살로니카 출신인 마케도니아 사람 아리스다르코도 있었다. 이튿날 배가 시돈에 닿았을 때 율리오는 바울이 시돈에 있는 친구들을 방문할 수 있게 친절을 베풀었고, 바울로의 친구들은 바울로를 잘 돌보아 주었다.  시돈을 떠난 후 역풍을 만나 키프로스 섬을 왼쪽으로 기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필리아 앞바다를 지나 리키아에 있는 미라 항구에 닿았다. 거기에 마침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가 있어서 율리오는 바울로 일행을 그 배에 태웠다. 여러날 후에 크니드시 앞바다까지 갔으나 역풍으로 살모네 앞바다를 지나 그레데 섬을 오른쪽으로 끼고 라새아 시에 가까운 좋은 항구에 겨우 닿았다. 단식일로 정해진 추분이 지나 항해를 계속하기가 무척 위태롭다고 바울로가 말했다. 그러나 율리오는 바울로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 좋은 항구는 겨울을 날 만한 곳이 못되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 출항해서 페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페닉스는 그레데 섬에 있는 항구로 였다. 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와 닻을 올리고 해안을 따라 조심스럽게 항해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섬 쪽에서 유라퀼로라는 태풍이 불어와서 배가 바람에 휘말렸다.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가우다라는 조그만 섬을 끼고가는 동안 거룻배를 간신히 바로 잡아 끌어 올렸으나 그대로 가다가는 리비아 해안의 모래바닥에 처박힐 염려가 있어서 돛을 내리고 계속 표류했다. 태풍에 시달리다 못해 화물을 바닷속으로 버려야 했고 그 다음 날에는 선원들이 배의 장비도 바다에 내 던졌다. 이렇게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태풍만 거세게 불어닥쳐서 마침내 살아 돌아갈 희망을 아주 잃고 말았다.

//로마로의 여정은 길고 험난하다. 바울은 유다 땅에서만 2년여의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성령께서 이미 알려주신 대로다. 물론 갇힌 상황에서도 바울은 벨릭스,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고, 친구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갇힌 상태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다. 성령의 구름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허송세월은 아니다. //드디어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닷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결박당한 신분이지만 로마행 배를 탄 바울의 입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배 저배 바꿔타며 로마로 가는 길은 험한 길이었어도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니 바울에게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풍에 돛단 배처럼 항해가 계속된 것은 아니다. 누가는 항해일지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는 데, 바울의 여정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나 바울의 이송을 맡은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의견을 따른다. 결국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는 태풍를 만나 표류한다. 살아 돌아갈 희망마저 빼앗을 정도의 광풍이었다. 전문가들의 판단은 한계가 분명하다. 희망이 안 보이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있다. 주님이 곧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