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1-18

신명기 23:1-18

주님의 총회 회원 자격이 없는 사람(남자)가 나열 된다.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 사생아, 사생아의 십대 자손까지, 이스라엘을 환대하지 않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자격이 없다. 에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에돔 사람은 친족이다. 이집트 사람을 미워해서도 한 된다.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태어난 삼대 자손들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될 수 있다.

적과 대치 중일 때는 어떤 악한 일도 스스로 삼가야 한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진 밖으로 나가서 머물렀다가 해질 무렵 목욕을 하고 해 진 다음에야 진으로 들어올 수 있다. 변소는 진 밖에 만들어 놓고, 삽을 가지고 용변을 보러 가서 용변을 보기 전에 땅을 파고 용변을 본 후에는 배설물을 덮어야 한다. 

주 하나님이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진 안을 두루 다니시기 때문에 진은 깨끗하게 유지 되어야 한다. 주님은 더러운 것을 보시면 백성들에게서 떠나시고 말 것이다. 주님이 떠나지 않도록 진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하신다.

어떤 종이 주인을 피해 도망해 오면 그 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가 좋아하는 곳을 택하게 하여 함께 살도록 해주고 그를 압제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딸은 창녀가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남창이 될 수 없다. 창녀와 남창이 번 돈은 주 하나님의 성전에 (서원을 갚는) 헌금으로 드릴 수 없다. 이것은 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간음으로 출생한 자녀들은 총회 회원 자격이 없다. (고환이 터지고 음경이 잘린 사람은 왜? 사고가 아니고 고의로 그렇게 했다면 남색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환대하지 않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도 주님의 총회 회원 자격이 없다. 그러나 //에돔 사람과 이집트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될 수 있다. 에돔 사람은 친족(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은? 가뭄에 굶주린 이스라엘을 환대해 주었다. 좋았던 나빴던 430년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삼대가 지나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을 보시면 백성들에게서 떠나신다. 따라서 주님이 떠나시지 않도록 성결해야 한다. 공동체적으로 성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성결해야 한다. 전쟁의 승패는 임마누엘에 달렸다. 영적전쟁의 승패도 마찬가지다.

//성결의 예로 종들을 압제하면 안 된다고 하신다.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성결의 증거라고 하신다. //성결의 두번째 예로 성매매 금지를 언급하신다. 성매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창녀와 남창이 될 수 없다고 하신다. 다시한번 주님의 백성들은 부부관계 외에는 모두 간음이라는 것을 선언하신다. 

신명기 22:13-30

신명기 22:13-30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아 동침한 뒤에 그 여자가 미워졌다. 그래서 그 여자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누명을 씌워 비방하는 소문을 퍼뜨리면, 그 여자의 부모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기 딸이 처녀임을 증명하는 표를 제시해야 한다. 성읍의 장로들은 증표를 보고 그 남자를 붙잡아 때리고 벌금으로 은 백세겔을 받아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어야 한다. 그 여자는 계속해서 그 남자의 아내가 되고 그 남자는 이혼할 수 없다.
그 남자의 주장이 참 될 경우, 곧 그 여자가 처녀임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여자를 간음죄로 끌어내고, 성 사람들은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악의 뿌리를 뽑으라고 하신다.
어떤 남자가 남의 아내와 정을 통하다가 들킨 경우 정을 통한 남자와 여자를 다 죽여서 이스라엘에서 이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약혼을 한 여자를 다른 남자가 성 안에서 만나 정을 통하였을 경 두 사람을 성문 밖으로 끌어다 놓고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이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러나 들에서 남자가 약혼한 여자를 욕보였을 경우에는 남자만 죽인다. 여자에게는 소리 질러도 구해 줄 사람이 없어 불가항력적이라 죽일 만한 죄가 없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이웃을 해치려고 일어나 그 이웃을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욕보이다 붙잡혔을 때, 그 남자는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지불하고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하고 평생 그 여자와 이혼할 수 없다.
아무도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지 못하며,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부부관계를 깨뜨리고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모든 종류의 간음을 싫어하신다. 오늘날과 다르게 간음을 살인죄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벌하신다. 이렇게 해서라도 공동체에 있는 악의 뿌리를 뽑게 하신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섹스가 곧 사랑이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ㅠㅠ 돈과 섹스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다. ㅠㅠ 생각해보니 모세 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성도라면 하나님과 여러 성도들 앞에서 한 결혼서약 지켜야 한다. 성관계는 부부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이성성애는 (동성성애와 마찬가지로) 제거해야 할 악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09

신명기 22:1-12

신명기 22:1-12

1-4 남의 아픔을 못 본 체하지 말고 (오히려) 반드시 형제를 도와 일으켜라. //이웃사랑이 곧 하나님을 사랑(예배)하는 것이다.

5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하지 말아라. 성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6-8 새끼는 취해도 새끼를 품은 어미 새는 놓아주어야 한다. //치어는 놓아주고 다 자란 물고기만 잡는 것과 대비되지만, 이 역시 동물의 멸절을 막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닐까? 

9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아라. //왜?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지혜를 혼합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듯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적용해 본다.

10-11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메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서 옷을 짜지 말아라. //이 역시 사람의 꾀다. 창조적인 생각이 아니라 파괴적이다. 순간적인 편리함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12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어 달아라. //겉옷에 네 귀가 있다는 것은 겉옷이 망토와 같다는 것이다. 입는다기보다 덮는 용도가 아닐까? 하여간 술을 다는 목적은 말씀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말씀 안에 살라고 하신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08

신명기 21:1-23

신명기 21:1-23

1-9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은 공동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성경은 살인을 개인적인 죄가 아니라 공동체적 문제라고 인식하는 증거다. 무죄한 사람이 죽은 책임을 공동체적으로 지는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이다.

10-14 여자 포로를 아내로 맞이해도 된다. 아내로 삼기 위해서는 아내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포로로 올 때 입었던 옷을 벗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달 동안  자기 부모를  생각하며 애곡하게 해야 한다. 그 후에야 동침하여 부부가 될 수 있다. 만약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여자는 자유자가 된다. 그 여자를 종으로 팔아서는 안 된다.

15-17 장자권 – 두 아내를 둔 남자의 경우 장자권은  먼저 태어난 아들에게 있다. 맏아들을 제쳐놓고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에게 장자권을 줄 수 없다.

18-21 불효자는 돌로 쳐서 죽여할 악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함부로 불효하는 아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아들을 성읍의 장로들에게 데려가서 고발 한 후에,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 

22-23 죄를 지어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나, 밤을 지내지 말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람이다. 약속의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살인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공동체의 문제로 본다. 살인자를 죽이는 것은 개인적의 잘못에 대한 벌이라기 보다 공동체에 있는 악의 뿌리를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자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공동체 전체가 죄값을 치러야 한다. //포로로 잡혀온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 결혼은 신분상승?의 효과를 가져온다. 포로로 잡혀왔으면 종의 신분이지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됨으로써 종의 신분에서 자유하게 된다. 심지어 한번 결혼이 성립하면, 이후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도 다시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이 된다. (아리따운 여자 포로를 성적 노리개로 삼다 버리지 말라는 교훈도 있을듯) //장자권은 하늘이 부여한다. 육신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자권을 결정할 수 없다. //불효자는 돌로쳐 죽여야 한다. 불효자는  부모공경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 역시 부모의 권한이 아니라 공동체가 결정하고 집행할 문제다. //죽은 자를 나무에 달아 일벌백계로 삼아야 하지만 그날로 묻어야 약속의 땅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이 모든 규례는 약속의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성도는 개인으로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 그리스도 예수로 옷입고,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단장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07

신명기 20

전쟁에 나가 적군의 병력이 아군의 병력보다 많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과도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은 싸움터에 나가가 전에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을 해야 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 대적과 싸우러  나갈 때에, 마음에 겁내지 말며, 무서워 말며, 당황하지 말며, 그들 앞에서 떨지 말아라.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서, 너희 대적을 치시고, 너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다.]

장교들은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해야 한다.

[집을 짓고 준공식을 하지 못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 그가 전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준공식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아직 그 열매 맛을 보지 못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라. 그가 전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열매를 맛보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약혼사람도 돌아가거라. 그가 전사함으로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전쟁이 두려워서 겁이 나면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다른 형제의 사기만 떨어진다.]

장교들이 이렇게 돌아갈 사람을 추리고 나면 지휘자를 임명해야 한다. 

만약 전쟁을 해야 하면 먼저 그 성읍에 평화를 청하라고 하신다. 그 성읍이 평화를 받아들이면 그들을 노비로 삼으라고 하신다. 그 성읍이 화친을 거부하고 싸우러 나오면, 그 성읍을 포위하고 공격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 성읍을 넘겨 주셨으니 그 성읍에 있는 남자는 모두 칼로 쳐서 죽이라고 하신다. 다만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과 그 밖에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가져도 된다. 전리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마음대로 먹고 쓸 수가 있다. 이 정복의 원리를 근원 모든 성읍들에 대해서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산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 있는 성읍들을 점령하였을 때는 숨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면 안 된다.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는 온갖 역겨운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할 것이다.

성을 공격할 때 거기에 있는 과일 나무들을 찍어버려서는 안 된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들은 찍어 전쟁물자로 사용해도 좋다고 하신다.

//전쟁보다 화친이 먼저다. 물론 이스라엘에겐 승리의 화친이다. 항복을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항복한 사람들을 노예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포함시키라고 하신다. 그 당시의 노예를 오늘날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평화를 선택한 그들은 생명을 구원받았다. 오늘날도 평화가 먼저여야 한다. 평화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전쟁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가나안 정복전쟁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전쟁의 목적은 상대를 진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악을 진멸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민족과 나라와 종교에 대하여 선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나의 몸의 일부, 우리 교회 공동체에 대해 먼저 적용해야 한다. 이웃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비와 관용으로 대해야 하고 ,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신체 일부를 자르거나 뽑아 버리고서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엄격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