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9:24-51

여호수아 19:24-51

다섯째 몫은 아셀 후손이 유산으로 제비뽑았다. 여섯째 몫은 납달리 후손들이 유산으로 받았다. 마지막 몫은 단 지파의 후손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단 후손이 받은 영토가 좁아서 모두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 후손은 레셈으로 쳐 올라가 그 성을 차지하고 살았다.
이렇게 각 지역을 따라 땅 분배를 마쳤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받은 유산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한 몫을 주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딤낫세라 성을 받아 그 성을 재건하고 거기에 정착했다. 이렇게 실로에서의 땅 분배가 끝났다.

여호수아 19:24-51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지시(약속)대로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요구했건 것처럼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요구해서 차지한다. 헤브론 산지처럼 험했는지 그곳 사람들이 아낙자손처럼 컸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100세 인생을 살아가는 여호수아 역시 (살기힘든?) 재건해야 할 산지를 배정받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땅을 분배한 여호수아가 스스로 자기 몫의 땅을 분배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기업으로 주었다는 기록이 인상적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챙겨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챙겨 놓으신 것을 받으면 된다.
//땅 배정이 갈렙 이야기로 시작하여 여호수아에게서 끝났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관은 의도적으로 제비뽑기가 아닌 약속으로 기업을 얻은 이야기로 기업(땅)분배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하나님나라는 모든 것이 예정되었지만 (예정? 뭔지 모르고 적은 단어다.)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내(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지시대로) 사는 나라다. //우리에게 약속의 땅은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나라다.

여호수아 19:1-23

여호수아 19:1-23

일곱 지적도의 두번째 몫은 시므온 후손들이 뽑았다. 저자는 시므온 후산의 유산은 유다 후손의 분양지에서 떼어낸 것이라고 한다. 유다 후손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 후손의 유산 한 복판에 있는 땅을 받았다.
세번째 몫은 는 즈불룬 후손이 뽑았다. 네번재 몫은 이싸갈 후손이 뽑았다.

여호수아 19:1-23
//시므온 후손이 받은 유산은 유다 후손이 받은 유산 가운데서 떼어낸 것이다. 유다 후손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시므온은 가장 인구가 적었다고는 하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까지 적을 이유는 없었는데… 하여간 유다 후손의 땅에서 유산을 나눠받았다. 유산인 땅을 사고 파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공유하고 나누어 주는 것은 허락되었다고 본다. 첫번째 몫을 가장 어린 막내 베냐민 지파가 뽑게 했다면, 두번째 몫은 인구수가 가장 적은 시므온 지파로 뽑게 했다.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하나님의 사랑 역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구원의 은혜는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공유되고 나누어야 한다. 그것도 (넘치게 받은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 전도와 선교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구원의 은혜는 공유되고 나누어지지만, 받은 사람이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열매 맺는다. 하늘의 시민권을 누리는 것은 시민권 유무(소유)가 아니라 시민권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지 않는다면 ‘성도’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슨 의미랴!

여호수아 18:1-28

여호수아 18:1-28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만남의 장막을 쳤다. 약속의 땅 전 지역이 이미 그들에게 정복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유산을 받지 못한 지파 일곱이 남아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제까지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리고 각(일곱) 지파에서 각각 세 사람씩 선출하여 (유다와 요셉 가문이 분할 받은 땅을 제외하고) 일곱 지파가 분할 받은 땅을 답사하여 지적도를 만들어 오게 했다. 그리고 그 땅을 하느님 야훼 앞에서 추첨하여 일곱지파에게 결정해 주겠다고 말했다. 사제 직분이 몫인 레위 사람들은 유산이 없다. 가드와 르우벤과 므나쎄 지파 절반은 요르단강 동편을 유산으로 받았다.
답사팀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일곱 몫으로 나누어 지적도를 만들어 실로의 진지로 돌아왔다.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야훼 앞에서 추첨해서 일곱지파에게 한 몫씩 떼어 주었다. 베냐민 후손부터 추첨으로 유산을 배정받았다. 베냐민 후손이 분배 받은 땅의 경계와 성읍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여호수아 18
//여호수아가 이끄는 본진이 요단강을 건너자 마자 여리고 근처 평지의 길갈에서 에브라임 후손이 상속받은 산악지대 실로로 옮겨졌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속한 에브라임지파가 배정받은 땅에 (임시) 수도를 정한 것 같다. 각 지파별로 흩어져야 했으므로 굳이 넓은 평지에 수도를 정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약속의 땅 전 지역은 정복 되었는데, 아직 일곱 지파는 유산(땅)을 분배받지 못했다. 아파트 건물은 준공 되었는데 아직 동호수를 배정 받지 못해 입주하지 못하는 꼴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미분양 동호수에 대한 파악을 위해 대표자들을 뽑고 그들이 조사해온 대로 추첨해서 배정했다. 이제 입주청소와 입주는 배정받은 자의 몫이다. //무주공산이라고 선착순 배정이 아니다. 물론 일곱 구획으로 나누는 것은 사람의 몫이었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평의 원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로얄층 기피층 구분없이 배정은 추첨방식이다. 곧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다. //제비는 베냐민 지파부터 뽑았다. 아마도 가장 작은 지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베냐민 지파는 이미 땅을 차지한 유다 후손과 요셉 후손들 사이의 땅을 뽑아 배정 받았다. 제비뽑기가 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면, 이 역시 작은 지파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된다. 큰 두 지파 사이에 완충지역을 두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도 있겠다. (베냐민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첫 왕이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호수아 17:1-18

여호수아 17:1-18

//18절 공동번역과 다른 번역의 차이. (공동번역) 그 곳은 숲이 있는 산악 지대이니 개간하여 가져라.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 산악 지대가 끝나는 곳까지 차지하여라. – 공동번역은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 라고 번역한다. 다른 번역들은 기본적으로 ‘비록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하지만 쫓아낼 수 있다’ 하고 번역한다. 영어의 거의 대부분의 역본들도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번역하는데 공동번역은 왜 부정적으로 번역했을까? 므낫세 후손들이 마을들을 다 점령하지 못해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대로 그 땅에 살았고, 이스라엘이 차츰 강해지면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고 노동을 시켰다는 12,13절을 반영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 사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 낼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강성해져야 한다. 더군다나 세상은 철병거만큼 강하다. 믿음이 아니면 세상의 철병거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믿음이란 무엇인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힘)이다. 유다지파의 갈렙처럼, 오늘 본문의 슬로브핫의 딸처럼, 요셉의 자손들처럼 약속에 근거하여 사는 삶이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산다면 세상이 오히려 결심하고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다. //세상이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니니 적당히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자의 강조점은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가 아니라 ‘산악지대가 끝나는 곳까지 차지하여라’에 있다. 성도의 순종은 끝이 없다. 산악지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 16:1-10

여호수아 16:1-10

요셉의 후손들에게 돌아간 땅에 대해 알려 준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몫을 받았는데 16장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경계를 알려준다. 저자는 유다 후손들이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마무리 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게젤(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은 채 에브라임에 섞여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있다고 기록한다.

여호수아 16
//게젤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은 채 이날까지 에브라임에 섞여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있다. (여호수아 16장 10절) -여호수아서 저자는 유다 후손들이 차지한 땅의 경계와 성읍들을 열거한 후, 유다 후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은 몰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하는데, 에브라임 후손들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쫓아내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난공불락의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을 쫓아내기 못한 것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지만,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아예 쫓아낼 생각을 하지 않고 노예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거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도 마땅히 해야할 수고를 덜기 위해 정의와 공평을 저버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주일성수를 빌미로 우리에게 주어진 공공의 일들을 불신자에게 떠넘기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