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6:1-14

이사야 66:1-14

하늘이 야훼의 보좌요 땅은 야훼의 발판이라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따라서 사람이 주님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다. 주님은 주님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허풍쟁이들이 아니라 억눌리고 마음이 찢어지고 주님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굽어보신다. 주님은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면서도 우상을 찬양하고 우상에게 마음을 쏟는 사람들을 괴롭히신다. 주님께 응답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거스리는 일을 하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권한다. 주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받으라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주님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 하실 것이다. 주님을 불렀는데 주님이 모른다고 하시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야훼께서는 원수들에게 보복하신다.
그런데 시온은 몸풀 겨를도 없이 출산을 한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은 주의 백성은 하루만에도 생겨난다. 하느님이 하신다. 새예루살렘에게 즐거워하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뻐 뛰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에서 야훼의 품에 안겨 풍요를 누리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에 평화의 강물이 흘러든다. 개울 같은 민족들이 평화의 강물에 합류 한다. 새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새내기 주의 백성들을 어미처럼 위로하실 것이다. 기존의 주의 백성들은 이 모습에 흐뭇하며 소생케 될 것이다. 주의 백성에게는 야훼의 손길이 이렇게 나타나고, 원수들에게게는 주의 노여움이 폭발할 것이다.

이사야 66:1-14
//하나님은 하늘에서 건물 성전을 내려다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신다. 송구스럽게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 떠는 사람들을 굽어보신다. (가난한자, 애통하는 하는 자가 복되다.) 따라서 성도가 지어야 할 것은 건축물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영적 교회(성전)이어야 한다. 예배당 건물이 없어서 성전을 이루어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배당 건축으로 교회가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순종을 원하신다. 오늘 우리는 예배가 순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한다면 예배도 제사와 다를 바 없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곧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주여 주여 주님을 부른다고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더 이상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민족가운데서 새예루살렘에 들어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주의 백성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이 시온의 시민권자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루 아침에 열방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평화의 강물에 참여하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자녀 삼으시고 돌보신다.

이사야 65:17-25

이사야 65:17-25

주님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한다고 선언하신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하신다. 대신 새창조를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새로 만드신. 예루살렘은 주님의 기쁨이요 예루살렘 시민은 주님의 즐거움이 된다. 예루살렘은 슬픔이 없는 곳 탄식이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모두가 백세인생을 누리는 곳이 된다. (백세를 누리지 못하면 벌을 받은 자일 것이다.) 자기 손으로 지은 집에서 제 손으로 가꾼 것을 먹을 것이다. 자기 것으로 만족하고 이웃의 것을 빼앗는 일이 없는 곳에서 나무처럼 오래도록 살게 될 것이다. 아무도 헛수고 하지 않겠고 자식으로 이픔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야훼께 복 받은 종족, 후손과 더불어 살 것이다. 그들이 기도하기 전에 그들의 필요를 들어 주겠다.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게 되는 곳. 시온 (주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5:17-25
//새하늘과 새땅!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는 세상이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세상이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을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신다. //우리가 잘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 아니던가?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이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 //시인은 인생을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노래했지만,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백세인생이다. 백세까지 못살면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 년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백세는 시간적 백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년수를 뜻한다. 따라서 기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새예루살렘에서 사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새예루살렘은 지리적 예루살렘이 아니다. 시온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나라다. 천국이라고 말해도 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특징은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완전히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어린양이 늑대처럼 육식을 하는 나라가 아니다. 육식을 하는 늑대와 사자가 육식(기득권)을 포기하고 어린양과 소처럼 초식을 하게 된다. 뱀이 흙을 먹는 나라다. 곧 하나님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그렇다면 성도도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득권을 적당히 잘 양보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세례자 요한은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고 고백했다. 내가 흥해야 하나님께서 영광받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사야 65:1-16

이사야 65:1-16

주님은 빌지 않은 자의 청도 들어주고 찾지 않던 자를 만나 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민족들에게도 계시하셨다. 하물며 주의 백성이랴. 주의 백성이 배신해서 제멋대로 살아도 두팔을 벌리고 주의 백성이 돌아오길 기다리셨다. 그래도 주의 화를 돋우는 백성들.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분향하는 백성들. 어둠 속에 살고 부정한 음식을 먹는 백성들이 주님의 화를 돋우니 어찌 벌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겠냐고 반문하신다. 야훼께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죄를, 그들의 소행대로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야훼께서는 주의 종들을 아껴 망가뜨리지 않고 그대로 위하신다. 후손들 가운데 뽑은 자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주를 찾는 주의 백성에게는 사론 평야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야훼를 저버렸고 산당에서 이방신을 섬겼으니 죽어 마땅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하는 주의 백성은 벌을 받아야 한다. 오직 주의 종들만이 먹고 배부를 것이다. 주의 종들만이 기뻐할 것이다. 배신한 백성들은 창피를 당할 것이다. 주의 종들은 가슴이 벅차 환성을 지르겠지만 배신자들은 가슴이 쓰려 아우성치고 마음이 찢겨 울부짖을 것이다. 옛 이름으로는 천벌을 받는다. 그러나 주의 종은 새 이름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암담하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오직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게 될 것이다.

이사야 65:16
//우리는 주 하나님께 빌지도 않았고 주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지만, 주 하나님께서 예수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우리는 주 하나님께 배반으로 점철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주의 백성(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난 새이스라엘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성도다. //그렇다면 주를 찾아야 한다. 주를 찾는 자만이 시편 23편 시인이 노래하는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겠지만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16절.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겠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맹세하리라. – 진리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것이 복이다. 다시 말해 진리의 하나님께 우리의 무릎을 꿇는 것이 복이다. 왜냐하면 복 중의 복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종이 되어 주님의 나라로 초청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의 최고봉은 하나님나라요, 하나님나라는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매일 빌어야 할 마땅한 복은 임마누엘이다.

이사야 64:1-12

이사야 64:1-12

(주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탄하는) 저자?는 주님을 찾는다.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시라고 주님을 부른다.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이라고 말한다. 원수들이 민족들이 주님 앞 떨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미증유! 주님 만이 자기를 바라보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정의를 실천하고 주님의 길을 잊지 않는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처음부터 주님께 반역하자 화를 내신다. 주의 백성이 부정한 사람처럼 되었다. 죄라는 바람이 휩쓸자 잎이 마른 나무처럼 되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지도 않고, 주님께 의지하려고 마음을 쓰는 사람도 없다. 이런 주의 백성을 주님이 외면하시니 주의 백성이 자기의 죄에 깔려 스러져 간다.
저자는 야훼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주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고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 노여워 말라고 간구한다. 우리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는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굽어살펴달라고, 주의 백성이라고 매달린다. 거룩한 성읍들은 폐허가 되었고 시온은 무인지경이 되었고 예루살렘은 쑥밭이 되었다. 주님을 찬양하던 성전도 불에 타버리고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이 망가졌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무심한 야훼를 부른다. 주의 백성이 말못하게 고생하는데도 보고만 계시렵니까? 하고 묻는다.

이사야 64:1-12
//주님을 찾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주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미증유가 아니라 일상이지만) 사람이 찾는다고 신이 사람에게 찾아오는 일은 미증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전대미문의 일이 (구약의) 주의 백성에게도 흔치 않았다. //주님은 정의를 실천하고 주의 길을 걷는 사람을 찾으신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누구나 피고로 두려움으로 선다. 심판자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주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그의 작품이라고 말 항변해도 소용?없다. //주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면 아버지의 뜻대로 아들의 도리를 해야 하고, 창조주라고 불렀으면 창조주의 메뉴얼대로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주님의 길 ‘정의’라는 덕목이 유난히 강조된다.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부른들 찾아오신 주님을 볼 수 있을리 만무다. //주님이 무심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을 예배하지도 않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임마누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주님이 내(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이사야 63:1-19

이사야 63:1-19

구원자가 에돔에서 온다고 한다. 붉은 포도주로 물든 것 같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온다. 구원자는 혼자서 포도주 술틀을 밟듯, 노여움에 마구 밟은 그들의 피가 옷에 튀어 붉게 물들었다고 대답한다. 원수 갚을 날에 원수를 갚았다고 말한다. 돕는자가 없어 혼자 감당했다고 말한다. 노여운 나머지 백성들을 짓밟아서 그 피를 땅에 흘렸다고 말한다. 구원자는 야훼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찬양한다. 구원자는 친절하고 자비롭고선하신 야훼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노래한다. 야훼께서 주의 백성을 아들들이라고 불러주시고 구원하셨다. 대리자나 천사를 파견하지 않으시고 친히 오셔서 구원하셨다. 주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가엾게 여겨 구원하셨다. 기나긴 세월을 하루 같이 그들을 품어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역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주님은 원수된 그들과 싸우셔야 했다. 그들은 출애굽의 주님이 어디 계신지 묻는다. 그리고 주님이 하늘에서 그들을 다시 굽어보시길 간구한다. 주님을 아버지로 다시 부른다. 주님만이 구원자라고 부른다. 그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시고 주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게 하셨냐고 하소연 한다. 그러니 그들을 다시 생각하사 돌아와 달라고 주님께 간구한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주님의 성소에 침입해 짓밟게 두는지 묻는다. 그들은 주님이 다스리지 않으시니 주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잃은지 오래되었다고 한탄한다.

이사야 63:1-19

//19절 당신께서 우리를 다스리지 아니하므로 당신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잃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주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잃어간다. 주님이 한국교회를 다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아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영원하다. //20세기 한국교회 부흥의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묻는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한국교회를 다시 굽어 보시길 간구하는가? 그렇다면 불순종의 댓가를 감내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절하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단 우리가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킬 수 있도록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구원의 길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예수의 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