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59:9-21

이사야59:9-21

공평과 정의가 없는 곳에서 빛을 기다린들 도리어 어둠이 온다. 환하기는 커녕 깜깜할 뿐이다. 주의 백성이라도 한 낮에 소경처럼 발을 헛딛으니 몸은 피둥피둥 살이쪄도 죽은 것과 다름 없다. 그러니 고대하는 공평도 사라지고 구원도 멀어져만 간다. 하느님께 거역한 주의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죄악을 인정한다. 불순종을 시인한다. 주님을 배반하고 반역했다. 공평하지 못했고 정의롭지도 않았다. 성실을 짓밟혔고 정직은 통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도리어 약탈을 당하는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야훼께서 눈을 찌푸리시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의 눈에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기막힐 수 밖에 없다. 야훼께서 정의로 다스리시기 위해 일어나신다. 야훼께서 정의를 세우시고 구원을 베푸신다. 사람의 소행대로 갚으시고 원수를 갚으신다. 해뜨는 곳부터 지는 곳까지 야훼께서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신다. 시온에 정의가 넘치게 하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는 야곱의 후손을 구하시겠다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야훼께서 주의 백성에게 주의 영을 불어 넣으시고 주의 말씀을 주의 백성의 입에 담아 주신다. 이것이 새언약/계약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59:9-21

//공평과 정의가 없는 곳에 필요한 것이 구원이지만, 공평과 정의가 없는 곳은 어둠이 더 짙어질 뿐이다. 그래서 소경처럼 한 낮에도 발을 헛 딛게 되고 몸은 피둥피둥 살이 쪄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하신다. 공평과 구원은 이렇게 멀어져 간다. 하나님께 거역한 백성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돌이켜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죄악을 인정하고 불순종을 시인해야 한다. 공평하지 못했고 정의롭지도 않았으며 성실을 질밟고 정직을 버려, 성실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도리어 약탈을 당하는 불공평한 세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삶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정의로 다스리시기 위해 친히 일어나신다. 사람의 소행대로 갚으신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신다. 시온에 정의가 넘치게 하신다. 시온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죄를 뉘우치고 돌아와 정의를 따라 사는 곳이 시온이다. 시온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니, 하나님께서 주의 영으로 인도하시고 주의 말씀을 우리 입에 넣어 주신다. 곧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정의롭게 살라고 하신다. 새언약이다. 새언약을 맺은 성도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이사야 59:1-8

이사야 59:1-8

1 야훼가 능력이 없어서 주의 백성을 구해내지 못하고 주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의 백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주의 백성이 잘못해서 하느님이 얼굴을 주의 백성으로부터 돌이키셨기 때문이다. 3 주의 백성이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요 음모를 꾸미기 때문이다. 4 부당한 송사를 일으키고 거짓으로 고소하기 때문이다. 터무니 없는 것을 믿고 사실무근의 소리를 지껄이기 때문이다. 5-6 독사와 거미처럼 독을 품고 잔학과 횡포를 일삼기 때문이다. 7 나쁜 짓이나 하러 다니고 죄없는 사람의 피나 흘리고 잔악한 계책을 꾸며 닥치는 대로 빼앗아 먹고 짓부수기 때문이다. 8 그들은 도무지 평화랑 거리가 멀고 정의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사야59:1-8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못하시듯,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함께 거하실 수 없다. 악인에게 맞닥뜨려 심판을 하시지만 함께 사실 수는 없다. 악인과의 임마누엘은 어불성설이다. //주의 백성이 구원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의 백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아들 예수로 죄인들 가운데 오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평화와 정의로 이땅에서 드러난다. 평화와 정의와 거리가 멀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다. 반대로 평화와 정의가 넘친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우리 공동체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는가?

이사야 58:1-14

이사야 58:1-14

청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여간 목청껏 소리질러 주의 백성의 죄상을 밝히고 잘못을 드러내라고 하신다. 그들은 주의 백성인 척, 주를 찾는 척, 주를 알고 싶은 척, 옳은 일을 해 온 척,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척, 옳은 법을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척 하면서도 실상은 하느님께서 봐주시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단식(금식)을 하며, 알아주시지 않는 고행을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그들이 오히려 금식일에 돈벌이에 눈이 멀어 일꾼들을 부려먹는다고 질책하신다. 단식한다면서 시비나 걸고 싸움이나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을 주먹으로 때리는 그런 금식은 집어치우라고 하신다. 그런 금식중에 하는 기도가 하늘에 들리 리 없다고 하신다. 이 따위 금식을 주님은 반기지 않으신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단식(금식)은 어떤 것일까? 주께서 이런 단식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억울하게 묶인 이의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는 것.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이하는 것,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 것, 친척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 이렇게 하면 우리 빛이 새벽 동이트듯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상처가 금방 아물것이라고 하신다. 야훼의 영광이 우리 뒤를 받쳐준다고 하신다. 이런 금식을 하면서 주를 불러야 주님이 대답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 가운데 멍에를 치우고, 삿대질을 멈추고, 못된 말을 거두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주면 우리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대낮 같이 밝아진다고 하신다. 주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고 배불리 먹이시고 힘을 주셔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신다. 주님의 거룩한 날에 돈벌이 하느라고 안식일을 짓밟지 말라고 하신다. 안식일은 기쁜날 야훼께 바친날, 귀한날이라고 부르라고 하신다. 그 날을 존중하여 여행도 하지 말고 돈벌이도 말고 삼담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야 야훼 앞에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약속의 땅을 상속받는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곳이 하나님나라라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 나라가 아니라 주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말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공의를 묻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삶이다. 자기 욕심에 따라 서로 싸우는 (남보다 나를 위한 경쟁적) 금식과 기도를 주님은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57:14-21

이사야 57:14-21

(주님이) 또 말씀하신다. [백성이 갈 길에서 걸림돌을 치우고 길을 훤히 닦고 또 닦아라.] 지극히 높으신 이, 보좌에 영원히 앉아 계시는 이, 거룩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얻어맞고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주겠다. 더 이상 자잘못을 따지며 노여워하지 않겠다. 나에게서 용기를 얻고 생명의 숨결을 받게 하겠다. 나는 그들이 못되게 욕심을 부려 화가 났었다. 그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그들이 배신하고 제멋대로 가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이제) 내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며 위로하며 한껏 격려해 주겠다. 슬피 울던 입술에서 태평성대의 찬미가 터져나오게 하겠다.] 야훼의 약속이다. [내가 너를 고쳐주마] 그러나 악인들은 성난 바다 같아 가라앉을 줄 모른다. 쓰레기와 진흙을 밀어 올리는 물결 같다. 나의 하느님께서 반문하신다. [이런 악인들에게 무슨 평화가 있으랴?]

이사야 57:14-21
//지도자들은 백성이 갈 길에서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길을 닦아야 한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기적 탐욕으로 백성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님처럼, 거룩한 보좌에 그냥 앉아 있지만 않고, 얻어 맞고 용기 잃은 사람들에게 내려와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아물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배반한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셨고 얼굴을 돌리기까지 하셨으나 주의 백성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못하셨다. 결국 그들의 병을 고치시며 위로하시며 격려하신다. 마침내 주의 백성은 슬픔대 희락을 누린다. 태평성대의 찬미를 하게 된다. 주님이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고침을 받아야 주님의 길을 닦을 수 있다. //주님이 주의 백성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잠시 잠깐 화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용서하고 위로해야 한다. 용서는 빠를 수록 좋다. 계속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결국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망한다. 주님께 돌이키는 자들에게 평화가 있다. 이 평화를 나누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

이사야 56:9-57:13

이사야 56:9-57:13

(주님은) 들짐승들, 산짐승들을 부르셔서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 먹으라고 명하신다. 백성을 지켜야 할 지도자들을 소경이요 벙어리일뿐 아니라 게으름뱅이라고 꼬집으신다. 그들은 욕심쟁이요 방탕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하신다. 그들이 술에 취해(쩔어) 살도록 버려두신다.
지도자들이 올바른 사람이 망해도, 경건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사실 올바른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재앙을 벗어나 평화를 누리러 가는 것이다. 올곧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잠자리에 누워 편히 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점쟁이의 자식들, 간통의 씨, 매춘부의 종자들은 죄악의 씨요 사생아가 아니냐고 반문하신다. 제사를 드리는 산당에서도 색을 탐하며, 자식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책망하신다. 제사드리는 제단에서 어떻게 성적음행을 행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문설주 뒤에서도 남신상을 모셔놓고 그 곳에서도 성적음행을 저질렀다고 하신다. 종교지도자들이 화대를 받고 질탕하게 놀아났다고 심판하신다. 몰록 신을 섬기위해 멀리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이 무서워서 주님을 배신하는지 물으신다. 왜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느냐고, 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한탄하신다. 스스로 잘했다고 으시대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주님은 그들의 소행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우상은 그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우상을 찾는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입김에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주님의 거룩한 산을 상속받는다.

이사야 56:9-57:13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마5:5. //잡아 먹혀야 할 지도자들은 종교적 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백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술에 쩔어 방탕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이어서다. 그래서 그들은 올바른 사람이 망하고 경건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님은) 올바른 사람들을 지키시기 위해 데려가신다. 이 땅의 재앙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세상에서는 죽는 것 같으나 주님 품에서 안식하게 하신다. //정치적 지도자들만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들도 잡아 먹혀야 할 대상들이다. 하나님과 음욕과 돈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주님 대신, 우상이 두려워 주님을 배신한다. 양다리를 걸치고는 스스로 잘했다고 으시댄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의 소행을 밝히실 때, 생명없는 허수아비 우상이 그들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주님만 섬겨야 한다. //그래서 주님을 믿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주님의 거룩한 산을 상속 받는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온유한 사람. 올곧게 사느라고 겸손하고 낮아져도 주님은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