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6 (1-14)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산들을 향하여 예언하라고 하신다. 산들을 향해 예언하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니라 산들을 향해 도움의 눈을 돌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산들에 있는 산당을 칼로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산당의 제단들을 헐어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죽어 산당에 세워진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체를 우상들 앞에 두며 해골을 제단에 흩어놓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모든 성읍과 사막이 되게 하실 것이며 산당을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어떻게? 바로 저들이 의지하는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우상을 찍어 헐어버리심으로 황폐하게 하신다. 우상숭배자들이 죽어야 너희들이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게서 친히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계시하신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다.) (1-7)

심판 중에도 복음은 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여러나라에 흩으실 때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 남은 자가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누가 살아 남는지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방인들 중에 살아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음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음란한 마음으로 우상을 섬겨 하나님을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악행을 한탄하라고 하신다. 자신들이 악을 행했다는 것을 한탄하면서 자백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런 재앙으로 백성들을 치시는 이유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 (8-10)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손뼉치며 발을 굴러 사람들의 주목을 끌며 예언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악을 행하므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해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진노가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나님 말씀대로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들이 도움을 눈을 돌린 산당의 우상들 사이, 제단주변, 산당으로 가는 고개길, 산당이 있는 산꼭대기, 산당에 있는 나무아래 널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줄 깨달을 것이라고 하신다. // 우상과 함께함은 죽음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11-13)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알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14)

// 하나님을 알라고하신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심판의 재앙가운데도 적은무리에게 복음이 있다. 살아 남은 자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기억한다. 음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음란한 마음으로 우상을 섬겨 하나님을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도 은혜다.

에스겔 5 (1-17)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머리털과 수염을 깎으라고 하신다.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라는 레위기 말씀에 위배되는 명령을 하실만큼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명령일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터럭의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로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람에 흩어지는 터럭을 따라 칼로 치신다고 하신다. 포로로 잡혀 온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이렇게 행했을리 없다. 390일+40일을 묶여있다가 풀려나서 4장 토판에 그린 예루살렘 성읍에서 터럭을 불사르고 칼로 쳤을 것이다. 다시말해 에스겔이 말이 아니라 행위로 예루살렘의 함락을 시연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터럭 모두를 불사르고 칼로 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조금을 옷자락에 싸서 보관하라고 하신다. 이 조금의 터럭 중 일부는 결국은 불살라지고 만다. 이 불이 온 이스라엘에 번질 것이라고 하신다. 온 이스라엘이 심판받음을 상징하는 말씀이다. (1-4)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이방 나라들 가운데 두셨다. 모든 이방 나라의 주목을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본을 행해야 하는데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였다. 율례를 주신 것도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주셨는데 주변의 이방 나라들보다 더 불순종했다. 불순종이 요란했다고 하신다. 심지어 (양심을 따르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목전에서 벌을 받는 이유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 즉 악행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는 패륜이 자행되고 살아남는 자들도 다 흩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5-10)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악행과 패륜으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아끼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미약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그래도 조금은 남겨두신다) 그래서 2절에서 에스겔에게 시연해 보이라고 하신 것처럼 삼분의 일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고 삼분의 일은 사방으로 흩어지나 결국은 하나님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철저하게 심판을 하셔야 하나님의 노가 다하고 분이 풀리신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의 함락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열심이다. 말로 해서 안듣는 백성들에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계시하시는 것이다. (11-13)

예루살렘은 열방 가운데 세워졌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황무하게 하셔서 주변의 모든 이방나라의 모욕거리로 만드실 것이다. 불순종과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노와 분은 심판(벌)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수치와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 징계는 이방인들에게도 두려움과 경고도 될 것이라고 하신다. 불순종의 결국은 멸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지 않으면 떡으로 먹고 사는 삶도 끊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도구로 강성한 이방나라를 보내 예루살렘을 고립시킬 것이고 포위된 예루살렘은 전염병과 살륙으로 얼룩지고 도망하는 자들도 결국은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14-17)

//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수치와 조롱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신바 되어야 영생이다.

에스겔 4 (1-17)

에스겔은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 왔으나 당시 예루살렘에는 아직 시드기야 왕이 있었다. 포로로 잡혀왔지만 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달리 완전히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운명을 토판을 가져다 놓고 시연해 보이셨다. 예루살렘 모형을 철판으로 완전히 에워싸 에스겔과 분리되듯 예루살렘도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음을 징조로 보여주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는 곧 함락을 의미한다.)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은 에스겔은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살아내야 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이 범죄한 햇수 390년을 날수로 계산하여 390일동안 왼쪽으로만 누워지내라고 하신다. 그리고 390일이 차거든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40일을 누워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또 얼굴을 포위당한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고 하신다. 심지어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것처럼 에스겔을 줄로 동여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에스겔로 하여금 꼼짝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불순종은 누워있어도 죄악에 얽매인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390일동안 하루 이십세겔정도의 (하루 한끼정도 될까?)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로 만든 빵을 먹고 물도 먹을 양을 정해 주셨다. 빵을 인분 불에 구워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에스겔이 하나님께 간청한다. 에스겔은 자신은 먹을 것으로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는데 어찌 인분으로 (인분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떡을 구워먹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간청을 들으시고 인분대신 쇠똥을 사용하여 떡을 구울 수 있게 해 주셨다. (//죄악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한 삶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에서도 양식이 끊어지고 물이부족하여 결국 함락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에스겔처럼 포위 된 예루살렘에서도 떡을 달아먹고 물을 되어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떡과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곧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쇠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죄악중에 거하기 때문이다. 죄악중에 거하는 자는 말라 죽고 말것이다.

// 에스겔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죄악 중에 거하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살아내야 했다. 파수꾼의 삶이다. 악인과 공의를 떠난 의인을 깨우쳐주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나님과 단절된 예루살렘은 함락될 것이다. 좌로 누워지내든 우로 누워지내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지난 삶은 죄에 얽매인 삶이다. 떡과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된 이런 자들은 쇠패한다 (말라 죽는다).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에스겔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이스라엘이 쇠패할 것을 삶으로 살아내야 했다. 평화의 삶이면 좋았으련만 하필이면 결박과 굶주림의 쇠패를 살아내라고 하시니.ㅠㅠ 그래도 순종해야 살아 남는다

 

에스겔 3:16-27

에스겔은 주의 영에 이끌리어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와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왔으나 7일동안 그들중에 두려워 떨며 지내야 했다. (이런 에스겔에게 어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할까 기대하면서…)

칠 일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은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파수꾼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대신하여 동족 이스라엘 족속을 깨우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죽을 것이라고 말하시면 파수꾼은 그 악인을 깨우치거나 악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 악인이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도록 해야한다. 만약 파수꾼이 그 악인을 깨우치거나 말로 악인에게 전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신의 죄로 죽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피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파수꾼이 악인을 깨우쳤는데도 그 악인이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 악인의 자신의 죄악 중에서 죽을 것이고 파수꾼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파수꾼은 의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의인도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것이라고 하신다. 의인이 돌이켜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의인의 공의는 기억할 바가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이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는 의인을 깨우쳐주지 않으면 그 의인에게 거치는 것을 두어 의인을 죽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피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만약 파수꾼이 공의에서 돌이킨 의인을 깨우쳐 그로 범죄하지 않게 하면 그도 살 것이요 파수꾼도 영혼을 보존할 것이라고 하신다.

// 악인이라도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킬 수 있으며 의인이라도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중에서 죽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깨우쳐 범죄하지 않아야 산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처음 환상을 본 그발 강가 한적한 들로 에스겔을 이끄셔서 그곳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일어나 들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말씀 앞에 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는 것이리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앞에 엎드렸다. 또다시 주의 영이 에스겔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다. 이번에는 에스겔에게 집에 들어가 은둔하라고 하신다. (은둔하지 않으면) 무리들이 에스겔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가둬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에게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말못하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전하도록 에스겔의 입을 열어주실 때가 올 것이라고 하신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라고 하신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반역하는 족속임에도 듣는 자가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 칠일동안 두려워 떨며 지낸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다. 그것도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네 손에서 피값을 찾으시겠다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 저주에 가까운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위로와 격려일 것이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평생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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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일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움에 떨며 지내던 에스겔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신다. 핵심은 분명하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고 악한 길, 곧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켜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살고 악인이든 의인이든 깨우침을 받지 않으면 죄악중에서 죽는다. 파수꾼은 악인과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는 의인을 깨우쳐야 생명(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 만약 파수꾼이 저들을 깨우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죄 중에 죽은 그들의 피값을 파수꾼에게서 찾는다고 하신다.
악인으든 의인이든 파수꾼이든 말씀에 순종해야 산다

 

에스겔 3:1-15

에스겔이 발견한 두루마리 책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글이 안팍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너 사람아’라고 부르시며 두루마리 책을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두루마리책에 기록된 것을) 말하라고 명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도 살아야 한다.)

에스겔은 입을 벌렸고 하나님은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떠먹여 주셨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얼마나 썼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두루마리의 말씀을 입에서 토해내지 말고 배에 넣으며 창자에 채우라고 하셨다. 에스겔은 받아 먹었다. 순종해서 받아 먹으니 두루마리 말씀이 입에서도 꿀같이 달았다고 에스겔은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었다는 것은 말씀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는 뜻이다. 즉 말씀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배부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먹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명하셨다. 에스겔은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민족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할 필요가 없었다. 동족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고 소화시켰으니 자기 민족의 언어로 잘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이방 나라에 에스겔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그들은 정녕 에스겔의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반대로 이스라엘 족속은 충분히, 아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듣고도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에스겔의 말을 듣고자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다. 철면피를 하고 아예 듣고자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얼굴을 더 두껍게 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다시한번 에스겔에게 강조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으라고. 그리고 나서 포로중인 이스라엘 민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에스겔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서 들리는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네 생물들이 날개를 서로 부딪히며, 네 생물들 곁의 바퀴가 굴리며 소리를 증폭해서 들려주었다.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 보자로부터 나오는도다.” 그러나 에스겔은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늘보좌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의 힘이 에스겔을 감동시켰다. 에스겔은 순종하여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갔다. 처음 일주일동안 에스겔은 그들 가운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두려워 떨며 지내야 했다. 성령으로 이끌려 보냄을 받았지만 에스겔은 두려워 떨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의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씀을 먹으라고 하신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떠먹여 주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소화까지 시켜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면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에스겔을 위로하시고 힘을 불어넣어 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