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97-112

시인은 오늘도 하루종일 주의 법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주야로 묵상한다.
시인에게 임마누엘이란 주의 계명과 함께 하는 것, 즉 주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임마누엘이 원수들보다 시인을 지혜롭게 한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임마누엘의 증거로 주야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리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선생되어 주셔서 시인을 가르친다.
주의 법도에 순종하는 시인에게 주님은 함께 하시고 친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니 노인들보다도 명철하다.
명철중의 명철은 모든 악한 길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철저하게 임마누엘의 주님께 배우고 찰라라도 한눈팔지 않고 주의 규례들을 지킨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이 시인을 명철하게 하니 당연한 고백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명철은 거짓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이 명철하게 된 것은 빛되신 주의 말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등대처럼 갈 방향도 알려 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발밑도 비춰주는 빛이다.
시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되신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따라 가기로 다짐한다.
고난이 매우 심하지만 빛되신 주님을 푯대로, 빛되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면 산다는 소망이 시인에게는 확실하다.
주의 말씀대로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생명의 양식인 주의 공의로운 말씀을 또 배운다.
시인은 생명과 주의 법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노래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주의 말씀이 있고 주의 말씀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산다. 그만큼 세상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악인들은 시인을 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시인은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임마누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비한다.
주의 법도를 지킨 삶이 시인이 받은 복이다. 이 복들을 세어 보는 것이 시인에게는 즐거움이다. 이 복을 늘려가는 것이 시인의 바람이다.
시인은 하늘에 복을 쌓는다.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시편 119:81-96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것과 주의 말씀을 바라는 것은 같은 것이다. 즉 구원이란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시인은 영혼이 피곤할 정도로 주의 구원을 사모하고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의 말씀이 곧 주의 위로라고 노래한다. 주의 위로는 주의 구원이다. 결국 임마누엘이다. 주님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위로하신다.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은, 주의 구원을 바라는 삶은 오리무중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안개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주님의 길을 따라 가야한다. 주님의 길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인생은 칠십이고 강건해야 팔십이다. 요즘은 백세인생을 노래한다지만 길지 않는 인생길이다. 시인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도 소망한다.
저들은 주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교만한 자들이다. 저들은 주님의 길에 웅덩이를 파서 시인이 따라가는 주님의 길을 방해한다.
저들은 주의 계명을 따르는 자들을 이유없이 핍박한다.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인의 도움은 주님밖에 없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저들의 핍박이 심하나 시인은 그래도 주의 법도들을 버릴 수 없다고 노래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시인을 살릴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약속이 주의 인자하심이기 때문이다.
주의 약속은 영원하다.
주의 약속은 미쁘다. 창조주가 하신 약속이다.
모든 만물이 창조주의 종이다.

시인은 주의 약속을 소망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노래한다. 고난 중에도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라고 노래한다.
자신을 지켜준 주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이 삶의 이유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구원하셔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기대한다. 임마누엘! 주의 약속이다.
악인들은 여전히 시인을 멸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나 시인은 주의 약속을 피난처로 삼는다.
세상에 시인이 완전한 피난처로 삼을 곳은 없다. 오직 넓고 넓은 주의 계명으로 피해야 한다. 주의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오리무중의 길을 걸을 때 빛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시편 119:65-80

주님과의 언약은 주님이 주님의 종을 선대하시는 것이다. 주의 계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주님의 선하심에 의지하여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시인은 심지어 고난마져도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임을 노래한다. 고난을 당하지 않았으면 주의 약속에서 빗나갔음을 몰랐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난을 통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 다시 주의 말씀대로 걷겠다고 한다.

주님은 선하시다. 주님의 행위는 선하시다. 시인이 배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선하심이다. 세상이 주님 외에도 선한 것이 있다고 거짓으로 우리를 꾀어도 시인은 그럴수록 주님의 법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세상은 (마음도 비만에 빠져) 탐욕도 선하다고 가르치나 시인은 절제의 다이어트를 가르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한다. 그래서 고난마져도 유익이라고노래한다. 고난이야말로 탐욕에 빠지지 않게 하는 구명조끼다. 주의 법을 읊조리는 기쁨을 천천의 금은보다 좋다고 노래하는 이유다.

주님이 나의 소유자다. 나를 지으셨다. 주님의 계명들이 나의 설명서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시인이 주님이 지으신대로, 주님의 설명서대로 행하는 것을 기뻐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행한대로 갚으신다. 그래서 의로우신 주님은, 주님의 선하심을 베푸시기 위해 고난을 통해서라도 주님의 백성를 돌이키신다. 그러니 고난은 주의 백성을 향한 주님의 성실하심이다.

따라서 고난은 주의 인자하심을 드러내심이요, 시인에게는 위로가 된다. 고난은 주의 긍휼하심으로 주어진 것이요 시인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것을 깨닫게 하는 주의 법을 즐거워 한다.

세상은 주님 외에도 선한 것이 있다고 거짓교훈을 가르치나, 그들은 결국 수치를 당할 것이다. 주님의 인정하심을 받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의 법도를 읊조리며 묵상하는 시인은 의인들의 (주를 경외하는 자들의) 회중에 들어가게된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주의 증거들을 선포하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구한다. 심판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수치가 있을까?

형통보다 고난이 주님의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다.

시편 119:49-64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56)

오늘 시인은 “주의 법도를 지킨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노래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논리를 남겼다. 철학자가 아니니 철학적 의미를 따질 순 없고 다만 데카르트가 존재를 사유 혹은 이성으로, 즉 사고의 영역으로 제한해버렸다는 느낌이라면 (철학자들이여 용서하시라!) 시인은 존재를 행위 혹은 삶으로 풀어버렸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의 말씀이 존재의 이유요 소망의 이유라로 노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중이라도, 조롱을 받아도, 악인들로 말미암아 분노에 휩싸여도 주야로 주의 율례로 노래부르며 나그네 길을 간다.

시인의 존재 이유는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행위가 주의 증거를 행하지 않을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주의 증거를 향해 방향을 튼다.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이킨다.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들이 유혹해도 시인은 주의 법을 잊지 않는다. 자다가고 일어나 주의 법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친구삼아 주의 법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주를 경외하여 주의 법을 지키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인가?

시인은 노래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다고, 주의 율례가 가르치는 내용이 주의 인자하심이다. 주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주의 인자하심을 이땅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시편 119:32-48

시인은 복을 구한다. 복은 주의 말씀이다. 주의 계명이다. 복을 구하듯이 주의 도를 배움에는 끝이 없다. 33
주의 법은 문자적이지 않다. 주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혜사 성령님의 해석이 필요하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야 말로 주의 법을 온 맘 다해 지키게 한다. 34
주의 계명을 따라 길을 가는 것은 세상에게 가장 완벽한 네비게인션을 따라 길을 가는 것이니 즐겁다. 35
인생길은 주의 말씀을 따라 길을 가느냐 탐욕을 좇아 길을 가느냐 두갈래 길이다. 시인은 탐욕대신 주의 증거를 따라가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36
자꾸 허탄한 것들이 시인을 유혹한다. 그러나 죄인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에 서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37
주님은 갑이고 시인은 을인 계약을 맺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38

시인이 두려워 하는 비방이 무엇일까? 아마도 주님이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평가가 아닐까? 세상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라고 비웃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선하신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39
주님의 법도를 사모하는 것은 주님의 의로 사는 것이다. 주님의 의로 사는 것이 생명이다. 40
그렇다. 주의 말씀대로 (주의 약속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41
약속에 의지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시인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인자와 주님의 은혜라고 대답할 수 있다. 42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고 나의 마음이 묵상이 주의 말씀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것이 시인의 소망이요 나의 소망이다. 43
주의 법을 지키는데는 끝이 없다. 영원히 지키겠습니다. 44
주의 말씀이 비추는 곳은 맘놓고 걸어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이다. 45
주의 교훈을 묵상하는 자는 권세자 앞에서도 담대히 말할 수 있다. 46
주의 계명이야 말로 나의 사랑 나의 기쁨이다. 47
주의 계명은 언제나 반갑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읊조리며 노래한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