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16-9:5

고린도후서 8:16-9:5 (공동번역) 읽기

16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전 편지를 전달한 디도의 열성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17 디도는 바울 일행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대단한 열성으로 이번에도 자진해서 구제금 모금 활동에 참여한다. 18-19 바울 일행은 디도와 형제 한 사람을 딸려 보낸다. 디도와 동행하는 형제는 복음을 전하는데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다. 그는 바울 일행과 동행하면서 주님의영광을 위해 은혜로운 복음 사역을 돕는 사람이다. 20-22 바울은 둘을 보냄으로 막대한 의연금을 다루면서 아무한테서도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함이다.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다. 둘이 부족해서 형제 한 사람을 더 보낸다. 그 역시 열성있는 사람이고, 고린도 성도들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23-24 바울은 디도를 자신의 동료요 협조자라고 특별히 소개한다. 다른 두 형제들은 여러 교회가 뽑은 대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이라고 덧붙인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여, 바울 일행이 고리도교회를 자랑한 점이 사실이라는 것을 드러내라고 당부한다.
9:1-5 디도와 두 형제를 보내는 이유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낼 구제금 전달이다. 고린도 성도들은 일년전부터 열성적으로 준비해왔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들에게 고린도 교회의 열성을 자랑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분발했다. 디도와 두 형제편에 바울의 자랑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만약 여러분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고린도 교회와 고린도교회를 칭찬했던 바울 일행도 큰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거두지 않고 자진해서 바치는 희사가 되도록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디도 일행을 먼저 보낸다.

//공평의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을 시작으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들이 모금활동을 했다. 바울은 이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디도와 두 형제를 소개한다. 디도는 바울 일행이 추천한 것 같고 다른 두 형제는 여러 교회들의 대표로 뽑혔다. 그 중 한 형제를 복음전도에 명성을 떨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구제활동에 복음전도에 명성을 떨친 사람을 대표로 보낸다? 구제활동이 복음전도의 핵심이라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까? 사실 구제는 단순히 복음전도의 도구 이상이다. 교회공동체에 필요한 공평의 원리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교회공동체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원천이다. //바울은 돈문제를 다루는데 떳떳하기 위해 직접 나서지 않는다. 자신이 추천한 디도 외에 2배수의 교회 대표를 붙인다. 이제 바울의 입김은 절반도 아닌 1/3이다. 뭐든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8:1-15

고린도후서 8:1-15 (공동번역) 읽기

1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가족 공동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큰 은총을 내려주셨다는 소식을 전한다. 2.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내려주신 엄청나게 큰 은총은 그들이 환난을 만나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쁨이 넘쳤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많은 희사(구제)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3 바울은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들이 분수에 넘치도록 구제에 참여했다고 확신한다. 4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는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특전으로 여기고 자진해서 참여를 간청했었다고 덧붙인다. 5 이것은 바울 일행이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주님께 자신들을 바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바울 일행에게도 헌신했다.
6 바울 일행이 디도를 고린도에 보낸 이유는 고린도 교회도 이미 시작한 은혜로운 모금사업을 마저 끝내라고 권면하기 위해서였다. 7 고린도 교회는 모든 일에 뛰어났다. 믿음, 언변, 지식, 열성, 바울 일행에 대한 사랑에 고린도 교회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칭찬한다. 그러니 모금사업에 있어서도 뛰어나기를 요청한다. 8 바울은 모금사업을 끝내라는 요청이 명령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의 이랴기를 들려주어 고린도 교회도 진실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9 진실한 사랑을 베푼 최고의 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의 은혜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들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다. 10 바울은 이 구제사업이 일년전에 고린도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고린도교회가 자원하여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완성하면 좋겠다고 권면한다. 11 처음 시작할 때 품었던 의욕을 실천에 옮겨 힘이 자라는 대로 완성하라고 당부한다. 12 마음이 내켜서 구제하면 얼마를 바치든지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실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낼 필요는 없다. 13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평의 원리를 일깨워 준다. 14 넉넉하게 살 때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그들이 넉넉하게 살게 될 때에 고린도 성도들의 궁핍을 덜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15 바울은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라는 성서의 기록으로 공평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공평의 원리다. 성도들은 서로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공평이다. 부의 상향 평준화면 좋겠지만 경제적 원리로는 불가능하다. (없는 것이 생길 수는 없다.) 결국은 하향 평준화를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가진 사람의 궁핍함을 채워주어야 한다. //바울은 부요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 지셨다고 공평의 원리에 대한 완벽한 예를 들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는 부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원리로 이미 궁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사역을 시작했고,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들도 구제사역을 했다. 환난과 고통가운데,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공평의 원리를 실천하고자 했다. 어릴적 숱하게 듣던 말이 ‘콩 반(한)쪽이라도 나눠 먹어라’ 였다. 다분히 성경적이다. 공평의 원리를 시작했으면 시작했을 때의 의욕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웃사랑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하나님사랑이다.

고린도후서 7:2-16

고린도후서 7:2-16 (공동번역) 읽기

2 다시한번 마음을 열어 바울 일행을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바울 일행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고, 아무도 망쳐놓은 일이 없으며, 아무도 착취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3. 그렇다고 고린도 성도들의 잘못이라고 책망하려고 편지를 쓰는 것도 아니다. 바울 일행과 고리도 성도들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가 아니야고 반문한다. 4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전적으로 믿고 자랑까지 한다. 온갖 관을 겪으면서도 큰 위안을 받고 기쁨에 넘쳐있다고 말한다. //성도의 공동체 교회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다. 운명공동체다. 운명공동체에 필요한것은 용서와 화해다.


5 그러나 바울 일행이 처한 상황은 조금도 쉴 수 없었다. 쉬기는 커녕 가는 곳마다 환난을 당했다. 밖으로는 싸움을 겪었고 안으로는 두려움도 있었다. 6 실의에 차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디도를 보내주셔서 바울 일행을 위로해 주셨다. 7 디도가 고린도성도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에 큰 위를 받았다. 고린도성도들이 바울을 보고싶어하고 바울을 열렬히 옹호한다는 소식에 더욱더 기뻐하고 있다고 전한다. //성령충만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는 바울 일행이라도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환난의 고통과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님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고난받고 두려움에 처한 성도를 위로하신다.


8 (그래서) 바울은 디도편에 고린도에 보낸 이전 편지가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소식에 후회했지만 9 지금 오히려 기뻐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편지로 인해서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손해가 아니라고 말한다. 10 하느님의 뜻대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상심을 후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세속적인 상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이다. 11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은 바로 그 상심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루어 준 것이 많았다. 열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다. 의분이 생겼다. 두려워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워하는 마음과 헌신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악을 징벌할 줄 알게 되었다. 이렇듯 고리도성도들은 그 사건?에 있어 조금도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다. 세상염려와 다르다. 예수께서도 세상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공동번역은 상심이라고 번역한다. 우리가 상심할 이유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성도가 구원에 이르는데 유익하다.

12 바울은 이 전 편지를 쓴 이유가, 그 못된 짓을 한 사람이나, 또는 그에게 손해를 입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성도들의 열성을 하느님 앞에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전한다. 13 그 결과 바울 일행은 많은 위로를 받았고, 디도의 소식에 기뻐하게 되었다. 디도는 고린도성도의 덕택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14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 성도들을 칭찬했는데, 고린도성도들은 바울을 칭찬대로 디도를 잘 대접해서 바울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자랑이 허황된 말이 아님이 드러났다. 15 디도는 고린도 성도들이 자기 말을 순종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환대했다고 회상하며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16 디도의 소식으로 바울은 조금도 꺼리낌없이 고린도 성도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한다.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가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했음을 후회했지만 디도의 소식으로 위로와 기쁨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열성으로 부지런히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악을징벌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유익을 열거한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한 사람에게는 이렇듯 구체적인 삶의 변화, 성숙한 신앙의 열매가 나타난다.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고린도후서6:14-7:1

고린도후서6:14-7:1 (공동번역)

14 (고린토 교우들에게 마음을 활짝 연)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짝짓지말라고 경고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와 불의가 짝이 될 수 없듯이,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듯이,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마음이 합할 수 없듯이,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16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이 어울리지 않는 이치다. 성도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으로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살며 거니신다. 하느님과 성도 사이에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관계가 성립한다.17 따라서 성도는 부정한 것에서 빠져나와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 18 하느님은 부정한 데서 나온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맞아 주시는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 7:1 이 약속을 따라 우리는 몸과 심령을 조금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서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생활을 하며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바울은 마음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신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달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마음을 열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불의와 어둠과 우상과 불신이다. 이런데서 빠져 나오라고 경고한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성립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지만, 부정한 것에 빠져 있다면 빠져 나와서 부정한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 몸과 심령을 조금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하며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 불신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 불신자들과는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적용한다. 불신자들은 거룩한 성, 곧 새예루살렘에 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속의 가치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것은 불신자들을 멀리하고 그들과 싸우라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성도로 하여금 더 정의롭게, 더 빛 가운데, 우상을 따르지 않고 예수를 믿으라(따르라)고 명령한다. 우리가 부정한 데서 나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듯이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예수를 믿는 (따르는)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6:3-13

고린도후서 6:3-13 (공동번역) 읽기

3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전도사업이 비난받지 않도록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공공장소에서 고성방가로 전도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바울 일행의 말을 곱씹어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4-5 바울 일행은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았다. 심지어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도 겪어내야 했다.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냈다. //하나님의 일에 무슨 복이 따르는가? 인내의 열매밖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자네 이 길을 가려는가?’ 자문하게 된다. 특별히 심한 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후원을 받은 것은 전문 사역자(목회자나 선교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특권이 아니다. 6-10 바울 일행은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고 밝힌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그들은 두 손에 정의의 무기를 든다.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간다. 그들은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게 산다. 이름 없는 자 같으나 하늘에 이름을 올린자로 산다. 죽은 것 같으나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는 영생을 누린다.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전도자들이 두 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많은 단어 중에 하필이면 ‘정의’를 들었다고 했을까? 복음은 개인적이지 않다. 공동체적이다. 관계적이다. 복음이 공동체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지 못할 때 죽은 것이 된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겸손하고 굶주린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이 있다.
11-13 바울은 고린토 교우들에게 숨김없이 말한다. 바울은 고린토 교우들에게 마음을 연다. 더 이상 (어떤?) 고린토 교우들처럼 마음을 닫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적) 자녀같은 고린토 교우들도 자신들과 같이 마음을 활짝 열라고 권면한다. //마음을 연다. 그것도 활짝 연다. 복음의 포용성이다. 자비다. 긍휼을 베푸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정의는 심판의 도구가 아니다. 정의는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