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1-6:2

고린도후서 5:11-6:2 (공동번역) 읽기

11 (이 땅에서 행한대로 보응받는다고 선포한) 바울 일행은 자신들은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잘 알고 있고,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알리길 원한다. 하느님께서 바울 일행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계시듯, 수신자(고린도성도)들도 자신들을 사실대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신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두려움이란 전적인 약자임을 인정하는 자세다. 12 바울 일행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잘 알고 계신 것을 수신자들에게 내세우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고) 자신들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수신자들이 겉만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에게 반박할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과 교제 유무가 중요하다. 13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미쳤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미친 것이고 온전하다면 그것은 수신자들을 위해서 온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미쳤다는 것과 온전하다는 것은 성령 충만을 뜻한다. 14 바울 일행은 하느님을 위해 미치고 수신자인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온전한 것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5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함이다. //성령이 성도들에게 강권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 16 바울 일행은 더 이상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해서 판단한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따르면) 새사람이 된다고 선언한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다. 18 새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을 뜻대로 나지 않고) 하느님으로부터 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바울 일행과 고린도 성도들을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고린도 성도들이 사람들과 화해하도록 자신들에게 임무를 주셨다고 말한다. 19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인간과 화해하셨듯이, 이 화해의 이치를 바울 일행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다. //복음의 핵심은 화해다. 하나님과의 화해요 이웃과의 화해다. 화해는 사랑과 용서의 다른 표현이다. 20 바울 일행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절이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수신자들에게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화해하라고 하느님께서 직접 호소한다고 말한다. 21 하느님은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서,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다. //화해와 무죄선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유효하다.
6:1 바울 일행은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수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2 지금이 하느님의 자비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선포한다. //그리스도를 따르지(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이 헛된 것이 된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이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구원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절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4:16-5:10

고린도후서 4:16-5:10 (공동번역)

16 예수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겪어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낙심하지 않는다. 외적 인간은 낡아져도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17 이땅에서는 죽을 고비라도,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면 잠깐의 가벼운 고난에 불과하다. ( 복음과 함께하는 고난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 곧 영생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18 그래서 우리는 잠시뿐인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란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린다.
5:1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몸이 죽으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서 살게(영생하게) 된다. 하늘의 집, 곧 영생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집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집이다. 2 이 땅에서는 신음하지만 하늘에 있는 집에는 신음이 없다. 3 이 땅의 집(육신의 몸)을 잃어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집(영생)이 있다. 4 그렇다고 이 땅의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죽을 이유는 없다. 이 땅에서도 하늘의 집에서 사는 것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를 갈망해야 한다. 5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늘의 집에서처럼 살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고 성령께서 그 보증이 되신다. 6 바울 일행이 마음이 든든한 이유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주님과 떨어져 살지만 7 보이는 주님이 안 계셔도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8 마음으로는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 원한다. 9 바울 일행은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10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 우리는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우리가 행한 대로 상과 벌늘 받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고린도후서 4:7-15

고린도후서 4:7-15(공동번역)

7 하느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다. 우리의 가치는 질그릇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담아주신 보화로부터 나온다. 8 보화를 담고 있는한 우리는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을 이유다. 9 궁지에 몰려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 맞아 넘어져도 죽지는 않는다. 10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산다.) 11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언제나 예수를 위해서 죽을 위험을 겪는다. (복음을 위해) 죽음의 위험을 겪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12 예수와 함께 죽음이 우리 속에서 약동하는 생명이다. 13 바울은 성경 말씀대로  믿은 바를 말한다. 14 바울이 믿는 바는 주 예수를 살리신 하느님이 예수와 함께 바울 일행을  다시 살리셔서 하느님 편에 (예수와 함께) 바울 일행과 고린도 성도들을 앉히신다는 것이다. 15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서 하느님께 영광이 된다.

//우리의 가치는 내가 어떤 그릇이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른다. 우리가 가치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화를 (생명을) 담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보화(생명)으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우리 안에 있는 보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도 예수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살리셔서 하나님 편에 예수와 함께, 뭇 성도와 함께 앉히실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영광이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듯, 성도도 성부와 성자와 하나 된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요 17:21) 성취다. 

고린도후서 4:1-6

고린도후서 4:1-6(공동번역)

1 성령의 심부름꾼, 복음을 전하는 종의 직분을 맡은 바울 일행은 결코 낙힘하지 않는다. 2 그래서 떳떳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창피스러운 일은 버리고, 간교한 행동은 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를 밝히 드러냈다. 3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려졌다. 4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한다. 5 바울 일행이 전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복음이다. 이 일을 위해 바울 일행은 수신자들의 종이 되었다. 주님의 종이라고 하지 않고여러분의 종이라고 선포한다. 6 빛을 만드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도 빛을 비추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성령의 심부름꾼들은 복음을 듣는 자들의 종이어야 한다. 주님의 종이라고 자신들을 높이지 않는다. 바울 일행은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종이 되었다. 목회자들이 주님의 종님이라는 말이 안 되는 표편을 만들어 낸 한국교회는 바울일행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복음을 가진자는 (사도라도) 우월감에 젖어서는 안 된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빛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를 밝히 반사하는 거울로 살았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았다면 그 빛을 따라 살아야 한다. 겸손과 순종의 길이다. 

고린도후서 3:7-18

고린도후서 3:7-18 (공동번역)

7 율법을 전달해 준 심부름 꾼이었던 모세는 잠시나마그 얼굴에 찬란한 광채가  빛났다. 8 그렇다면 성령의 심부름꾼의 영광은 얼마나 더 영광스러울까? 9 사람을 단죄하는 율법의 일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사람을 무죄석방하는 성령의 일에는 얼마나 더 큰 영광이 있을까? 10 지금의 성령의 영광은 과거의 율법의 영광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더 크다. 과거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11 잠깐 있다 없어질 율법의 영광이 빛났다면, 영원히 계속될 성령의 영광은 더 찬란히 빛날 것이다. 12 이것이 우리가 가진 확신에 찬  희망이다. 13 우리는 모세처럼 영광/광채가 없어질까봐 수건으로 가릴 필요가 없다. 14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건에 가려진 광채처럼 우둔해졌다.  그래서 율법을 읽어도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비로소 벗겨진다. 15 오늘날까지도 율법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은 수건으로 가려져 있다. 16 이 수건은 모세처럼 주님께 돌아가야만 비로소 벗겨진다. 17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18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을 벗어버리게 하신다.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게 하신다.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모세에 의해 수건으로 가려진 영광은 주님께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벗겨진다(16절). 수건은 완고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성령으로 오셨다.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17). 성령 하나님은 율법의 단죄로부터 무죄석방, 곧 자유를 선언하신다(9). 이 자유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 때 유효하다(17). 이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집해유예 상태로, 성령 하나님의 보호관찰 아래서 자유를 누린다. 참 자유는 주님과 같은 모습,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다(18). 영생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이다. 성령께서 이루신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심부름 꾼, 복음/영생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