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11

야고보서 1:1-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야고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종이라고 밝힌다. 종은 단순히 섬기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수족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to serve 는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to be slave 여야 주인에게 온전히 복종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야고보라고 적지 않고, 종이라고 밝힌 것이다.
//시련을 기쁨으로 여겨야 할 이유는 인내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했다. 야고보는 성도가 이룰 소망을 흠잡을 데가 없는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세상에는 완전하고 원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완전하고 원만한 사람은 완전하고 원만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성도는 시련을 기쁨으로 여길 지혜를 구해야 한다. 시련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경인물이 욥이다. 세상지혜를 모아도 시련에 고통만 더할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해결책이 아니라 지혜를 주셔서 시련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인내력을 주신다.
//성도가 구해야할 지혜가 부를 축적하거나 나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공평하게 되는 지혜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공평하게 되는 것이 시련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자비를 베푸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높여주시고, 부한 자를 낮추어주셔서 모두 복되게 하시는 지혜를 주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고 하신다. 나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나를 복종시키라고 하신다.

이사야 66:15-24

이사야 66:15-24

주의 종들에게는 주님의 손길이 평화와 위로로 나타나겠지만 원수들에게는 주의 노여움이 폭발할 것이다. 주님이 온세상에 대한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 벌받아 죽을 사람이 많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라도 음행한 여제사장과 여제사상을 따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들이 하는 일과 꾸미는 모든 것을 끝장내신다. 대신 다른 말을 쓰는 모든 민족들을 모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섬나라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주님의 영광을 전하게 하신다. 주의 종들에게 그들을 주님의 거룩한 산 예루사렘에 불러모으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뽑아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지으실 새하늘과 새땅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새하늘과 새땅이 영원하듯 주의 백성의 이름도 영원할 것이다. 매달 초하루와 매주 안식일에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을 경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장막 밖으로 나가 주님을 거역하던 사람들은 죽을 것이다. 거역하던 자들을 사르는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보고 역겨워 할 것이다.

이사야 66:15-24

//소망이 있으면 절망도 있는 법이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망하는 악인도 반드시 있다. 성경은 주님이 심판주로 오셔서 각자의 소행대로 갚으신다고 가르친다. (이신칭의든 이신득의든 이 믿음은  나의 일방적 맹신이 아니라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어야 한다. ) //하나님나라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든 열방에서 주님 앞에 나와 경배하는 사람들이다.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 먼 곳 섬나라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시민이 되어 주님을 경배한다. 주님은그들을 제사장들로 세워 먼 곳에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신다. //그러나 주님의 거룩한 산에서 떠난 사람들, 주님을 거역한 사람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다. 주님의 거룩한 산은 시온이고, 시온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거룩한 산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저주요 영벌이다.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을 경배하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거역하는 꼴이다. 영생과 영벌은 이렇게 나뉜다. 임마누엘이 아니면, 곧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영벌이다. ////주의 말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이사야 66:1-14

이사야 66:1-14

하늘이 야훼의 보좌요 땅은 야훼의 발판이라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따라서 사람이 주님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다. 주님은 주님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허풍쟁이들이 아니라 억눌리고 마음이 찢어지고 주님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굽어보신다. 주님은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면서도 우상을 찬양하고 우상에게 마음을 쏟는 사람들을 괴롭히신다. 주님께 응답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거스리는 일을 하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권한다. 주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받으라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주님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 하실 것이다. 주님을 불렀는데 주님이 모른다고 하시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야훼께서는 원수들에게 보복하신다.
그런데 시온은 몸풀 겨를도 없이 출산을 한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은 주의 백성은 하루만에도 생겨난다. 하느님이 하신다. 새예루살렘에게 즐거워하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뻐 뛰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에서 야훼의 품에 안겨 풍요를 누리라고 명하신다. 새예루살렘에 평화의 강물이 흘러든다. 개울 같은 민족들이 평화의 강물에 합류 한다. 새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새내기 주의 백성들을 어미처럼 위로하실 것이다. 기존의 주의 백성들은 이 모습에 흐뭇하며 소생케 될 것이다. 주의 백성에게는 야훼의 손길이 이렇게 나타나고, 원수들에게게는 주의 노여움이 폭발할 것이다.

이사야 66:1-14
//하나님은 하늘에서 건물 성전을 내려다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송구스럽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신다. 송구스럽게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 떠는 사람들을 굽어보신다. (가난한자, 애통하는 하는 자가 복되다.) 따라서 성도가 지어야 할 것은 건축물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영적 교회(성전)이어야 한다. 예배당 건물이 없어서 성전을 이루어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배당 건축으로 교회가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순종을 원하신다. 오늘 우리는 예배가 순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한다면 예배도 제사와 다를 바 없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곧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주여 주여 주님을 부른다고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더 이상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민족가운데서 새예루살렘에 들어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주의 백성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이 시온의 시민권자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루 아침에 열방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평화의 강물에 참여하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자녀 삼으시고 돌보신다.

이사야 65:17-25

이사야 65:17-25

주님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한다고 선언하신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하신다. 대신 새창조를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새로 만드신. 예루살렘은 주님의 기쁨이요 예루살렘 시민은 주님의 즐거움이 된다. 예루살렘은 슬픔이 없는 곳 탄식이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모두가 백세인생을 누리는 곳이 된다. (백세를 누리지 못하면 벌을 받은 자일 것이다.) 자기 손으로 지은 집에서 제 손으로 가꾼 것을 먹을 것이다. 자기 것으로 만족하고 이웃의 것을 빼앗는 일이 없는 곳에서 나무처럼 오래도록 살게 될 것이다. 아무도 헛수고 하지 않겠고 자식으로 이픔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야훼께 복 받은 종족, 후손과 더불어 살 것이다. 그들이 기도하기 전에 그들의 필요를 들어 주겠다.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게 되는 곳. 시온 (주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5:17-25
//새하늘과 새땅!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는 세상이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세상이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을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신다. //우리가 잘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 아니던가?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이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 //시인은 인생을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노래했지만,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백세인생이다. 백세까지 못살면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 년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백세는 시간적 백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년수를 뜻한다. 따라서 기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새예루살렘에서 사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새예루살렘은 지리적 예루살렘이 아니다. 시온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나라다. 천국이라고 말해도 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특징은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완전히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어린양이 늑대처럼 육식을 하는 나라가 아니다. 육식을 하는 늑대와 사자가 육식(기득권)을 포기하고 어린양과 소처럼 초식을 하게 된다. 뱀이 흙을 먹는 나라다. 곧 하나님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그렇다면 성도도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득권을 적당히 잘 양보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세례자 요한은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고 고백했다. 내가 흥해야 하나님께서 영광받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사야 65:1-16

이사야 65:1-16

주님은 빌지 않은 자의 청도 들어주고 찾지 않던 자를 만나 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민족들에게도 계시하셨다. 하물며 주의 백성이랴. 주의 백성이 배신해서 제멋대로 살아도 두팔을 벌리고 주의 백성이 돌아오길 기다리셨다. 그래도 주의 화를 돋우는 백성들.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분향하는 백성들. 어둠 속에 살고 부정한 음식을 먹는 백성들이 주님의 화를 돋우니 어찌 벌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시겠냐고 반문하신다. 야훼께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죄를, 그들의 소행대로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야훼께서는 주의 종들을 아껴 망가뜨리지 않고 그대로 위하신다. 후손들 가운데 뽑은 자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주를 찾는 주의 백성에게는 사론 평야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야훼를 저버렸고 산당에서 이방신을 섬겼으니 죽어 마땅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하는 주의 백성은 벌을 받아야 한다. 오직 주의 종들만이 먹고 배부를 것이다. 주의 종들만이 기뻐할 것이다. 배신한 백성들은 창피를 당할 것이다. 주의 종들은 가슴이 벅차 환성을 지르겠지만 배신자들은 가슴이 쓰려 아우성치고 마음이 찢겨 울부짖을 것이다. 옛 이름으로는 천벌을 받는다. 그러나 주의 종은 새 이름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암담하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오직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게 될 것이다.

이사야 65:16
//우리는 주 하나님께 빌지도 않았고 주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지만, 주 하나님께서 예수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우리는 주 하나님께 배반으로 점철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주의 백성(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난 새이스라엘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성도다. //그렇다면 주를 찾아야 한다. 주를 찾는 자만이 시편 23편 시인이 노래하는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겠지만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16절.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겠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맹세하리라. – 진리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것이 복이다. 다시 말해 진리의 하나님께 우리의 무릎을 꿇는 것이 복이다. 왜냐하면 복 중의 복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종이 되어 주님의 나라로 초청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의 최고봉은 하나님나라요, 하나님나라는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매일 빌어야 할 마땅한 복은 임마누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