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15-24

여호수아 2:15-24

15-21 라합의 집은 성벽에 붙어 있었다. 라합은 두 정탐원을 창문에서 밧줄로 내려주었다. 라합은 두 사람을 쫓는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도록 추적자들이 돌아오기까지 사흘동안 산으로 피해 숨어 있다가 가라고 말했다. 두 정탐원은 라합에게 분홍줄을 주면서 자신들을 내려준 창문에 달아 표시를 하고 라합 일가 친척들이 라합집에 다 모여 있으라고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갔다가 죽으면 그들의 탓이라고 말하고, 집 안에 머물러 있다가 맞아 죽으면 그 핏값을 자신들이 받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이 비밀이 누설되면 맹세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라합은 동의했다. 두 정탐원이 떠나고 라합은 분홍줄을 창에 달아 두었다.
22-24 두 정탐원은 산으로 피해 추적자들이 여리고로 돌아올 때까지 사흘을 기다렸다가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여호수아에게 돌아와서 자기들이 당한 모든 일을 보고했다. 그들은 “야훼께서 그 땅을 모두 우리 손에 부치셨습니다. 그 곳 주민들은 우리들을 무서워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여호수아2:15-24
//라합은 거짓말로 자신의 신변을 희생하면서까지 두 정탐원을 구(원)했다. 사실 라합이 두 정탐원를 숨겨주면서부터 그들은 공동운명체다. 라합에게는 두 정탐원의 겨레가 라합의 겨레요 두 정탐원의 하나님이 라합의 하나님이 되었다. (후대에 룻이 나오미에게 동일한 고백을 한다.) 라합의 거짓말이 탄로나든 두 정탐원이 잡히든 죽음 밖에는 어떤한 일도 이들을 갈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라합의 주도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주막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대하는 주모의 경험에서 나온 것일까? 라합도 여느 여리고성 (혹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마음이 녹았지만, 그들과 달리 ‘그러면 어찌할꼬?’ 라는 질문을 던졌고, 하나님께서는 라합에게 어찌할 마음을 심어 주셨을 것이다. 그 결과 녹았던 마음이 담대해져서 두 정탐원을 구하기까지 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말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을 내신 하나님 이라는 라합의 고백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지혜다. //라합의 손에 의해 (겨우) 살아 돌아온 두 정탐원의 보고 역시 라합과 두 정탐원이 공동운명체림을 드러낸다. 그들의 보고는 라합이 먹여준 말에서 거의 가감없이 그대로였다. 라합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순종했다면, 정탐원들이 라합을 통한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엽지추(一葉知秋)랄까? 두 정탐원은 라합만 만나보았으면서도 여리고 성과 나아가 가나안 전부의 운명을 아는 것처럼 보고했다. ////우리가 어찌할꼬? 매 순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에 담대히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 2:1-14

여호수아 2:1-14

1-7 여호수아는 시띰에서 예리고 지역을 살펴보고 오라고 정탐원 둘을 보냈다. 정탐원은 예리고로 가서 라합이라는 창녀의 집을 찾아가 거기에서 묵었다. 이 사실이 예리고 왕에게 들어갔다. 예리고 왕이 라합에게 전갈을 보내 정탐원을 내놓으라고 전했다. 그러나 라합은 두 사람을 지붕에 숨겨두고, 그들이 왔었지만 정탐원인지 몰랐고 성문이 닫힐 때쯤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급히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추적대는 요르단강 나루터까지 쫓아갔고, 추적대가 나가자 성문은 닫혔다.
8-14 라합은 지붕에 올라가 정탐원들을 만났다. 라합은 야훼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줄 믿는다고 말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야훼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두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의 땅을 전멸시킨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리고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느님 야훼야말로 창조주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했다. 라합은 자신이 정탐원들을 잘 봐드렸으니, 정탐원들도 자기 가문 사람들을 잘 봐주겠다고 맹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맹세의 표를 달라고 주문했다. 라합은 자기 가문에 딸린 모든 식구를 살려달라고 말했다. 정탐원들이 라합에게 정탐사실을 누설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는 한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라합 가문을 봐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야훼께서 여리고를 주실 때 라합 가문을 성실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호수아 2:1-14
//여호수아가 굳이 정탐원을 파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탐원들은 우연히 라합의 집에 들렀을까? 라합의 일부러 찾았을까? 라합이 창녀라고 소개 되지만 우리식으로 말하면 주막집 주모가 아닐까 싶다. 정탐원들은 여리고에서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라합 주막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라합 주막을 찾았을 것이다. //많은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라합은 새로운 두 사람을 이스라엘이 보낸 정탐원으로 바로 알아보았을 것이다. 라합 뿐만 아니라 주막의 다른 사람들도 두 정탐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여리고 왕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라합은 정탐원을 살리느냐 고발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정탐원을 살리기로 했다. 그 길이 라합 자신과 가문이 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이스라엘에게 넘기셨음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 편에 서는 것이 마땅하다. //라합의 선택에 두 정탐원이 한 일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라합의 마음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마음이 녹았다고 모두 라합과 같은 결정/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여리고를 정탐하기 위해 보냈지만, 하나님은 라합 가문을 구원하기 위해 (마치 롯을 방문한 천사처럼) 두사람을 천사처럼 사용하셨다. 사람들은 라합을 창녀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의인이었다. 하나님의 자비를 읽는다. ////하나님의 자비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라고 하신다.

여호수아 1:1-18

여호수아 1:1-18

1-4 야훼의 종 모세가 죽었다. 야훼께서 눈의 아들, 모세의 부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니고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발바닥이 닿기만 하면 그곳을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도 대략적인 경계를 말씀하셨다. 

5-9 야훼께서 여호수아 앞길을 막을 것은 없다고 하셨다. 야훼께서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여호수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여호수아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신다.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배하여 나눠줄 사람은 여호수아라고 하신다. 그러니 용기 백배, 있는 힘을 다 내어 야훼의 종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모든 법을 성심껏 지키라고 하신다. 그러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고 약속하신다. 모세이 법이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고 다시 한번 약속하신다. 명령하시는 분이 야훼니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고 무서워 떨지 말라고 하신다.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하느님 야훼가 여호수아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10-11 여호수아는 전군의 장교들에게 요르단 강을 건너 하느님 야훼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러 들어갈 준비를  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르우벤 사람, 가드사람, 므나쎄 지파의 절반에게 야훼의 종 모세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과 가축은 모세가 그들에게 준 요르단 강 이쪽 편에 머물러 있게 하지만 그드르이 군인들은 부대를 편성해서  앞서 건너가 동족들과 함께 싸우라고 명했다. 동족들이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한 후에야 요르단 이쪽으로 건너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명령하는대로  그대로 행하겠다고 응답했다. 모세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순종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느님 야훼께서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길 빌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지시를 거스르고 명령을 듣지 않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죽어야 한다고 말하며, 여호수아에게 힘을 내시고 용기를 가지시라고 축복했다.

여호수아1:1-18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자, 장교들이 여호수아를 축복한 말씀이다.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축복/기도해야 할 내용도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명하신 말씀을 따라야 한다. 아첨하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기준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약속도 율법도 아니고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장교들이 여호수아를 위해 축복한 것도 하나님께서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길 빌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와 주셔야 한다. 그래서 장교들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 곁을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곁을 떠나지 않으시길 빌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결해야 한다. 성결이란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말씀을 한눈 팔지 말고 성심껏 지키면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형통중의 형통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형통이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뿐만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형통이다. 고난 없음이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형통이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백성은 여호수아에게 장군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모세를 야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무슨 명령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겠습니다.  어디로 보내시든지 그리로 가겠습니다.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다. 지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야고보서 5:12-20

야고보서 5:12-20

12 맹세하지 말아라. 자기 주장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말씀에 따라 마땅히 할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는다. 13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라고 권한다. 14 아픈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를 청해야 한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15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가 지은 죄도 용서하실 것이다. 16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 온전해 진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낸다. 17-18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간절히 기도하자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은 비를 내렸고 땅에서는곡식이 열매를 맺었다. 19-20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그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줄 것이다.

야고보서5:12-20
//야고보가 열거한 믿음의 행위들.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라는 의미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은 하고, 하지 말라고 명하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명한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고난 당하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한다. 1장에서 이미 적용했듯이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고, 성도가 구해야 할 하나님의 지혜는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여야 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가 믿음이다. //기쁠 때는 자화자찬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찬양을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아플 때에는 믿음의 원로들을 초대하는 것이 믿음이다. 육신의 아픔도 치료해야 하지만 마음의 아픔과 영적인 아픔인 죄도 치료받아야 하는데 공동체적인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성도에게는 결코 건강이 최고가 아니다. 임마누엘이 최고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임마누엘보다 더 큰 처방은 없다.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든다. 엘리야가 가절히 기도해서 비가 안 오고 간절히 기도해서 비가 다시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뜻이어서 비가 안 오고 다시 내렸다. 엘리야와 우리의 정신적 믿음의 차이가 아니라 엘리야와 우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차이를 읽어야 한다. 순종이 믿음이다. //믿음 중의 믿음은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 돌이켜 바른 길 가게 하는 것이다.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가게 할 수는 없다. 먼저 바른 길을 가는 것이 믿음이다. 성도가 바른 길을 갈 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믿음의 길을 가고 있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위를 믿음의 상대어로 읽어서는 안 된다. 신행(언행)일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5:7-11

야고보서 5:7-11

재물을 쌓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7-8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농부가 추수 때까지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하듯이.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 9 서로 남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판주가 가까이 오셨다. 10 성경에는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가 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언자들이 좋은 예다. 11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들이 행복하다. 욥이 좋은 예다. 이렇듯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는 참으로 풍성하다.

야고보서5:7-11
//사람들이 재물을 쌓아두는 이유는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당장 오늘의 끼니 걱정에 내일을 염려할 여유도 없다. 부자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여 재물을 쌓는다. 그러나 재물은 썩어질 것이다. 내일을 책임져주지 않은다. //내일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물을 줘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농부가 할 것은 추수 때까지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수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고 반복해서 언급한다.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는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쌓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남을 탓하지 말라고 하신다. 심판은 어차피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오히려 세워주어야 한다. //고난을 끈기 있게 견디어 낸 사람들로 예언자들과 욥을 언급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복을 누렸다.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위로)와 풍성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그들이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의 열매다. 이제 우리가 연민과 자비를 베풀어 자비를 입는 복을 영원토록 누려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