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3:23-34

열왕기상 13:23-34

//늙은 예언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물을 마셔 기운을 차린 하나님의 사람은 나귀까지 얻어 타고 유다로 돌아오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극도로 피곤했을 지라도 생명이었다면, 먹고 마시고 기운을 차리고 나귀까지 얻어 탔어도 그 기쁨은 잠시요, 불순종의 결국은 죽음이었다. 안타깝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을 설명하면서 모세가 믿음으로 죄의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는 길을 택했다고 풀어낸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일시적인 안락을 택한 예가 아닌가 한다. //늙은 예언자는 자기가 대접한 하나님의 사람이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탄식했다.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말로만 예언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사관은 늙은 예언자의 말이 성취 되자 잠시 ‘늙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거두어 나귀에 싣고 돌아와 자기 가족 묘지에 안장하고 자식들과 애곡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매장한 후 사관은 다시 ‘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늙은 예언자는 자기가 죽으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묻힌 무덤에 같이 묻어 달라고 유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다시 예언했다. 이렇게 여로보암의 왕국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예언자가 생겼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런 일이 있음을 들었을 것임에도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산당의 사제(제사장)을 뽑아 임명하는 죄를 저지른다. 여로보암의 왕가는 이런 죄로 결국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과 멸망은 같은 것이다. 역으로 영생은 순종의 다른 말이다. //오늘도 영생의 외줄타기를 한다. 좌우로 치우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게 인생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이미 떨어졌어도 모를 일이다.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열왕기상 13:11-22

열왕기상 13:11-22

//베델 제단에서 여로보암과 제단에 일어난 일은 목격자들이 있었다. 늙은 예언자의 아들은 여로보암이 임의로 세운 제사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버지에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얘기 했다. 늙었다는 것은 나이가 많은 예언자라는 뜻이겠지만, 예언을 한지 오래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들의 증언은 이 늙은 예언자에게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니지 않을까? //늙은 예언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가 만난다. 하나님의 사람은 느티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유다(예루살렘)과 베델은 16킬로 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길이 굽이굽이 휘었다면 거리는 하프마라톤 정도 되었을 것이다. 걸어서 세네시간은 걸린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니 피곤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순종의 결과가 항상 기쁨인 것은 아니다. //늙은 예언자가 거짓말까지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불러 먹고 마시운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결국 늙은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늙은 예언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 왔을 뿐 아니라 먹고 마셨으니 죽어서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늙은 예언자의 예언의 욕심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죽음에 몰아 넣는다. //확실한 명령이 있는데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속아넘어갔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암송까지 하며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나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누락시며 적용하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한국교회가 순종보다 평안만을 떠들어 대는 그럴싸한 거짓 설교에 속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늙은 예언자들, 늙은 설교자들을 주의하자. 단순히 나이가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없이 기존의 교리에 갇혀 사람의 말을 하는 종교사기꾼들을 조심해야 한다. 결국 스스로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이 되어야 한다.

열왕기상 13:1-10

열왕기상 13:1-10

여로보암이 베델 제단에서 분향을 하려고 할 때, 하느님의 사람이 야훼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유다로부터 베델로 왔다. 하느님의 사람이 제단을 바라보며 다윗의 가문에서 요시야란 한 아들이 태어나서 베델 제단 위에 분향하는 산당의 사제들을 죽여 그 뼈를 베델 제단 위에서 태우겠다고 야훼께 받은 말씀을 외쳤다. 하느님의 사람은 야훼께 말씀을 받은 증거로 제단이 산산조각 나고 그 위에 있는 잿가루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로보암은 하느님의 사람을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의 손이 곧 마비되어 오므릴 수 없게 되었다. 곧 이어서 하느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제단이 산산조각 나고 제단 위에 있던 재가 쏟아졌다. 여로보암은 하느님의 사람에게 야훼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 자기 손이 다시 회복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애걸했다. 하느님의 사람이 야훼께 기도하자 여로보암의 손이 즉시 나았다. 여로보암은 하느님의 사람에게 식사와 선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은 왕실 재산 절반을 준다해도 왕의 궁전에는 가지 않고 식사는 물론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다. 야훼께서 식사하거나 물을 마시지 말고 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는 하느님 말씀대로 베델로 올 때 왔던 길과 다른 길로 돌아갔다. 

https://quietwaters.blog/2023/10/06/

열왕기상 13:1-10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여로보암과 유혹을 물리친 하나님의 사람이 비교된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다 손이 마르고 말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손을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부탁했고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 여로보암 손 낫기를 구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로보암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자비하시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구해야 했던 것은 마른 손의 회복보다 완악한 마음의 회복이어야 했다. 마른 손을 잘라 버리고서라도 다윗의 길을 가기 위해 회개해야 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몰랐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식사와 선물로 보답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감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했다. 감사하다면 다윗의 길로 돌이키겠다고 회개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그 어떠한 댓가를 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가! 예루살렘에서 베델은 10마일 정도라고 한다. 하프 마라톤보다도 짧다. 그래도 보통 사람에게는 편도 세네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이 길을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갔다 오라고 하신 하나님이 이상한 분이실까? 그러나 하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열왕기상 12:25-33

열왕기상 12:25-33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을 수축하고 후에 브누엘로 옮겼다. 여로보암은 나라가 다윗의 왕가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야훼의 전에 제사하러 올라가다 마음이 유다왕 르호보암에게 쏠리게 되면 자신을 죽이고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베델과 단에 두고 이집트에서 구해주신 신이 여기 있으니 번거롭게 예루살렘에 제사하러 올라가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제사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예배하는 죄를 지었다. 왕은 또 언덕세 산당을 짓고 레위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서 사제를 임명했다. 여로보암은 또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드리는 순례절도 임으로 만들고 사제들을 임명했다. 여로보암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순례일(제팔월 십오일)에 베델의 제단에 올라가 친히 분향제를 드렸다.

열왕기상 12:25-33

//다윗의 길! 여로보암도 다윗 처럼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면 여로보암의 왕좌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자기를 떠나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을 염려했다. 여로보암은 어떻게 하면 다윗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대신, 백성들이 자기를 떠나 르호보암에게 가면 어쩔까 하는 세상 근심을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외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이라고 가르친다.) 돌이켜 보면 여로보암은 세상 근심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세상 근심이 언약에 대한 불신을 불러온다. 반대로 세상 근심을 지울 수 있는 것이 언약에 대한 신실함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언약에 대한 불신이 우상을 만들게 한다. 여로보암에게는 금송아지였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출애굽 하자마자 범했던 죄 그대로다. 한 마디로 역사를 잊었다는 증거다. 역사도 잊고 말씀/율법도 잊어버리니 제사장도 절기도 맘대로 정하고 만다.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은 이미 나락에 떨어졌다는 방증이다.ㅠㅠ 이 시대의 금송아지는 무엇일까? 돈, 학력, 권세, 명예 등등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스스로가 제사장 되고 스스로가 절기를 만들어 지키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는 꼴이다. 확실한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여로보암의 길을 간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곧 지옥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10/05/

열왕기상 12:12-24

열왕기상 12:12-24

사흘후 세겜에서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온 백성 앞에 섰다. 그는 원로들의 충고를 끝내 외면하고 가혹한 말로 백성들에게 대답했다. 르호보암이 끝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사관은 주님께서 여로보암에게 하신 신탁을 이루시기 위해 이렇게 일을 꾸미셨다고 적는다.
백성들은 왕이 자신들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다윗 왕조를 인정하지 않고 열두 지파 연합 왕국을 해체했다. (이렇게 르호보암은 유다 지방의 성읍들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만 다스리게 되었다.) 르호보암은 부역감독 아도람을 내보냈지만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돌로 쳐죽이자, 마차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급히 도망쳤다.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돌아 온 여러보암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다. 오직 유다 지파만 다윗 왕조를 따랐다. 르호보암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총 동원하여 정병 십팔 만명을 뽑아 이스라엘을 무찌르고 열두지파 연합 왕국을 되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야훼께서 하느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백성들에게 분열 왕국은 주님의 뜻이니 동족인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가지 말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야훼의 말씀을 따라 모두들 순종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열왕기상 12:12-24
//’모사재인’이나 ‘성사재천’이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뜻대로 연합왕국을 이끌려고 했지만 하늘의 뜻은 분열왕국이었다. (르호보암은 정말로 여로보암에 대한 신탁을 몰랐을까?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음~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리라.) 르호보암은 친구들의 조언대로 부역감독 아도람에게 쇠채찍을 들려 내보냈지만, 백성들은 아도람을 돌로 쳐죽였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목이 곧았다.) 예루살렘으로 피신한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에게 총 동원령을 내려 무력으로라도 통일 왕국을 이루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분열 왕국이라는 하늘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셨다. 그나마 유다와 베냐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들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랐다. 총동원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순종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충동적이고 선동적이어서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르호보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