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7:13-26

열왕기상 7:13-26

솔로몬은 띠로(두로)에서 히람(후람)을 초대했다. 그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한 과부의 아들로 아버지는 띠로 사람으로서 청동기술공이었다. 그는 청동기술공 명장으로 솔로몬 왕의 청탁을 받아 일을 했다.
청동으로 기둥 두개를 만들어 성전 본전 현관에 세웠다. 오른쪽에 세운 것은 야긴, 왼쪽에 세운 것은 보아스라고 명명했다. (야긴과 보아스의 뜻을 풀이하면 ‘그가 능력 가운데 세우신다’ 이다.)
그는 구리로 큰 바다도 만들었다. 오늘날의 용량으로 따진다면 4만에서 7만 리터 정도 된다고 한다.

//공동번역은 두로에서 데려온 청동기술공 명장 후람을 히람으로 번역한다. 두로 왕의 이름과 같다. 사관은 굳이 후람에게 납달리 지파의 피가 흐른다고 적시한다. //두 기둥은 성전이 어떤 곳인지 잘 드러낸다. ‘야긴/보아스’는 의역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권능이 머무는 곳’ 이 된다. //후람이 만든 놋바다에 대해 왕하 25장 13절에 ‘바빌론 군대들은 야훼의 전 안에 있는 놋기둥들, 놋받침대, 놋바다 등을 해체하여 그 놋쇠를 바빌론으로 가져가고’ 하고 기록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것도 영원하지 않다. 놋기둥에 새겨진 ‘야긴/보아스’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놋기둥과 놋바다는 그저 구리 덩어리에 불과하다. //성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조 때부터 수천 년의 역사 가운데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저 한 권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해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열왕기상 7:1-12

열왕기상 7:1-12

//솔로몬이 자기 궁을 짓는데 십삼 년이 걸렸다. 궁궐에는 수풀궁, 기둥홀, 재판홀, 그리고 자기가 살 궁, 솔로몬이 아내로 맞이한 파라오의 딸을 위한 궁이 포함 된다. 성전 건축은 칠년 걸렸으니 궁궐 공사에 십삼 년이 걸린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성전 건축에 칠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이상하다. 하여간 기간과 열심이 꼭 정비례 하지는 않다. //사관은 왜 성전마무리 기록에 앞서 궁궐 공사를 끼어 넣었을까? 아마도 성전 주변(뜰) 조경?공사 마무리가 궁궐공사와 함께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사관은 성전과 궁궐이 같은 자재(큰돌과 백향목)로 건축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건축재료가 같다고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건물은 그 안에 누가 임재(거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도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 가운데 삼위 하나님이 거하셔야 한다. 썩어질 몸둥이를 아무리 치장해도 성전이 되지는 않는다.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지어도 성전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옷입은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삼위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거하신다.

열왕기상 6:14-38

https://quietwaters.blog/2023/09/15/

열왕기상 6:14-38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14] 성전 내부장식에 들어갔다. 내부장식은 성전 내부의 파티션, 즉 지성소와 성소 (내소와 외소)를 구분하고 사람이 보는 모든 면에 금을 입히는 작업이 핵심이다. 마루와 벽면 뿐아니라 제단과 그룹들도 금으로 입혔다. 이렇게 솔로몬 즉위 넷째 해에 시작한 성전건축은 솔로몬 열한째 해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다.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
성전 내부를 금으로 입힌 것은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시용이었으면 차라리 성전 외벽을 금으로 입혔을 것이다. 오히려 정금이 상징하듯 성전의 순결성의 상징하기 위한 일종의 정결의식으로 금을 입혔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 티끌만한 흠도 없는 완벽한 곳을 상징한다. 성전 건축 7년 기간중 내부 장식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라고 선언한다. 성전을 정금으로 입히는데 몇년의 시간이 필요했듯이 우리 역시 그리스도로 옷 입는데 시간이 걸린다. 짠하고 옷을 갈아 입을 순 없다. 성경도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도 해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배워하고 훈련해야 한다. 경건의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정금으로 입히는 것이다. 외형이 (할례나 세례가) 다가 아니라 마음이다.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까지 단장해야 한다. 무너질 솔로몬 성전을 단장하기 위해서도 칠년이 걸렸는데,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생 단장을 해야 한다.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사 61:10] 구원을 이룰 때까지 단장해야 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 13:14 새번역]

열왕기상 6:1-13

열왕기상 6:1-13

//야훼께서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물리적 성전은 차치하고 솔로몬이 주님의 규범대로 살고 주님의 규정을 따르고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살아가면 주님은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 주님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 지내시겠다고 하신다. 임마누엘! //솔로몬이 지어야 할 진정한 성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지어가야 할 성전도 임마누엘임이 틀림없다. 임마누엘은 개인적으로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반드시 교회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가 아니라 ‘주 우리(교회) 신랑 우리(교회) 주의 신부’ 라고 노래해야 한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단장하는 교회의 지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성전을 짓겠다는 우리의 열심은 알겠지만 정말 건축해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말씀에대한 순종이라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때 성도는 임마누엘을 누린다. 

열왕기상 5

열왕기상 5

//사관은 두로 왕 히람이 이스라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했다고 기록한다. 그래도 그가 이스라엘의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셨을리 없다. 그렇다고 외교관례 상 입발린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다윗과의 관계에서 그는 하나님을 알아갔을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신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적어도 해상 무역과 나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두로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보다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신들의 신이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분이시다. 유대교가 창조주 (우주적)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묶어두려고 했다면, 예수께서는 이런 배타적 담을 허무시고자 했다. 예수를 따르는 (믿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기독교의 신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신들의 신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신으로만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