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7:1-15

여리고에 대한 승전도 잠시, 분위가가 바뀐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였다고 한다. 공동번역은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다를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라는 명을 어겨 죄를 지었다라고 번역한다. 온전히 바쳐야 하고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야 하는데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지 못했다는 뜻이다. 승리의 순간에 이스라엘이 온전하지 못했고 부정한 것을 없애지 못했다. // 예수님은 만일 네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하셨다. 지금 이스라엘은 범죄하게 하는 한눈을 빼어버리지 못한 상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전에 취해 모르고 있었지만) 주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함락한 후 아이성으로 정탐꾼을 보낸다. 왜 보냈을까? 정탐꾼이 돌아와 아이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다 올라갈 필요없이 이삼천명만 올라가도 아이를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 라합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여리고 성 정탐과 달리, 아이성에 대해서는 완벽한 정보를 얻은 듯 보인다. 그러나 ‘지피’라고 한들 ‘지기’가 아니면 소용없다.

백성 중 삼천명이 아이로 쳐 올라 갔다가 도망하는 처지가 되었다. 말그대로 줄행랑치다 36명이나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았다. // 여리고 성을 칠 때만해도 여리고 성 사람들과 온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녹았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고 한다.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얘기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언약궤 앞에 엎드렸다. 날이 저물때까지 언약궤 앞에 엎드렸다가 여호수아는 탄식하며 기도했다. 주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나 여호수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아닌가? (그러나 주하나님은 우리의 믿는 도끼가 아니라 나무꾼이시고 우리가 그분의 도끼가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주하나님께 억울하다고 하소연 한다. 왜 요단을 건너게 하셨는지 따진다. 원수들 앞에서 도망쳤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한다. 패전한 주제에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얘기인지, 주하나님께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아뢸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인지 어떤 의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낙담한 상황에서 가나안 족속들의 공격을 받으면  진멸 당할 것이요 주하나님의 위대한 이름도 잊혀질 것이라고 항변한다.

주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신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아이성 싸움에서 패전했다고. 이스라엘이 나의 언약을 어겼다.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 하며 속이고 하나님의 것을 훔쳐다가 이스라엘의 물건 들 가운데 두었다고. 부정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대적 앞에 능히 맞설 수 없다.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주하나님은 이스라엘도 주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것이 되었다고 하신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없애야 했다. 부정한 것을 진멸하지 않으면 주하나남께서 다시는 이스라엘과 함께 있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일어나서 백성을 다시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하신다. 거룩하게 하는 방법을 친히 알려주신다.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물건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할 (공동번역은 ‘온전히 바쳐야’를 ‘부정한’으로 번역한다.) 물건을 이스라엘 가운데서는 제거해야 대적과 능히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바쳐야 할 사람들에게서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지 않으면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내일 아침, 누가 거룩한지 누가 부정한지 지파대로 주하나님께 제비뽑아 나아오라고 하신다. 온전히 바친  (부정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고, 그의 모든 소유를 불사르실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주하나님의 언약, 곧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 온전히 바친 물건을 부정한 물건으로 번역하는 공동번역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온전히 바친 물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다. 만약 하나님의 것을 내것인양 취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결국은 부정하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율법의 ‘고르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불법적인 (부정한) 제물을 경고하셨다. 부정하게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것이라고 핑계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책망하셨다. 이처럼 주하나님은 부정한 것과 함께하시지 않는다. 임마누엘이 깨어지는 이유다. 임마누엘을 회복하지 못하면 영벌이다. 결국 거룩하라고 하신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라고 하신다.

여호수아 6:8-27

여호수아는 주하나님의 군대대장이 일러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무장한 군사가 앞장 섰고 양각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이 주하나님 앞에서 (주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아가면서 나팔을 불었고 그 뒤로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뒤따랐으며 후군이 언약궤를 뒤따랐다.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행진하는 동안 외치지 말며 말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다. 여호수아가 외치라고 명령하는 날에 외치라고 강조했다. 첫날 여리고 성을 한번 돌았다. 그리고 진영에 돌아와서 잤다. 사관은 언약궤가 여리고를 한번 돌았다고 적는다. 엿새동안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첫날과 같이 여리고 성을 한번씩 돌고 진영으로 돌아와 쉬었다.

일곱째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전과 같은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일곱번 돌았다. 일곱째 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외치라’라고 명령했다. 주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선언한다. 정탐꾼을 숨겨준 기생 라합과 그집에 모여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여리고 성과 여리고 성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주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고 명령한다. 여호수아는 온전히 바치라고,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이스라엘을 위해 바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주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주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은과 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주하나님께 구별되어 주하나님의 곳간에 보관하라고 명한다.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성들은 외쳤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나팔소리에 백성들은 더 크게 소리질렀다. 그러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들은 성으로 진격해 성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쳤다. 주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을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로 멸했다라고 표현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오직 정탐꾼을 숨겨준 기생 라합집에 들어가 라합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끌어내어 이스라엘 진영밖에 두어 진멸당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스라엘 무리 (군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모든 것을 불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주하나님의 곳간에 들였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이 약속한 대로 기생라합과 그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려주어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게 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함락시킨 후 누구든지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주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기초를 쌓을 때 맏이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막내를 잃을 것이라고 저주를 했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셔서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땅에 퍼지게 하셨다.

// 여리고를 돌았다. 그런데 사관은 11절에서 ‘언약궤가 여리고를 돌게하고’ 라고 기록한다. 여리고 성을 돈 주체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주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무장한 군사와 제사장들은 주하나님의 군대의 의의병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여리고는 이스라엘의 대적이 아니라 주하나님의 대적이다. 주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그래서 주하나님은 여리고를 온전히 주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심판적 의미가 강하다. 단순히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가나안  침략전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달 내내 에스겔을 통해서 범죄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과 열방을 심판하시는 주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왔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심판의 칼로 사용하셔서 범죄한 가나안을 진멸하시는 주하나님을 만난다. 이 심판에도 당연히 남은자가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들이다. 주하나님의 심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원칙이 드러난다. 주하나님 편에 서야 영생이다.

여호수아 5:13-6:7

요단 서쪽에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우선 마른땅으로 요단을 도하한 기념석을 길갈에 세우고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켰다.

드디어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향해 진군했다. 이때 여호수아의 눈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을 들고 여호수아를 가로막고 서있는 것을 보았다. 여호수아는 그 사람에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물었다.

그 사람은 아군도 적군도 아닌 주하나님의 군대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면서 자신은 주하나님의 군대의 종이니 명령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주하나님의 군대대장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선곳은 거룩하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는 그대로 순종했다. (여호수아는 주하나님의 군대에 속하기로 한 것이다. )

여리고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해 성문을 굳게 닫고 출입하는 자를 통제했다. 주하나님의 군대대장은 주하나님의 현현이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와 여리고 왕과 여리고 군사들을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에게 넘겨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공격? 전략전술을 말씀해 주신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바퀴씩 엿새동안 돌아라. 제사장 일곱명이 일곱 약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가고 군사들을 따라 돌라고 하신다. 일곱째 날에서 그 성을 일곱 번 돈 후에 제사장들에게 나팔을 불라고 하신다.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가 들릴 때 백성들은 다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신다. 그러면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하신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면 여리고로 진군하라고 하신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을 불러 주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하달하고 백성들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무장한 군사들이 먼저 나아가고 나팔수 제사장들이 따라가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 뒤를 따르라고 명령했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순종하는 자가 밟는 땅이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나라다. 주하나님의 군대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하나님의 군대에 속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주하나님의 군대가 우리 편이 되어 우리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하나님의 군대에 속해 주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군대는 이스라엘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하나님의 싸움에 참여한다. 주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어 철저하게 주하나님의 전략과 전술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따라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을 내편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 들어가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 5:1-12

요단 서쪽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서쪽 해변까지 모든 족속들이 주하나님께서 요단 물을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것은 당연했으리라. (이들은 요단 동쪽 아모리 족속의 두왕 시혼과 옥의 패망에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었다.)

(기선제압에 성공했는데 돌연) 주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다시’라는 표현은 한동안 할례의식을 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그래서 그곳을 할례 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한 이유는 광야에서 죽은 출애굽 1세대는 할례를 받았으나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례받은 1세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주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다 죽어야 했다. 이제 할례받지 못한 2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멍거지, 곧 할례없는 자의 신분을 벗어나야 했다. (할례 받은 자라도 불순종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 무할례자라도 순종하고 할례를 받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

모든 백성이 할례를 받고 진중에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모든 백성들이 할례를 받자,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길갈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애굽의 수치란 무엇일까? 주하나님과 관계없이, 즉  주하나님을 모르고 산 삶이다. 불순종으로 주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없는 더러운 그릇이었음을 뜻할 것이다. 성도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수치는 없을 것이다. )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할례의 상처가 낫기를 기다렸다. (대적들에게는 기습하여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저들은 이미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으니 무방비의 이스라엘은 안전했다.) 그리고 십사일 저녁에 여리고 평지(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 이틀째에 요단  서쪽 땅의 소산물을 먹었다.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부터 만나가 그쳤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다.

// 만나가 그친 것은 축복일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주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처음으로 그땅의 소산물을 먹었을 때, 그 소산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다. 주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만나는 ‘잉여’가 없는 양식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일용할 양식이었다. 탐심이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주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소산물도 탐심없이 만나처럼 분배되길 원하셨을 것이다. 나의 수고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기를 다짐하게 된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시작일지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잉여의 양식으로 공동체 누군가가 굶주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나가 그쳤다는 문구가 가슴을 친다.

여호수아 4:15-24

하나님나라는 주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증거(언약)궤를 메고 요단 가운데 서있는 제사장들에게 요단에서 올라오도록 명령하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는 순종하며 명령했고 제사장들도 순종하여 요단에서 올라왔다. 제사장들이 요단에서 나오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곳으로 도로 흘러 범람했다고 한다. 요단 물벽이 생긴곳은 아담성읍 변두리 지역이라고 했다. (30킬로미터는 되는 거리라고 한다.) 당연히 물벽이 무너지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후 요단 강이 다시 범람하면서 도도히 흐르는 소리는 생생하게 들렸을 것이다.

첫째달 십일. 여호수아에 처음나오는 달력이라 요단도하를 준비한지 얼마만에 요단을 건넜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요단을 건넌 날이다. 여호수아는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다. (지파별이 확실히 아니구나. 쩝.) 요단과 여리고 동쪽 경계에 세웠다. 사관은 다시한번 열두돌의 의미를 설명한다. 후손들에게 주하나님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조상 앞에서 마르게 하사 그들을 건너게 하신 것이 주하나님께서 홍해를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심과 같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하신다.

열두 돌은 이스라엘 백성과 후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백성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하나님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주하나님을 알고 주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도록 열두 돌을 세운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하신다.)

// 시온의 대로는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다. 요단도하 때 언약궤을 중심으로 넓고 넓은 마른 땅이 대로로 드러났었다. 그러나  칼로 물베기처럼  흔적조차 없어졌다. 인생의 시온의 대로도 마찬가지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시온의 대로를 걷는 것이지만, 우리들 눈에 대로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좁고 협착한 길이다. 어제 마른 땅을 건넜다고 오늘도 마른 땅을 건너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만 가능하다. 마른 땅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요단은 다시 범람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범람하는 요단에 발을 딛어야 했고, 언제 다시 범람할 지 모르는 요단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시온의 대로를 평탄케 하는 역할을 다하기까지 순종했고 마지막까지 마른 땅을 경험했다. 나에게도 지속적으로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라고 하신다. 시온의 대로는 주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는 자의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