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9 (1-21)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 아직 예루살렘은 함락되기 전이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반기를 들고 대신 애굽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던 시기다. 이때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애굽을 향해서도 예언하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을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바로 왕은 애굽을 가로지르는 나일강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큰 악어라고 (나일 강을 지배하는 큰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나일 강에서 큰 악어와 물고기들을 낚시하시겠다고 하신다. 나일 강의 모든 물고기를 들짐승과 공주의 새의 먹이로 주신다고 하신다. 나일 강과 그 속에 모든 물고기를 다스리시는 분도 주하나님이시다.  그제사 애굽의 모든 주민이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이 의지하던 지팡이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지팡이가 아니라 몸을 맡길 수 없는 갈대로 만든 지팡이라고 하신다. 갈대로 만든 지팡이를 의지한들 지팡이가 부러져 어깨를 다치고 허리를 삘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애굽은 의지할 바가 못된다고 알려주시고 애굽에 대해서는 교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애굽은 주하나님의 말씀대로 칼로 망할 것이다. 애굽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될 것이다. 나일 강과 나일 삼각주의 풍성함으로 자랑하던 애굽을 주하나님께서 쳐서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애굽 땅은 40년동안 황폐해지고 애굽 백성은 열방가운데 흩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40년 후에 주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을 열국으로부터 다시 모아 내시겠지만 애굽은 더이상 강국이 아니라 약국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변 국가를 다스리는 강국의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의지하지 못할 약소국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더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의지할 참 하나님 (신)이심을 알것이라고 하신다.

스물입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 언제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로를 칠 때라고 한다. 그런데 바벨론 왕은 두로 침공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두로까지 간 김에 두로 대신 애굽을 공격해서 승전했다. 주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애굽을 심판하시는 주하나님의 뜻이라고 밝히신다. 그들의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깐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는 애굽이 바벨론에게 지는 날이 임박해서 주어진 예언일 것이다.

그 날에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뿔이 돋아나게 하시고 에스겔을 세워 주하나님 말씀을 입을 열어 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강대국 애굽은 패망하는 때가 곧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더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않는 때가 주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보지 않고 다른 것들을 본다면, 그 다른 것들은 나와 함께 줄줄이 패망당할 것이다. 주님의 자리에 앉은 모든 것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망한다. 그 다른 것들이 다 패망해서 내가 주님 외에 도움을 바라볼 곳이 없을 때에 주님은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결국은 주님 한 분 외에 한눈팔지 말라고 하신다.

에스겔 28 (1-26)

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기 때문인지 여러장에 걸쳐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 왕에게 전할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두로 왕의 잘못은 교만이라고 하신다. 두로 왕은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고 화려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신격화 했다. 해상무역을 주름잡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주하나님은 명확하게 지적하신다. 두로 왕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하나님처럼 지혜롭다고 생각해도) 사람에 불과하다.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다.

두로 왕은 자신이 지혜롭고 총명해서 두로가 재물을 얻었고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만했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와 같다는 두로 왕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주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두로를 이방 여러나라를 사용하여 치신다. 두로의 아름다움과 영화를 패망시키실 것이다. 해상무역으로 흥한 두로를 배가 깊은 바다에서 침몰함 같이 멸망시키실 것이다. 죽음의 심판을 당하여서야 두로 왕은 자신은 사람이요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음. 주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라 하신다. 두로가 이스라엘의 이웃사촌이었다 해도 여느 이방과 다를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방에게는 회복의 약속이 없다.) 주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두로뿐만 아니라 두로 왕을 위해서도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두로 왕에 대한 애가도 두로에 대한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한다. 두로 왕의 옥새는 해상무역에서 신뢰를 받았다. 한마디로 보증수표였다. 두로왕은 지혜로왔다. 하나님께서 두로를  에덴동산 같이 지켜주시자 두로를 온갖 보석으로 단장하고 (애가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노랫소리가 흘러넘치는 나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는 표현에서 주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두로 왕을세워주시고 지켜주셨다.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온전히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국은 두로 왕의 불의로 끝난다. 해상무역으로 부요하게 되자 범죄 (아마도 불공정 거래) 하였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두로를 더이상 지켜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다. 그리고 심판의 불로 멸하신다. 아름다움이 두로 왕을 교만하게 했고 영화로움이 두로 왕의 지혜를 더렵혔다. 결국 두로 왕은 열방의 왕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두로는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 하다고 하신다. 네 모든 성소를 더렵혔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두로 왕은 더이상 자신의 양심을따라 무역을 하지 않고 탐욕을 따라 무역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 결국은 심판의 불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할 것이다. 영벌이다.

주하나님의 심판은 두로의 이웃 시돈으로 향한다. 시돈을 심판하심으로 주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심판의 목적이 바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시돈이 전염병과 전쟁의 칼로 패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시돈으로 하여금 더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로써 주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가 삼세번 반복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한고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았던 시돈도 다시는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은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온 이스라엘과 열방의 심판을 통해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듯이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모아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하심으로 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평안이요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멸시하던 모든 자들에게는 심판이라고 말씀하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주하나님을 알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하나님과 함께 함이 (임마누엘) 평안이요, 임마누엘을 멸시하는 것은 심판(멸망)이다. // 오늘도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할 이유다. 내가 정결해야 할 이유다. 주님은 불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

에스겔 27:26-36

두로에 대한 애가 1절은 두로의 온전한 아름다움과 영화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두로를 아름다운 무역선으로 지어졌음을 노래한다.

2절은 두로라는 아름다운 무역선이 바다 한가운데서 파선당함을 노래한다. 깊은 바다를 누비며 당당히 무역을 해왔는데 동풍에 침몰 당한 것이다. 무역하던 자들, 사공과 선장, 배의 틈을 막는 자, 상인들, 안전요원들 등등 두로라는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모든 무리는 배와 함께 침몰할 것이라고 하신다.

선장이 침몰을 막으려고 소리질러 봤자 파도소리에 묻힐 것이다. (이곳 저곳에게 도움을 구해봤자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이다. 도움은 주하나님에게서만 온다.) 파선한 배에서 탈출한 사공과 선장은 침몰한 배, 곧 두로를 보면서 통곡할 것이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침몰한 후에 마음아프게 슬피 통곡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두로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당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라고 애가를 부를 것이다.

두로는 그자체가 재물하나님(신)이었다. 여러나라 여러민족이 두로를 중심으로 무역을 통해 풍족했었다. 그러나 파선해서 깊은 바다속으로 침몰했다. 주하나님 대신 재물을 섬긴 결과다. 무역선의 침몰소식에 백성들도 왕도 놀라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게 될 것이다. 열방은 두로를 비웃을 것이다. 이웃들이 두로의 침몰을 ‘아하 좋다’할 것이다. 주하나님은 두로는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애가를 마무리 하신다.

// 파선과 침몰은 끝이 아니다. 세상 근심에 시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후7:10 새번역) 두로에 대한 애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진 노래다. 주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로의 패망을 노래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에스겔 27:1-25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위하여 슬픈노래를 지으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두로를 위한 애가를 친히 지어주신다.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라고 자화자찬하는 두로. 그러나 바다 어귀에 있는 나라요 바닷길 가운데 있으면서 무역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두로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신분도 두로를 지은 자 (주하나님)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두로를 배에 비유하며 배가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졌는지 노래하신다. 스닐의 잣나무로 배의 몸통을,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돛대를,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배젓는 노를, 깃딤 섬 황양목과 상아로 갑판을. 애굽의 베로 돛과 깃발을, 엘리사 섬의 청색과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다. 멋진 범선이 상상된다.

그리고 (인접한) 시돈과 아르왓 주민들을 사공으로 부렸으며 두로의 지혜자들이 선장이되었다. 9절에 그발의 노인들과 지혜자들이 네 가운데에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발의 노인들이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인지, 아니면 두로가 그발의 (바벨론의) 기술도 이미 받아들였다는 것인지 확실지 않다. 바사의 룻과 붓이 두로의 용병이 되었다. 아르왓 사람을 두로를 지키는 병사로 삼았다.

두로는 하드웨어적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온전했다. 두로가 스스로 여러나라와 무역을 하고 사람들의 왕래를 통하여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이 천지를 지으신, 열방을 만드신 주하나님의 역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두로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시스의 은과 철과 주석과 납,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노예와 놋그릇을, 도갈마 족속은 말과 군마와 노새를, 드단 사람은 상아와 박달나무를, 아람은 남보석과 자색 베와 수놓은 것과 가는 베와 산호와 홍보석을, 유다와 이스라엘은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다메섹은 헬본 포도주와 흰 양털을,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과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을, 드단은 말을 탈 때 까는 천을, 아라비아와 게달은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를, 스바와 라아마 상인들은 향재료와 보석과 황금을,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꾼들은 청색 옷과 수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두로에와 가지고 와서 거래를 했다. 두로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다시스의 배들은 두로에 드나들며 두로를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두로는 해양무역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 애가 1절은 두로의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해서 두로의 영화가 매우 크다고 맺는다. 주하나님은 아름답고 영화로운 두로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어제부터 길게 말씀하신다. 두로의 영화는 두로 스스로가 아니라 열방을 통하여 주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잊으면 영화는 애가가 될 것이다. 부귀영화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과 같다. 영원한 것은 주하나님이시다. #임마누엘이 영생이다. 주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애가다.

에스겔 26 (1-21)

열한째 해 어느달 초하루. 열한번째 해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해다.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주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주하나님의 말씀은 계속된다.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이어 두로에 대한 예언이 이어진다.

두로는 예루살렘 패망 소식에 가나안 지역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반겼다. 예루살렘이 황폐하였으니 예루살렘이 누리던 영광을 두로가 충만히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하나님의 말씀은 다르다. 주하나님께서는 두로를 대적하실 것이다. 두로에 여러민족들이 침략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이방의 노략물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읍에 있든 들에 있든 두로 사람들도 이방나라의 침략에 노략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제서야 그들이 주하나님을 참 하나님(신)이신 줄 알게 될 것이다.

주하나님은 두로를 칠 이방을 구체적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하신다. 두로 성은 함락되고 두로의 재물들을 탈취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태평성대 두로에서 들리던 노래소리 수금 소리가 그칠 것이라고 하신다. 칼에 죽임을 당하고 상한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노래소리 대신 가득할 것이라 하신다. 두로와 바닷길로 무역하던 나라들도 두로의 패망에 놀랄 것이라고 하신다. 두로가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 열방은 (바다 가운데의 섬들이) 두로의 결국을 보고 놀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쓰나미로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두로를 킬링필드로 만들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땅, 다시는 있지 못할 땅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두로의 부귀영화의 흔적을 찾고자 해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이다.

// 주하나님은 두로를 심판하시는 이유를 예루살렘의 패망을 암몬족속처럼 ‘아하 좋다’라고 반겼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두로는 다윗왕 때는 좋은 이웃이었다. 심지어 성전을 지을 건축자재와 일꾼의 공급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이스라엘은 주하나님을 두로는 이방신을 따랐다. 두로는 먼저 북이스라엘이 이방신을 따르도록 영향력을 미쳤다. 그결과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지 않았던가. 이제 두로는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힘으로 예루살렘이 (남유다가) 패망되는 것을 보았으니, 두로는 큰 힘들이지 않고도 자신들이 가나안지역에서 무역 패권을 차지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이웃의 몰락을 기뻐하고 기회로 삼는 두로를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공의로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시듯 세상도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신다.

// 두로의 탐욕을 끝이 없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땅이 되었고 잊혀진 땅이 되었다. 두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지만 포로지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진 말씀이다. 두로의 길로 가지 말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웃사촌 두로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북이스라엘은 두로를 따라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교회도 이웃사촌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따르고 있다. 어찌할꼬.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고 있다. 당연히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수 없다.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통해 소망을 이루려는 성도가 적다. 환난 인내 연단을 건너 뛰려고 세상의 길을 따른다. 그러나 그 끝은 소망이 아니라 멸망이다. ㅠㅠ

// 답답함으로 하루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