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0

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하신다. 두 돌판에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다. 이번에는 계약서를 보관할 나무궤도 하나 만들라고 하신다. 언약궤다. 계약서의 내용은 처음과 동일하다. 주 하나님께서 직접 작성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다. 물론 계약서의 내용은 우리가 아는 십계명이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상 아론이 죽었어도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음을 이어받았으니 계약은 자동 갱신된다.  계약서가 든 언약궤는 레위 사람들을 구별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레위 사람들에게는 따로 분할상속을 하시지 않고 주 하나님의 소유를 사용하게 해 주셨다. (그러니 상속을 받은 지파나 상속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를 누리는 레위나 모두 다 주 하나님의 소유다.) 계약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사는데 관한 특약조건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사는데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계약서 (십계명)에  적혀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줄줄이 외우고 있을 내용이다. 그것을 한줄로 요약하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새번역)” 것이다.

창조주 주 하나님께서 너희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는 계약을 맺으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맺은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너희들도 목을 곧게 하지 말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한다. (목을 곧게 하는 것이 교만이면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겸손이다.)

주 하나님은 하나님들(신들) 중 하나님이시며, 주인들 중의 주인이시다. 한마디로 전지전능 하시며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신다. 나그네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그게 되었음을,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로 먹이시고 옷도 신발도 헤지 않게 하셨다.) 그러니 너희도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었다고 하신다. 그러니 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고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계약을 지켜라. 주 하나님이 너의 찬송이시다.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행사셨던 모든 기적과 권능을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칠십인을 셀수 없는 별같이 많아지게 하셨다.

//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십계명을 암송하고 제사하고 찬송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뇌물을 받지 않는 것,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는 것, 나그네(노숙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다. 마음에 하는 할례는 묵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찬양과 예배만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사랑)을 우리도 나그네 같은 사람들에게 (교회 밖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신명기 9:13-29

‘목이 곧다’는 무슨 뜻일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니 겸손하지 않다는 의미고, 따라서 교만하다는 뜻이다. 주 하나님 앞에서도 머리 숙일줄 모른다. 이런 이스라엘을 주 하나님은 진멸하시고 모세로부터 새로운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급히 백성들에게로 내려왔다.

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급히 두 돌판을 깨뜨렸다. (쉽게 말하면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 전에 계약서를 찢어버린 행동이다.) 그리고 모세는 위약금을 물지 않게 해달라고 주 하나님께 계약 무효를 간청했다. 사십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계약을 철회해 달라고 졸랐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언약을) 어겼으니 죄값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죄값은, 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들어주셨다. 주 하나님은 적어도 아론 한 명에게는 책임을 물으려고 하셨지만 이마저도 모세의 중보로 철회하셨다. (백성들이 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모세를 대리자로 세웠기에 봐주셨나) 모세는 불순종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워버렸다. 티끌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도) 불순종은 이어졌다. 이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항상 주 하나님을 거역해 왔다’고 지적한다. 모세는 가네스 바네아에서의 거역도 거론한다. 물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판결)도 죽음(진멸) 이었으나 모세의 사십주야 식음전폐의 중보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에 신실하신 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상속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 의인 한명이라도 있으면 용서하신다.

신명기 9:1-12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강대한 나라, 즉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높고, 백성 수는 많고, 백성들은 아낙자손처럼 거인인 나라를 쫓아내고 진멸하는 것이다. 이런 강대한 나라들을 주 하나님께서 엎장서서 쓰러뜨리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 하나님을 뒤따라 저들을 쫓아내고 멸하라고 모세는 말한다. (청소는 주 하나님이 하시고 쓰레기 통은 백성들이 비운다)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들을 이렇게 쫓아내고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고 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가 가나안 일곱 족속보다 공의롭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일곱 족속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밝히 말한다. 주 하나님은 일곱 족속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을 이루신다고 모세가 말한다. 이스라엘의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세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기시킨다. 목이 곧은, 고집불통의 역사를 끄집어 낸다. 주 하나님께 거역하고 주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여 진멸당할 뻔 했던 백성임을 기억시킨다. 심지어 주 하나님의 법을 기다리는 동안 주 하나님의 명령을 속히 떠나 우상을 만들었던 백성이었다.

선민. 구별된 백성. 그러나 역사는 선민들의 불순종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이스라엘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버려져도 마땅할 만큼 스스로 부패한 백성이었다.

의인은 없다. 나의 의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은혜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내가 공의로운게 아니고 내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예수 안에 사는 내가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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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뭐 눈에는 뭐가 보인다니 나를 삼가야 한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너희들도 거역과 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백성이라고. 스스로는 부패한 백성이라고.

신명기 8:11-20

명령과 규례와법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주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역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주 하나님을 잊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부자가 되면 마음이 교만하여 주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모세는 염려한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낮추신 이유를 복 주려 하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내 능력과 내 손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니

모세는 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분도 주 하나님이심을 잊지말라고 한다. 언약의 주 하나님을 삼가 잊지 말아야 한다.

주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신(하나님)을 따라 섬긴다는 것이고,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주 하나님의 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복은 먹고 마시는데만 있지 않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건강하고 큰 집 사고 재물이 풍부해 지는 것은 세상이 구하는 복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은 의와 희락과 화평이 풍부해지는 복을 구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신명기 8:1-10

모세의 강설은 분명하다. 명령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사는 방법 (생명) 이다. 이것이 번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열쇠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사십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생 (낮추시며) 연단 (시험하시며) 자체가 아니라 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절을 인도하신 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명령을 지키면 순행하고 불순종하면  역행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기억해야 한다.

주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고생하게 하시고) 주리게 하신 (만나를 먹이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신) 이유는 삶이 주 하나님의 명령 (말씀)에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서 알도록 하신 것이다. 고생길이었다 하여도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개고생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자식을 유격훈련에 보낸 아비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모세는 반복에 반복을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여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나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나 모두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동일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한다.

약속의 땅은 골짜기든 산지든 물이 풍성하고, 소산이 풍성해서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뿐만아니라 철광산과 구리광산도 있다. 배부름으로 광야의 불평과 원망은 사라진다. 약속의 땅은 옥토를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땅이다. 그러나

모세의 반복을 기억해야 한다. 네 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우리는 본성상 약속의 땅의 주인이신 찬송받아야 마땅하신 주 하나님 대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 꿀에 관심이 많다. 더군다나 철과 구리도 풍성하다. 그러나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우리는 관심을 주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주님이 선한 목자이시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요 10:4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