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8:1-20

나,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집안별로 계수 했다.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의 수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았다. 이 조사는 아하와로 강에서 삼일동안 진행된 듯하다. 문제는 레위 자손이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적용하는 민족공동체를 꿈꿨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을 도울 레위자손이 에스라의 귀환팀에 전무했다. 에스라는 족장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한후 가시뱌 지방에 족장들을 파견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레위자손 40 여명 (18+20+?)과 느디님 사람을 220명을 지명받아 합류시켰다.

느디님 사람. 새번역은 성전막일꾼이라고 번역한다. 아마도 기브온 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어 제단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허드렛 일을 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듯. 이들은 평생 성전 일을 돕는 노예신분이었지만 예수님 앞에 나가 딸의 치유를 구한 가나안 여인이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큰 믿음을 보였던 것처럼 이스라엘에 속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만 만족하는 사람들이었다. 성전이 무너지고 유다가 망했으면 자유로이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오늘 지명받아 합류한 220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의를 지킨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대상에 1번, 에스라에 6번, 느헤미야에 8번 도합 열다섯번 언급된 느디님 사람들.

제국에 뿌리박기보다 하나님나라에 종의 신분으로라도 참여했던 사람. 전문인이 아닌 막일꾼. 큰 믿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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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디님 사람. 새번역은 성전 막일꾼으로 번역한다. 역대상에 한번, 에스라서에 6번, 느혜미야서에 8번, (내가 가진 성경앱으론) 모두 15번 나온다.

집안이름도 아니고 지역이름도 아닌 느디님 사람. ‘성전 막일꾼’ 에서 힌트를 얻는다. 여호수아 때 기브온 족속이 멸절당하지 않기위해 이스라엘을 속이고 노예가되었다. 그들은 제단에서 장작을 패고 물을 긷던 막일꾼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졌으니 제국의 어느구석에서 자유의 몸으로 살어갈 수 있었을 것인데 귀환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왜?

예수님 앞에 나가 귀신들린 딸의 치유를 구한 가나안 여인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하시자, 가나안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큰 믿음을 보였다. 느디님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큰 믿음을 본다. 이스라엘에 속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만 만족한 사람들. 막일꾼이라는 신분의 부끄러움보다 성전일의 기쁨을 누렸던 (저들에게는 죽음대신 생명을 누리는) 삶을 기억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일반 자손보다 70년후 귀환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잘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 유대인들에게는 장편소설 소재가 될 수 있겠다. 느디님 사람.

성전의 지체로 나에게 주어진 일이 전문인이 아닌 막일꾼 역할이어도 충성하게 하소서.

(스 8:1-20)

에스라 7:11-28

에스라.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를 배운사람.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자 제사장.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사람.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하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 하나님과 세상의 칭송을 모두 받는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왕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제국의 고민을, 왕의 문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그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왕의 마음을 사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는 (조서내용 생략) 왕의 자발적 명령이라기보다 에스라가 받아낸 약속일 것이다. 에스라는 이일로 하나님을 송축했다.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모든 고관들로부터 은혜를 받게하셨다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안수하심을 알았다. 에스라가 인솔한 포로귀환은 이렇게 시작되었었다.

사관은 자신이 에스라 인양, ‘나’ 라는 주어를 사용해 기록을 마무리 한다. 나도 요셉, 다니엘을 꿈꾸곤 했으니.

에스라 7:1-10

드디어 ‘에스라’ 이름이 등장한다. 거의 예수님 수준의 에스라 족보가 나온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 활동한 학자다. (그래서 에스라서를 쓴 사관은 성전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아닥사스다 왕을 자주 언급 했었나보다.) 사관은 에스라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자, 모세 율법에 익숙한 학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는 자라고 소개한다. 아닥사스다 왕 때에도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돌아 온 무리들이 있었는데 에스라는 이때 돌아왔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여 스스로 율법을 따라 살고, 율례와 규례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 에스라는 집안도 좋고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의 총애도 받는 남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사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결과라고 분명히 밝힌다. 몇대째 예수믿는 집안에서 자랐고, 또 고위급 공무원의 지위에 올랐다고 크게 자랑할 바가 아니다. 예수님 수준의 족보를 가졌고 제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사관은 강조한다.

// 하나님의 도우심은 에스라의 경우 율법에 익숙했기 때문에 따라왔다. 사관은 율법에 익숙함을 에스라가 율법을 ‘연구하고 (말씀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 것) 준행했다 (말씀을 듣고 행함)’ 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요 듣고 행하는 자니 지혜로울 수 밖에 없었다. 에스라에게는 이것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고 싶은 복음이었다.

오늘도 말씀과 보혜사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에스라 6:13-22

다리오 왕의 조서를 받은 닷드네, 스달보스내 총독과 동료들은 신속히 조서를 집행했다. (그러나 성전재건은 다리오 왕의 조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것임을 에스라서를 기록한 사관은 분명히 했다.) 유다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 (하나님 말씀) 을 따랐기 때문에 성전재건은 형통했다. 하나님 말씀(명령)과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인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의 조서에 따라 다리오 왕 제 육년에 성전이 재건되었다.

드디어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을 봉헌하고, 속죄제를 드리고, 모세의 책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성전봉헌 후 첫 유월절과 무교절을 제사장들, 포로지에서 돌아온 자들, 그리고 그 땅에 남았지만 이방 우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했던 백성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모두 함께 참여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화합과 기쁨의 축제가 되었다. (심지어 세상 임금도 돕는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전재건이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결국은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것이다.

에스라 6:1-12

유브라데강 서쪽 총독의 상소로 시작된 성전재건에 대한 다리오 왕의 진상규명은 철저했다. 그냥 주변 사람 몇몇에게 묻고 답하지 않았다. 기록실을 샅샅이 뒤져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내었다. 놀랍게도 조서에는 1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성전의 규모며, 비용조달 방법까지 자세히 명시되어 있다.

다리오 왕은 진상조사를 마치고, 닷드내,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 그리고 아바삭 사람들에게 성전재건 현장에 접근하지 말고 공사를 막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대신 유다 총독과 장로들에게는 원위치에 성전재건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성전 재건에 필요한 비용을 왕실에서 내기로 한 고레스의 조서 내용을 구체화한 조서도 내렸다. 신속히 행할지니라.

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것도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결과요, 다리오 왕의 조서도 마찬가지다. 다리오 왕은 새로 내린 조서에서 ‘하나님(신)’ 이라는 단어를 다섯번 사용한다.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을 믿었을리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참 하나님(신)을 믿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께 쉬 감동되는 겸손함을 갖게해달라고. (하나님을 안다하나 원망과 불평의 목이 곧은 사람이 위정자가 되는 것도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