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1

삯군 목자

(1)    (아궁이 문을 활짝 열어 장작들이 잘 타게 하듯이)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사르게 하라고 하신다. (귀환한 백성들이 머물곳이 부족할 정도로 번성한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터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    백향목이 불살라질뿐 아니라 잣나무 큰나무 상수리나무 등등 무성한 산림이 넘어지고 찍혀버린다.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터전이 무너진다.)

(3)    목자들은 (하나님나라 백성들, 양 떼를 먹이는 지도자들일 것이다) 목장이 황폐해지자 통곡한다. 어린 사자 (목자들과 대칭되기 때문에 젊은 차세대 지도자라고 이해)들도 자신들의 목장이 황폐해지자 통곡한다.

(4)    주님은 스가랴에게 목장의 (황폐해진 목장에서 잡혀 죽게 될) 양을 먹이라고 명하신다. (왜? 잡혀 죽을 양을 먹이라고 하실까?)

(5)   당시 목자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사고 팔고’ (매매,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매매에 관심이 없는 목자라고 하여도 양 떼들을 제대로 돌보지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6)   주님은 (목자들의 직무태만에) 양 떼들을 마져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목자들이 양들을 매매하듯이 백성들을 이웃나라 이웃왕에게 넘겨주신다고 하셨다. 이웃나라 이웃왕이 백성들을 학대해도 구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목자들의 잘못에 양 떼에게 그 피해가 그대로… ㅠㅠ)

(7)   (이런 상황에 처한 양 떼를 스가랴에게 먹이라고 하셨으니, 4절) 스가랴는 순종해서 양 떼를 돌보았다. 스가랴는 양 떼 중 억압 당하는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 양을 집중적으로 돌보았다. 은총과 연합 (은혜와 평강)으로 돌보았다.

(8)   (스가랴는 양을 잘 돌보기 위해 세명의 목자를 세웠다.) 그러나 세 목자는 불순종했다. 그들은 삯군에 불과 했다. 삯군 목자들은 오히려 스가랴마져도 싫어했다. 스가랴는 세 목자를 한달만에 다 해고해 버렸다.

(9)   스가랴도 목양에 지쳤을까? 그마져도 “될대로 되라” (케세라 세라?) 라는 마음을 품었을까? 양 떼에게 ‘될대로 되라’고 말하였다. (양 떼들마져도 목자의 음성을 안들은 듯하다.) 삯군 목자들에게 잘못 길들여진 결과다.

(10)   스가랴는 은총이라는 목양의 원칙 중 하나를 꺾어 버렸다. 예언자 스가랴라도 주님께서 ‘양 떼를 먹이라’라고 하신 언약을 지킬 수 없었다.

(11)   (더 이상 ‘양 떼를 먹이라’는 언약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일까?) 은총의 언약은 취소되었고 양 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주님의 말씀의 의한 것임을 깨닫는다.

(12)   스가랴는 양 떼들에게 목자로서의 품삯을 쳐달라고 하였고 그들은 품삯으로 은 삼십개를 주었다. (은 삼십은 ‘종’ 한명의 생명값에 불과했다. 출21:32) 목자를 종으로 취급한 것이다.

(13)   주님은 스가랴에게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주라고 하셨고 스가랴는 순종했다.

(14) 스가랴는 ‘연합’이라는 목양의 원칙마저 꺾어버렸다. 더 이상 형제가 동거하는 아름다움도 없어진 것이다. (사랑이 식은 교회라고 해야 하나)

(15) 주님은 삯군 목자들이 양을 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뺏으라 하셨다.

(16) (왜냐하면) 삯군 목자는 잃어버린 양에 관심도 없고, 흩어진 양들을 찾지도 않고, 다친 양을 치료할 생각도 않고, 양 떼를 먹이지도 않고, 오히려 살찐 양을 잡아 먹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17) 주님은 이런 삯군 목자의 능력 (오른팔)과 욕심 (오른쪽 눈, 안목의 정욕)을 도려내실 것이다.

솔로몬 성전만 믿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만 가르친 지도자들, 그 결말은 예루살렘 패망과 포로 생할이었다. 포로에서 귀환하고 성전을 재건한(할)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다가 올 미래도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은혜 베풀기로 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약속에(8:15) 취해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다. 주님은 특별히 지도자들, 삯군 목자들의 잘못에 진노하신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삯군 목자에 길들여진 양 떼에게 떠넘겨진다. (뭐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ㅠ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스가랴 10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 9장은 ‘하나님의 백성은 형통하고 아름다우며, 자자손손 (청년과 처녀) 태평성대 (풍성한 햇 곡식과 새 포도주)를 누리게 될 것이다’ 로 끝났다. 이 하나님나라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겸손하신 왕이 다스린다고 그냥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도하고 순종하는 백성들이 요구된다.

(1) 하나님나라 백성은 철에 따라 (약속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비가 내려야 할 때 (봄비가 와야 할 때) 비를 간구해야 한다. (간구하면) 주님은 비를 (충족하게) 내려주셔서 약속하신 소출을 수확하게 하신다.

(2) 우상들은 지각도 능력도 없으며, 술객과 무당들의 위로도 헛되어, 이들을 의지하면 목자 없는 양처럼 떠돌이가 되며 고난을 당하게 된다.

(3) 주님은 (숫염소처럼) 대적하는 지도자들(목자들)에게 화를 내시나 대신 유다족속은 훈련된 주님의 군사로 쓰실 것이다.

(4) 주님이 모든 지휘관들을 (훈련된 유다 족속에서) 세우시고 진두지휘 하실 것이다.

(5) 주님이 군대에 함께하시며 친히 대장되셔서 대적 원수를 물리치시고 대적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6) 주님의 군사 유다 족속을 세워주시고 이스라엘도 구원하실 것이다. 이렇듯 주님은 긍휼하시다. 언제 포로로 잡혀가도록 내버려 두셨나는듯, 백성들의 왕이 되시며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실 것이다.

(7) (에브라임)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님의 군사가 되어 대대손손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다.

(8) 목자가 휘파람 소리로 양들을 부르듯이 백성들을 불러모아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9) 주님께서 흩으셨으나 원근각지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자들을 자녀와 함께 다시 불러모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10) 사방 원근각지에서 다시 돌아 오게 하시니 오히려 거주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11) 백성들을 세상풍파로부터 지켜주시며, 세상나라들의 교만은 꺾으실 것이다.

(12)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견고할 것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왕의 자녀로) 행할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다. 백성과 왕의 관계는 간구하고 응답하는 관계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주님께 간구할 수 밖에 없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주님의 이름으로 순종할 수 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는 자는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요, 주님을 의지 하지 않으니 세상풍파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자기 자신만의 노하우를 드라빔처럼 의지하는 지도자,  거짓 말씀으로 양들을 가르치는 삯군 목자들에게서 배운 형통은 오히려 세상풍파에 시달리게 한다. 주님은 교만을 꺾으신다.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스가랴 9:9-17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임하시는 평화

세상나라에 대한 경고에 이어 주님은 스가랴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왕되심을 예언한다.

(9)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백성)들이다.  이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이 노래하라고 명한다. 공의로우시며, 구원자되시며, 겸손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때문이다.  (10) 전쟁을 끝내시며 이방인들에게도 평화의 왕이 되시며,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11) (혈육적) 언약의 백성들을 (목마른 노예생활) 포로생활에서 건져낼 것이다. (12) 포로생활 중에도 회복의 언약을 소망한 백성들아 요새되신 주님께 돌아오라. 주님이 완전하게 (두배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13) 주님은 백성들의 자손을 군사로 불러 세상나라(헬라)의 자손을 무찌를 것이다. (14) 주님께서 친히 군대 대장으로 싸우시고, 진두지휘하실 것이다. (15)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면서 적군을 피비린내가 나도록 진멸할 것이다. (16) 대신 하나님의 백성은 양떼처럼 구원(보호)받을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이 곧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보물이 되어 빛날 것이다. (17) 하나님의 백성은 형통하고 아름다우며, 자자손손 (청년과 처녀) 태평성대 (풍성한 햇 곡식과 새 포도주)를 누리게 될 것이다.

어제 주님은 세상임금의 교만을 꺾으신다고 하셨는데, 이 아침,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우리 임금님은 겸손(온유)하시다고 하신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들의 합창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말구유에 뉘이셨던,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시던 날 하늘에서 울린 합창소리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4)

(우린) 얼마나 복되고 멋진 백성인가!

스가랴 9 :1-8

교만을 꺾으신다

주님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언에 이어 세상나라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신다. 세상나라들, 지명과 나라 이름들은 건너뛰고 읽으면

세상나라는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처럼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 (2)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한다. (3) 요새를 쌓으며, 은과 금도 쌓아 둔다. 그러나 세상나라는

(4) 주님에 의해 오히려 정복 당한다. (5) 주님을 두려워하고 패전에 아파하고 소망을 상실한다. 왕위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없어진다. (6) 대신 혼혈인(외국인)들이 살게되며, 주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꺾을 것이다. (7) 주님은 인신제사를 막으시고 우상제물을 먹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 할 것이다. (8) 주님은 압제자로부터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다.

세상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교만이다. 주님은 그들의 교만을 꺾으실 것이다. 나로 자랑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경건의 모양으로 드러난다고 하여도 교만이다. 기도, 금식, 구제, 주일성수, 성경읽기… 이런 것들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질 수 있다. 어제는 국제인권의 날이었다. 오늘 대체휴일로 쉰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중 대표적인 것이 인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인권도 불의하게 적용된다. 이 땅 캄보디아의 ‘평안과 조용함’은 인권유린의 산물인데 인권의 날을 공휴일로 지키니 아이러니다. 주님께서 이 땅의 교만도 꺾어주실 날을 소망한다.

스가랴 8:14-23

하나님나라

(14,15) 주님은 불순종한 유다 조상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하신 것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벌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은혜 베풀기로 뜻하신 것도 취소되지 않을 것이다. 두려울 이유가 없다.

(16)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해야 할 것은 진리를 말하며, 진실되고 공정한 재판을 해야하며, (17) 마음 속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고, 거짓맹세 등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19) 금식 절기는 변하여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 (진실한 행함) 으로 해야한다.

(20) 이런 하나님나라에 전입자(이민자)가 느는 것은 당근이다. (21,22)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마을 단위로, 나아가 국가와 민족적으로 하나님나라에 편입되고자 주님을 찾고 주님의 은혜를 구할 것이다. (23) 유다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방인들이 유다사람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불신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전출자, 역이민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삶이 없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나라의 법은 참 단순하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 1:27)

세속에 물들어 사니 하나님나라가 드러나지 않는다. 내일 주일. 우리끼리만의 예배가 주일성수일까?

토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