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3:20-27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악에 익숙한 세상을 씻어주려는 하나님의 열심일까요? 얼마나 비를 맞으면 깨끗해 질까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렘13:23]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가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식힐 수는 있지만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떠오른 구절이 이사야 1:18 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멘

그런데 여기서도 죄씻음이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고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을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라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네요. 그냥 속죄제사를 드린다고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나의 수치를 드러내십니다. 학교 구석 구석에 있던 먼지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과 같습니다. 귀한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도 하고, 이렇게 적어보기도 한들 실천하지 않으면 먼지 쌓여 망가진 물건들과 다를게 없구나. 그냥 버려야 하는 구나. 그나마 먼지를 살짝 툭툭 털기만 하면 되는 물건들은 건졌습니다만, 저도 그것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정말 별거없네요.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유다백성에게 소망이 전혀 없는 투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하나님의 도에 익숙해 지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제게 소망을 두시고 물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렘 13:12-19

대관식 vs폐위

대관식은 전제 군주가 왕위에 오를 때, 왕관을 받는 예식이다. 서양에서는 보통 왕위 계승자가 성직자 앞에 꿇어 앉으면 왕관을 씌움받음으로 왕이 된다. 대관식의 핵심이 바로 꿇어 앉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꿇어앉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 앞에 겸비한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대관식도 마찬가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도 “하나님께서 저를 도우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간구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관식이 좀 더 자주 거행되어야 하나님께서 대관식의 주관자이심이 선포될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너무 오래 왕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렘 13:18]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청종하라고 하신다. 교만하지말라고 하신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구절은 화관 대신 재를, 희락 대신 슬픔을, 찬송 대신 근심을 자초한다. 교만해서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어 앉은 (겸손한 ) 왕과 왕후에게 왕관을 씌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왕과 왕후에게 강제로)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명하신 후 왕관을 벗기신다고 하신다. 대관식 잔치가 되어야 할 자리가 폐위 당하는 자리가 된것이다.

하루를 대관식 잔치로 마치느냐 아니면 폐위의 수치로 마칠지는 겸손과 교만이 결정한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렘 13:1-11

예레미야의 역할극 (무언극)

등장인물: 예레미야, 보조1, 2, 3

준비물: 끄로마 2개 (캄보디아 스카프, 하나는 새 것, 하나는 낡아 헤어진 것), 하나님의 음성을 적은 메세지 보드, 해와 달 그림

무대: 무대를 양쪽으로 나누어 한쪽은 가게와 우물이 있는 마을, 다른 한쪽은 강가로 장식한다. 두곳 사이에 마을 쪽으로는 ‘예루살렘’ 강쪽으로는 ‘유브라테스’라고 적힌 이정표를 하나 둔다.

예레미야가 마을쪽에 등장한다. 곧이어 보조 1이 메세지 보드를 들고 예레미야 앞을 지나간다. (메세지 내용: 허리띠를 사서 허리띠를 띠고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녀라) 예레미야는 끄로마 가게에서 끄로마를 사서 허리에 두루고 다닌다. 우물가에서 물을 마시면서 끄로마가 젖지 않도록 행동한다. 무대등이 꺼지고 예레미야는 퇴장.

보조 2와 3이 해와 달을 들고 무대를 여러번 지나가고 무대 등을 점멸함으로 여러 날이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레미야가 끄로마를 하고 마을쪽에 다시 등장한다. 보조 1이  메세지보드들 들고 예레미야 앞을 지나간다. (메세지 내용: 허리띠를 가지고 유브라데로 가서 바위틈에 감추라) 예레미야는 이정표를 여러번 돌아 강쪽으로 걸아가 끄로마를 풀어 바위틈에 감추고 마을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로 이정표를 여러번 돌아서 온다. 예레미야 퇴장

보조 2와 3이 해와 달을 들고 무대를 여러번 지나가고 무대 등을 점멸함으로 여러 날이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레미야가 무대에 다시 등장. 보조 1이 메세지보드를 다시 들고 예레미야 앞을 지나간다. (메세지 내용: 유브라데로 가서 띠를 가져오라) 예레미야는 이정표를 여러 번 돌아 강쪽으로 가서 낡고 헤어진 끄로마를 꺼낸다. 예레미야는 끄로마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는 행동을 한다. 곧이어 조명이 꺼진다.

조명이 다시 켜지고 보조 1이 메세지 보드를 들고 나온다. (메세지 내용: 하나님께서 교회의 교만과 교회 지도자들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조명은 메세지 보드만 비춘다.

ㅠㅠ

// 1000킬로미터 떨어진 유브라데스 강까지 진짜 갔다 왔는지, 아니면 공동번역처럼 브랏시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만/이/ 하나님 백성의 자질을 썩게 했다는 것이 메세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처럼 되게 하려고 하셨으나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해서) 듣지 않았다. 에라이

 

 

 

 

렘 12:7-17

그 백성들이 내 백성에게 바알의 이름을 불러 맹세하도록 가르쳤지만, 이제는 도리어 내 백성에게서 도를 배워 익혀 ‘야훼께서 살아 계신다.’ 하며 내 이름을 불러 맹세하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그들도 내 백성과 함께 어울려 잘살게 되리라. 그러나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민족들을 뿌리뽑아 아주 없애버리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렘 12:16,17 공동번역]

귀에 따갑게 반복되는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면 세움을 입고 불순종 하면 진멸하리라. 심지어 바알을 섬기고 이스라엘을 바알의 이름으로 미혹했던 이방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소유라도 하나님께 반항하면 원수의 손에 넘겨 주신다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 오직 순종하는 자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순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도’를 배워 그 ‘도’에 순종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맛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렘 10:1-16

 

우상

넓은 길, 여러나라의 길

천기의 징조를 두려워 하는 길

도끼로 나무를 베어 두손으로 다듬고

금과 은으로 도색하고

못과 장도리로 고정하여 만든 우상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해서

오히려 사람이 메고 다닌다.

생기가 없는 피조물이니

우리에게 어찌 화를 주거나 복을 줄 수 있으랴.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

좁은 길, 하나님나라의 길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분

말도 못하게,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십자가에 못과 장도리로 고정하려고 했던가?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주님

생명의 빛되신 창조주

두려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