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1

시 91

탄탄대로를 노래하는 시는 드물다. 아니 없다. 어느 인생도 탄탄대로만 걷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가 밤에 찾아오고 화살이 낮에 날아드는 개인적인 어려움만 아니라 전염병과 재앙이라는 공동체적 재난까지 겹친다. 구원이란 근본적으로 이런 온갖종류의 환란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다.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처럼 통과가 보장된 길이기에 두려움없이 걷는다. 두려움이 노래로 변한다.

시편기자는 14-16절에서 하나님이 되어 노래를 이어간다.

“나에게 부르짖는 자를 내가 건져주며 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내가 높여주리라. 나를 부르는 자에게 대답해 주고 환난 중에 그와 함께 있으리니 나는 그를 건져주고 높여주리라. 그로 하여금 마음껏 오래 살게 하고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여주리라.”

구원이란 인생 순간 순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인생너머에 있는 것이다.

 

시90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 예수 믿고 가장 처음 찾아 본 구절 중 하나다. 선배 한 분이 관주성경을 펴서 자신이 빨간 연필로 줄 친 시편의 여러 구절들을 보여 주셨는데 그 때 왜 이 구절이 내 기억에 남았는지 모른다. 시편 몇편에 이 구절이 있는지 몰라 처음부터 쭉 살폈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즘 사람들은 백세인생을 노래한다. 그러나 칠십, 팔십을 너머 백세를 노래한다고 하여서 수고와 슬픔으로 화살처럼 날아가서 사라질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연수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일생을 기쁘게 한다. 이 사랑이 영생을 소망하게 한다. 고생한 날 수 만큼, 고난을 당한 횟수 만큼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는 시편기자의 노래는 바울의 고백과도 어우러진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롬 8:18 새번역]

오늘 아침도 나를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민 36

민36

주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경우를 두고 이렇게 명하셨소. 그 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누구하고든지 결혼할 수는 있소. 그러나 그들이 속한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수 있소. [민 36:6]

땅의 상속문제는 정말 어렵다. 그것은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뭣인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땅은 더욱 그렇다.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는 중요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받은 땅은 결혼과 함께 남편에게 귀속되고, 희년이 되어도 남편 지파의 유산에 포함된다. 그러니 슬로브핫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경우 그 만큼의 땅을 손해? 보게 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요셉 자손, 므낫세 지파의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자기 조상의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갈 것을 명하였고 슬로브핫으리 딸들은 사촌과 결혼하므로 순종하였다.

//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면 삶은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 데 땅은 남자를 따라가게 되는가보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방 여인들의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을 경계함이다.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땅을 잃기 때문이다.

민 35:22-34

민 35:22-34

부지중에,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살인한 사람은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도망하여 도피성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심판대에 서야 한다. 부지중 살인이라는 선고를 받아야 도피성에 머물 수 있다. 아니 머물러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거주해야 한다.

부지중, 악의가 없이 살인하였다고 하여도 살인자다. 그가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피를 보복하는 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고 이경우 피를 보복하는 자의 살인은 정당화 되었다.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살인에 대한 판결 규례는 엄중했다. 한 증인의 증거만으로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었고 고의로 살인한 자는 돈으로 사형을 면제받을 수 없도록 했다. 도피성에 피한 자도 돈으로 도피성을 나올 권리를 살 수 없었다. 고의든 부지중이든 사람을 죽인자는 그 땅을 더럽히는 자들이라 사형에 처하든지 도피성에 가둬야 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거룩하다.

민 35:1-21

민수기 35:1-21

모압평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이 한창이다. 아홉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설명하고 레위인이 거주할 성읍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들이 거주할 성읍을 제공하게 하셨다. 성읍만 아니라 레위인들이 받은 가축을 목축할 초장도 제공하게 하셨다.

레위인들은 48개의 성읍과 주변 초장을 배정받았다. 그중 여섯성읍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피할 도피성으로 지정하셨다. 레위인들에게 성읍을 제공하는 원리는 많이 받은 자가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떼어서 주는 것이 었다.

도피성에 관한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요단 동편 두지파 반이 차지한 곳과 가나안에 각각 세 곳씩 배치한 것이다. 면적이나 인구수로 따지면 가나안땅이 훨씬 더 넓고 많다. 생각해 볼 문제다.

도피성이라고 하여서 아무나 도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모든 사람이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으나 고의로 살인한 자들은 사형을 받았다. 살인도구를 사용하거나 계획적으로 살인한 사람에게는 도피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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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이 가지고 있는 땅을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에게 줄 때에는, 각 지파들이 받은 몫의 비율대로 떼어 내도록 하여라. 많이 가진 지파에서는 많은 성읍을 떼어 내고, 적게 가진 지파에서는 적게 떼어 내어라. [민 35:8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을 기업에서 레위인들에게 거주할 성읍과 성읍 주변의 초장을 주라고 하셨다. 많이 받은 지파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지파는 적게 떼어서 주라는 공동체적 나눔을 명하셨다.  떼어 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ㅠㅠ 다. 받은 것을 비교해도 ㅠㅠ 제곱이다. 그런데 촛점을 ‘주는 것’에 맞추면 풍성해 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바울은 전한다. 주님이 언제 어디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말해주지는 않지만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 레위인들이 받은 주변 초장의 용도는 단순히 가축을 보관하는 장소라기보다는 레위인들도 기본적인 생업을 해야 함을 뜻하지 않을까? 회막을 나르며 제사일을 돕던 레위인들의 직무는 가나안에 정착하면 많이 줄어들 것이다. 회막을 운반하는 일에서 찬양대의 일로 바뀌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