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7:1-11

민 27:1-11

민수기 두번째 인구조사의 목적은 전쟁보다는 땅분배를 위한 것이었다. 이십세 이상의 남자 수를 세는 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 다섯명이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 온 회중 앞에서 문제를 제기 했다.

슬로브핫은 1세대로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슬로브핫이 죽은 이유는 반역에 가담해서 벌로 죽은 것이아니라 자연사였다. 그런 그가 아들이 없다고 땅을 분배받지 못한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다는 주장이었다.

모세는 이 사연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그리고 아들 없이 죽은 가문의 기업에 대한 부가적인 규례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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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이들 다섯명의 이름을 누가 기억할까? 어쩌면 여성 참정권의 효시가 아닐까?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셨고 이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

약자들의 문제를 들어 준 모세와 엘르아살과 지휘관. 이렇게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권력구조는 열린정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뢴다. 약자들이 제기한 문제라고 강자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게 묻는다. 뭔가 아이디얼하지 않은가!

7절.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에서 ‘옳으니’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라는 의미다.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아멘이다.

민 25:1-18

민 25:1-18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싯딤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싯딤에 머문 까닭은 확실하지 않지만 모압과 다투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하여간 고인물은 썩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브올의 아들 발람의 저주는 피할 수 있었으나 모압여자들의 유혹은 피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에게 절하고 바알브올 편이 되었다. (바알브올에게 가담하였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하나님께서는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을 교수형에 처라하고 하셨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었다. 회개의 눈물이었을까? 아마도 염병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시므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던지 모압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왔다. 시므리는 심판중에도 모압여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하나님의 진노에 무감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은밀히도 아니고 온 회중 앞을 지나가다니.

이것을 본 제사장 비느하스가 창으로 시므리와 수르의 딸 고스비를 찔러 죽였다. 그러자 염병이 멈췄다.  이만사천명이 죽었다.

우선 비느하스는 모압여자와의 음행을 창으로 찌른 일종의 속죄 행위로 그와 그 후순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받았다. 모압 여자의 유혹에 빠졌던 시므리의 이름도 성경에 기록되었고 시므리를 유혹했던 모압여인도 이름과 출신이 (고스비, 수르의 딸)기록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시므리’라는 이름은 ‘어린 양’이라는 뜻이니 이번 사건의 속죄제물이 되었다는 것과 이름이 연관이 있는 듯 하다. ‘고스비’는 ‘거짓, 속이는 자’라는 뜻이니 시므리를 유혹했다는 사실과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마지막 절을 보면 고스비는 미디안 지휘관의 딸로 기록되었다.

모압과 다투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하셨다. 모압과 미디안이 손잡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지만 그들의 계락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만다. 절반의 성공인가?

 

민 24:10-25

민 24:10-25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1]

발락이 화가 났다. 그는 발람에게 조소의 박수를 치면서 눈노의 말을 뿜었다. “내가 그대들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아! 어리석은 발락이여! 발락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던가? 애당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하다고 생각되어 발람에게 저주를 요청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발람은 복채에 대한 탐욕을 품었으면서도, 아니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점술과 복술에 능해서 였을까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다. 어제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제 예언한다. 복술과 점술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 지극히 높으신 자(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자로,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로, 엎드려서 눈을 뜬자로 예언한다.

‘발람’이라는 ‘이름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백성을 파멸시키는 예언을 한 자로 기억될 수 있다.

17-19절 예언은 가나안 정복과 다윗왕국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하나님나라까지 포함된 예언이라고 생각된다. (예언은 나중에)

민 23:27-24:9

민 23:27-24:9

발락이 발람에게 한 번 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게 세상방식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각한다. 발락은 이번에는 브올 산꼭대기로 발람을 데리고 갔다. 발람도 대단하다. 나귀 사건으로 자아가 죽었건만 복채를 향한 탐심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했다.

발람은 발락에게 다시 한번 제단 일곱을 세우고 수송아지 숫양을 제물로 준비시키고 발락은 발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 때까지 자아가 죽었으면서도 여전히 복채에 이끌려 복술이나 점술을 사용하였던 발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 앞 선 두번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피커처럼 울려 주기만 하였다면 이번에는 하나님말씀이 온전히 소화되어 예언의 말씀으로 선포되었다.

발람은 자신이 눈먼자,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귀먼자에서 환상을 보는 자가 되었음을 먼저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한다.

자아가 죽었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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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진을 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그 때에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다. [민 24:2]

발락이 발람에게 한 번 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해 달라고 요청했다.[23:27] 이게 세상방식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각한다. 발락은 이번에는 브올 산꼭대기로 발람을 데리고 갔다. 복채에 대한 유혹도 대단하다. 나귀 사건으로 자아가 죽었건만 발람은 복채를 향한 탐심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했다.

지성이면 감천을 바라는 발락과 자아가 죽었으면서도 탐심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발람은 이동네 저동네 유명하다는 잡신을 좇아 다녔다. 그런데 그 때까지 자아가 죽었으면서도 복채에 이끌려 여전히 복술이나 점술을 사용하였던 발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 앞 선 두번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피커처럼 울려 주기만 하였다면 (종의 신분이었다면) 이번에는 하나님말씀이 온전히 소화되어 예언의 말씀으로 (아들의 신분으로) 선포되었다. 눈먼자 귀머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환상을 보는 자가 된 것이다.

자아가 죽었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민 23:13-26

민 23:13-26

발락은 발람을 다른 곳으로 인도 한다. 이스라엘 진영이 다 보였던 바알 산당 대신 비스가 꼭대기로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진영 끝부부만 보이는 곳이었다. 쭉쭉빵빵, 씩스팩! 발락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사람이었다. 발람이 저주대신 축복을 한 것이 이스라엘의 진용에 위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다시 일곱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드렸다. 발람은 다시 한번 제사는 발락에게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갔다. 돌아 온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락과 발락의 고관들에게 자세히 전했다.

발람은 변치 않는 하나님께 저주가 아닌 축복할 것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가장 놀라운 축복은 이스라엘의 아킬레스건인 허물과 반역을 간과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니 간과가 아니라 아예 보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출애굽의 하나님! 무리지어 달리는 들소 떼처럼 거칠 것이 없는 하나님으로 찬송한다.  이런 하나님의 보호아래 점술이나 복술로 이스라엘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암사자요 수사자로 최상의 포식자의 위치에 오른다.

발람의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에 발락은 저주도 축복도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발람은 발락에게 나는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신 것을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나귀 사건으로 발람의 자아는 죽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