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2:1-11

왕상 12:1-1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다.

세겜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람(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신 곳이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첫 제단을 쌓았다. [창 12:7]

그리고 출애굽후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여호수아가 마지막 유언을 한 곳이기도 하다.[수 24] 당시 하나님의 성소는 상수리 나무 곁에 있었다.[24:26] (아브라함이 첫 제단을 쌓은 상수리 나무와 같은 나무일 필요는 없겠으나 상징하는 바는 크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고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한 지파다. 그래서 가나안 중심의 노른자 땅을 차지했다. 어쩌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운명적 만남인가? 유다지파의 갈렙은 반대로 남쪽 산지 헤브론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이 이렇게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한 ‘여호수아’파와 유다를 중심으로 한 ‘갈렙’파로 이원화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다가 강성해 지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삼하5:3]

하여간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간 이유는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다윗 당시에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내려 왔는데 역학구조가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호수아파’에게는 여로보암이라는 새로운 패가 있었다. 애굽 시삭왕에게 망명가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와서 대표로 삼았다. 여호수아파의 요구는 노역을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르호보암은 삼일 말미를 얻어 측근들의 자문을 구했다.

솔로몬 왕을 섬겼던 원로 자문단은 여호수아파의 요구를 백성들의 요구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오늘 (이번에 한번)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영원히 왕위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문했다. 르호보암은 두번째 자문단 친구들과도 의논했다. 이들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어린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성들을 노역자로 생각했다.

백성을 백성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노역자로 부리느냐가 르호보암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답은 낼 나온다. 이미 알지만.

그러나 르호보암의 문제도 왕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파괴한 것은 선지자제도였다. 어제 적었지만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선지자’라는 단어는 여로보암에게 분열왕국을 예언한 아히야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아히야는 실로에 기거하면서 예언을 했을 것이나 솔로몬은 들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아들 르호보암에서랴. 르호보암의 실수는 왕위에 대한 문제를 원로들과 아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실로로 내려갔어야 했다. 선지자에게 들어야 했다.

 

왕상 11:26-43

왕상 11:26-43

내우외환이라 했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내우다. 느밧이 무슨 일을 했는지 성경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일찍 죽었나보다. 그래서 여로보암의 어머니 이름을 스루아라고 기록하면서 과부라고 토를 달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여로보암은 착실하게 자랐다. 솔로몬이 부지런한 청년이 큰 용사가 되는 것을 본 것으로 짐작컨데 솔로몬이 느밧을 총애했을 수도 있겠다. 일찍 죽은 신하의 아들이 잘 자라자 감독의 한 자리를 맡겼다고나 할까.

여로보암을 눈여겨 본 사람은 솔로몬만이 아니었다. 하나님도 계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에 대한 벌로 여로보암을 선택하셨다.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솔로몬의 손에서 열지파를 빼앗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불순종을 이방신들을 경배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다윗 집안과 한 지파를 남겨두는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하시면 솔로몬이 죽으면 열 지파를 주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여로보암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모순이다.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리라’와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에 합당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도 마찬가지다.

아히야와 여로보암의 만남이 솔로몬의 귀에 들어갔다. (정말로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아니 솔로몬이 새와 대화한다더니) 이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고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애굽왕 시삭에게로 망명한다. 솔로몬이 사울왕처럼 되어버린 것은 많은 지식이 그의 영혼을 핍절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악령에 시달렸을 것이다. 솔로몬의 사십년 통치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부귀영화의 찬란함의 뒤안길.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돌린 (귀를 돌린) 지혜자의 마지막이다. 솔로몬의 역사에서 ‘선지자’라는 단어는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선지자 나단’이후 (왕상 1장) 쭉 없다가 오늘 본문 ‘선지자 아히야’에서야 (11장) 다시 나타난다. 이런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솔로몬의 말로가 이렇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솔로몬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왕상 11:14-25

왕상 11:14-25

하닷과 르손. 에돔사람 하닷과 수리아의 르손은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다. 괜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움은 다윗왕 시절까지 올라간다. 다윗왕국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변 약소국가들에 대한 정복전쟁은 당연히 주변 민족들의 미움을 샀을 것이다. 사관은 하닷과 르손에 대한 사건을 비교적 자세히 적고있다.

특별히 하닷의 경우 에돔왕의 자손이었다. 왕자였을 것이다. 그러다 어렸을 때 요압의 칼을 피해 애굽으로 망명해서 살았다. 바로는 하닷에게 처제까찌 아내로 줄 정도도 선대했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에 하닷은 바로의 허락을 받아 에돔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하닷은 애굽의 지원을 받았을 수 있다. 그리고 솔로몬 일평생의 골치꺼리가 되었다. 솔로몬은 이것을 해결하고자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을까? (물론 하닷을 선대한 바로와 솔로몬에게 딸을 준 바로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짜 맞추기가 힘들다.) 솔로몬 초기에는 가시에 불과 했던 하닷이 솔로몬의 타락으로 환란이[25] 된 것이다.

반면 르손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종 출신이다. 소바 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닷에게 의지하는 (하닷에셀은 ‘도움의 하닷’이라는 뜻이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으로 여기 돌을 놓은 곳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표현을 기억하자) 왕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소바사람들을 죽이려고 공격했을 때 하닷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못하는 소바 왕에게서 르손은 소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르손은 소바왕을 떠나 다메섹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수리아 왕이 되었다. (소바 왕이 의지한 하닷과 에돔의 하닷이 동일인인지 알 수 없다.) 르손 역시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돌렸을 때 솔로몬으로부터 마음을 돌리는 주변 국가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평안은 솔로몬( 평화)이라는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있기 때문이다.

왕상 11:1-13

왕상 11:1-13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사관은 이에 더해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명이라고 기록한다.

동양에서는 ‘삼천’이라는 숫자가 아주 아주 매우 많음을 뜻하는 숫자다. 대표적인 예가 ‘의자왕과 삼천궁녀’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일천’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할 때 정확히 일천번의 번제를 드렸다라기 보다는 셀 수 없이 많은 번제를 드렸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솔로몬의 후궁과 첩의 합이 ‘일천’이라는 것도 셀 수 없이 많았다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많은 아내를 거느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니다. 신명기에서 이미 이스라엘 왕에 대해 경고하실 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다. [신17] 솔로몬이 이 말씀을 몰랐을리 없다. 더군다나 하나남께서 두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셨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마다, 죄를 지적하실 때마다 회개하고 돌이켰다. 그래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사관은 솔로몬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라고 기록한다.

불순종의 결과는 나라를 신하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다윗과의 약속을 지켜 코딱지만하게, 한지파를 더해서 다윗의 왕위를 유지해 주겠지만.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 사랑이 죄일리 없다. 그러나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탐했다고 번역하는 게 옳을 듯 싶다. 여색에 빠진 것이다. 사관은 이것을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을 돌린다’라는 이표현이 이 본문에만 네번이나 나온다. [2,3,4,9]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그곳에 마음을 빼았겨 그곳에 마음을 둔다는 의미고, 그곳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품에 안은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 따라 다른 신들을 따르게 되었다. 사관은 특별히 모압의 그모스, 암몬의 몰렉을 언급한다. 이 두신은 인신제사와 관련된 신들이다.

성경에는 솔로몬의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과 솔로몬 통치 초기에 지방장관의 아내가 된 두 딸만 언급되어 있다. 일천명은 아니더라도 그 많은 아내들에게서 난 자녀들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르호보암은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로 기록된다. 나아마 역시 성경에 유일하게 솔로몬의 아내 중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아마도 그 수많은 여인들을 물리치고 안방마님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르호보암을 위해 솔로몬의 다른 자녀들은 인신제사를 드리게 하지는 않았을까 상상도 해 본다.

사관은 솔로몬이 나이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고 기록하지만 이미 그 여인들을 사랑할 때부터 시작된 악몽일 것이다.

+++++페북 엔딩

후궁 칠백에 첩이 삼백인데 솔로몬의 자녀이름은 르호보암과 지방장관에게 시집보낸 두 딸 외에는 기록이 없다. 솔로몬의 아내 이름도 르호보암의 어머니 암몬여인 ‘나아마’가 유일하다.

왜? 나아마가 안방마님을 차지 했다면? 사관은 이방신을 기록하면서 모압의 그모스, 암몬의 몰렉을 언급했는데 둘 모두 인신제사와 관련있다. 나아마가 안방마님이었다면 다른 모든 자녀들은 인신제사로 드려졌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혹은 다른 여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출산을 감추었을 것이다.

사관은 솔로몬이 노년이 되어서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하지만 르호보암이 41세에 즉위하고 솔로몬 통치기간을 40년으로 보면 이미 왕이 되기 전부터 이방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결국는 늙은 다윗이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다윗왕에게 죄송)

오늘의 핵심 단어는 ‘마음을 돌리다’이다. 마음을 ‘둔다’,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부귀영화, 지혜, 성적 탐욕 이런 것들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둘 순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기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왕상 10:14-29

왕상 10:14-29

솔로몬의 세입금의 규모가 666달란트라고 사관은 기록한다. 이 숫자를 그대로 믿을 이유는 없다. 666은 완전한데서 (777에 비하여) 뭔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상인, 무역상, 주변 나라의 왕들과 고관들로부터도 금을 조공이든 선물로든 받아 채웠다. 금이 얼마나 많았으면 큰 방패, 작은 방패를 만들고, 상아로 만든 보좌도 금으로 입혔고 모든 그릇을 금으로 만들어 사용했을까? 사관은 금이 많은 이유로 삼년에 한번 무역을 통해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다고 부연설명한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는 왕보다 큰지라”[23]

드디어 재산이 지혜를 넘어섰다. 스바의 여왕 사건의 기록 때만 하여도  ‘지혜와 왕궁’’, ‘지혜와 복’으로 사관은 솔로몬의 지혜를 부귀보다 먼저 기록하였다. 그런데 드디어 역전되어 솔로몬의 부귀가 지혜보다 먼저 언급된다.

세상사람들은 이제 지혜와 부귀를 동일시 여기게 된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예물을 가지고 솔로몬을 방문했다. 지혜가 있는 곳에 물질이 있었는데 물질이 있는 곳에 지혜가 있다고 바뀐 것이다.

솔로몬은 병거와 마병도 모았다. 애굽과의 거래를 통해 말을 수입했으며, 주변 나라들에게 되팔아 이익을 남겼다.

솔로몬 왕은 신명기 17:16,17 이스라엘 왕이 하지 말아야 할 것 첫번째인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다. 두번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다음에 나오겠고 세번째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는 말씀도 어겼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주신 지혜를 부귀영화를 쌓는데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면서 부귀영화는 거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냥 따라 오는 것이 부귀영화인데…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로 부귀영화를 쌓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봐도 그렇다. 똑똑한 머리는 국민을 섬기라고 주셨는데, 자신의 부귀영화를 쌓는데 사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듣지 않았나.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저축은행이나, 영재학원이나 뭐 그런데 사용되는 이유가 달리 있을리 없다. 솔로몬의 원래 이름은 ‘샬롬’ 평화 평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여디디야’라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아명도 있다. 이 멋진 이름이 ‘꾀와 부귀영화’로 바뀐 것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