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4:20-34 샬롬!

왕상 4:20-34 샬롬!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20]  // 더 바랄 것이 무엇일까? 미래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쌓아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솔로몬의 전성기. 다윗이 확장해 놓은 광대한 땅과 그 곳으로부터의 조공. 그러나 어쩌면 애굽 사대주의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솔로몬 통치의 첫 단추가 애굽의 딸과의 (정략)결혼으로 시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먹고 // 사관은 밥상으로 솔로몬의 풍요로움을 설명한다. (그정도면 적어도 만오천에서 삼만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

마시며 // 사관은 태평성대를 뜻하는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라고 기록한다.

즐거워하였다. // 솔로몬 왕국은 사람들이 각기 즐거워 하기도 하였지만 그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다.

사관은 솔로몬의 병거의 규모를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명이며”라고 기록한다. 전쟁한번 치르지 않은 태평시대에 웬 이런 규모의 마병부대를 유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오늘 날로 말하면 ‘핵 보유국’의 과시라고 해야 하나. 평화유지용? 하여간 각 지방 장관들은 한달에 한번 왕을 먹여야 했고 이 말들도 챙겨야 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도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솔로몬의 지혜도 과유불급인 듯하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29]

사관은 솔로몬의 지혜의 뛰어남을 예찬한다. 지식마져도 출중했다고 기록한다. 그 결과 천하에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3:28] 왕을 두려워 하였으나 천하에서 파견되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만 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배경락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솔로몬”의 결론을 인용한다.

출처: https://brunch.co.kr/@rothem/317

[신명기 17:16,17에 보면 이스라엘 왕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하였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껫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솔로몬은 이 세가지 외에도 백성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다. 그는 지혜로운 왕일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백성의 아픔과 고통이 뭔지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였다. 결국,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11개 지파가 솔로몬 집안에 등을 돌리고 나라가 갈라졌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보다는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다윗이 성군이라 칭함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왕상 4:1-19 조각

왕상 4:1-19 조각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2절의 ‘신하’라는 단어는 수령이나 대장 혹은 장관을 뜻한다. 솔로몬 내각이다. 눈에 띠는 특징은

  • 젊은 지도자의 등용이다. //사독과 나단의 아들들의 이름이 보인다. 특별히 나단의 아들 사붓 제사장은 왕의 친구라고 소개한다.
  • 군부보다는 행정중심이다. // 서기관, 사관, 지방장관, 궁내대신, 노동감독관 등등
  • 제사장이 많다. // 성전 건축전이라 산당이 많아서 였을까? 아니면 솔로몬이 제사를 많이 드려서? 제사장 직은 기름부음을 받은 직책이라 사독과 아비아달의 이름이 모두 올라가 있다.
  • 중앙집권적이다. //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었다. 지방자치의 목적이 아니라 왕과 왕실을 위한 조직이었다.
  • 사위들의 등용? 아니면 지방 유지와 딸을 정략적으로 결혼시킴? // 하여간 솔로몬의 딸 다밧과 바스맛은 지방 관장의 아내가 되었다.

선왕 다윗왕 때는 군대장관, 다윗의 용사들과 같은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한 외치에 주력한 조직이었다면 솔로몬 내각은 내치에 중점을 둔 조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조국도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시기적절한 본문이다. 새로운 정부는 어떻게 조각을 할 것인가? 우리는 내치와 외치 (외교) 모두가 중요하다. 새정부도 하늘과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지혜는 들음에서 시작된다. 국민들의 사정을 잘 듣고, 하나님의 법도를 잘 들으면 되지 않을까?

경험이 없는 젊은이, 자기의 친구, 친인척이라고 하여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면 시비 걸 이유가 없다.

왕상 3:16-28 하나님의 지혜

왕상 3:16-28 하나님의 지혜

뻔 한 스토리가 되어버리 솔로몬의 재판.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사실 이야기는 ‘지혜로온 한 창기’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두 창기가 솔로몬 앞에 나왔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이런 문제를 왕이 직접 재판하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하여간 두 창기가 솔로몬 앞에 섰다. 이 때 한 여인이 자초지종을 말한다. 둘의 출산에서, 다른 여인의 아이가 죽은 이유, 그리고 아이가 뒤바뀐 것을 조리있게 말한다. 이 여인이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이다.”[21]라고 결론 지을 때 사용된 ‘자세히 보니’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라는 단어와 같다. 곧 ‘분별하는 지혜’다.  여기까지라면 창기의 지혜나 솔로몬의 지혜나 오십보백보다.

두 창기는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다.”이라는 공방을 주고 받는다. 솔로몬의 판결은 모두들 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건으로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두려워하게 된다. 28절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지혜’의 지혜라는 단어는 솔로몬이 구하고 받은 지혜와 다른 단어다. 그런데 이후에는 솔로몬의 지혜를 언급할 때도 하나님의 지혜에 사용하는 같은 단어를 쓴다. 솔로몬의 지혜가 협의의 ‘분별하는 지혜’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된 것이다. 결국 받은 지혜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더 지혜롭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혜를 구하는 자는 지혜로울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더 지혜로울 것이다.

//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가까이 한 솔로몬 // 저들의 자초지종을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솔로몬 // 합리적인 사고보다 생명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솔로몬

왕상 3:1-15 솔로몬의 꿈

왕상 3:1-15 솔로몬의 꿈

내우를 해결한 솔로몬은 외환을 대비한다. 그 방법중의 하나가 주변 강대국과의 정략결혼이다. 그 첫번째 기록이 애굽왕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이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선왕 다윗의 이름을 혼주로 그대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솔로몬은 꿈에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다.  11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에 사용된 지혜라는 단어는 ‘분별하는 지혜’다. 오늘 본문에서 이 단어는 세번 사용되었다. 첫번째가 9절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에서 ‘분별하게’로 번역되었고  다른 하나는 12절의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에서 ‘총명한’으로 번역된 단어다.

그러니 ‘지혜’는 분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것이다. 총명하다는 것은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다. 바르게 분별하기 (지혜롭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듣는 것이다. ‘듣는 마음’[9]과 ‘오직 송사를 듣고’[11]에 사용된 단어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를 듣는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지혜는 ‘듣고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은 내치를 위해 지혜, 즉 듣고 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을 구했다. 이 지혜라는 단어는 잠언에서도 여러번 (28번) 반복된다. 그 중 한 구절이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29:7]이다.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줄 지식이 없다고 할 때 ‘알아 줄’에 사용된 단어다. 즉 ‘악인은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로운) 지식이 없느니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중요한 것이 결국은 백성의 사정을 분별하는 지혜다. 그중에서도 가난한 자들의 문제를 듣고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다. 솔로몬은 선왕 다윗에게 이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목동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다윗. 솔로몬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함으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세대 지도자인 솔로몬에게는 다윗에게 있었던 인생의 굴곡이 없었다. 다윗이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한것과 이어진다. 스스로를 작은 아이로 인정한 솔로몬은 대장부가 되어야 했다. 대장부란 부모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분별력 (지혜)를 가진자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솔로몬을 기뻐하셨다. 그래서 지혜로운 마음을 주셨다. 인생에 이런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구하지 않는 부귀영화도 주셨다.  솔로몬이 사는 날 동안 솔로몬과 부귀를 견줄 왕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 더 장수의 축복. 어느정도는 조건적인 장수도 허락하셨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키면 오래 살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솔로몬이 깨어나서 보니 꿈이었다.

일장춘몽. 아니다 꿈에서 이미 누린 것이 아니라 이루어 질 ‘꿈’이기 때문이다.

왕상 2:36-46

왕상 2:36-46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6b]

내부의 적들을 차례로 처리합니다. 선왕 다윗이 유언으로 남긴 시므이에 대한 지혜로운 처리는 3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이루어졌다.

솔로몬의 시므이에 대한 처리는 남은 여생 ‘주거제한’이었다. 시므이는 지정된 거주지, 예루살렘을 이탈할 경우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시므이는 순순히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삼년동안 잘 지켜오던 판결을 도망간 종들을 찾아오기 위해 깼다. 자신의 생명을 두 종의 몸 값과 바꾼것이다.

그러데 솔로몬은 사형 판결문에서 주거지 이탈뿐 아니라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네가 선왕 다윗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 여생을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예수 믿기전 하나님 모르고 살아왔다.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아왔다. 하나님께 악을 행한 것이다. 그런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그것도 젊을 때 은혜를 받았다.  시므이는 삼년만에 자신이 받은 은혜에 무뎌졌다. 그러나 나는 삼십년 넘게 아직도 그 은혜를 붙잡고 있다. 그렇다고 그동안 기드론 시내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얼마나 자주 발을 담갔으면 늘 축축한 느낌이다.

// 시므이는 사실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는 않았다. 시므이가 두 종을 찾아 갔던 가드는 예루살렘 동남쪽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서남쪽에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떠났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예루살렘의 경계는 시므이에게 루비콘강이었다.) 신앙의 경계도 기드론 시내처럼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처럼 확실한 경계는 건너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변명은 안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