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14-39] 명령을 따라

[민 3:14-39]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내것’이라고 구별하셨다.[12] 이 레위인도 인구조사를 하라고 하신다. 레위에게는 게르손, 고핫, 그리고 므라리 세명의 아들이 있었다. 출애굽기를 통해 아론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장유유서’의 질서를 적용하지 않으셨다. 고핫사람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의 지휘관으로 임명받은 사람도 웃시엘의 (고핫의 네번째 아들) 아들 엘리사반이었다. 레위인 전체를 통솔할 책임자로 아론의 세째아들 (두 형이 죽었으므로 장자가 된) 엘르아살이 임명되었다.

레위인들도 성막주위를 배치되었고 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모두 거룩한 일이었다. 구별된 일이다. 따라서 외인이 가까이 할 수 없다.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38] 어제는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라는 다소 완곡한 표현이었는데 오늘은 정결케 하는 책임이 레위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같은 표현 다른 번역일수도 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계수된다. 하나님의 아신바 된다. 마치 선한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아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몰라서 세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합지졸의 백성들을,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을 잘 훈련된 군대로 바꿔가시는 하나님의 인원점검이다. 하나님나라 군대의 제식훈련이다.

명령을 따라 레위인을 계수하니 이만 이천명이었다.

[민 3:1-13] 다른 불

[민 3:1-13] 다른 불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그리고 이다말이다. 그런데 장자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하루 아침에 넘버2와 넘버 3가 죽었다.[4] //아론이 넘버1

아론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3]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에서 일을 하는 레위인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다.[8] 내 (하나님) 것이라고 구별하신 레위인을 맡은 집안이다.[12]

이런 아론의 집안이라도 외인이 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명령에 예외가 될 수 없다. [10] 넘버 2 나답과 넘버 3 아비후가 죽었다.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다. 이때 사용된 ‘다른’ 이라는 단어와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에 사용된 ‘외인’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라고 한다.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결국 ‘외인’이 가까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간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불과 ‘외인’은 다 부정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각각 성령을 속이다가 죽은 사건을 알고 있다. [행 5]

하나님 앞에 뭔가 감춘 것이 있다면 (불가능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외인’이라고 하신다. ‘외인’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 아니 하고자 하여도 죽게 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세상 사람들로부터 ‘뭔가 달라’라고 평가 받는 것은 괜찮으나 하나님께서 ‘외인’이라고 판단하시면 나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Numbers 1] Census

[Numbers 1] Census

How hard would it be to count those over the age of 20 and fit for war from a crowd of roughly 2 million people? Yet they managed, and counted 603550 people.

600 thousand strong. They say the Armed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have around 650 thousand enlisted men (4 million if we count the reserves). That means the Israelites had an army of a similar scale to the standing army of Korea. This is a very large force.

In most ancient wars, an army’s capability for war wa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number of men deployed. 600 thousand, is therefore a massive number. For the Israelites, who had just been chased out of Egypt, this would have been a surprise. They would have considered themselves a useless rabble, but one census changes their perspective.

In addition, they had an army that was logistically efficient (as proven by the fact that they managed to count 600 thousand people).

The reason that a rabble of people could be transformed into a might army was this: “The Israelites did all this,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54]

We know the rest of Israel’s history. We know that when they forsake the Lord’s commands, there army is not much better than a rabble. War is not a fight of numbers, but is in God’s hands.

What we need to trust in is NOT numbers, or statistics. We need to rely on God.

// Starting from March, we will be meditating on Numbers. The passages are long, so we will focus on specific verses that give us insight.

[John 14:25-31] Peace

[John 14:25-31] Peace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27a]

The Greek word translated into ‘peace’, can also mean ‘calmness’ or ‘tranquility’. In Paul’s letters, peace is often paired with Grace. ‘Grace and peace’ is a phrase used frequently as greetings or farewells in his letters.

Jesus promised us peace, peace that the world cannot have, peace that the world cannot understand.

And the more I meditate on the word ‘peace’, the more I think that this word is referring to a communal peace instead of an individual peace. A peace of unity.

“On that day you will realise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20] The ‘you’ used in this passage is actually in the plural form. Peace is knowing that Jesus lives within us. Worry and fear only come when we forget that Jesus lives within us.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Matthew 5:9]. Jesus already called his disciples his children.

Grace may be received personally, but peace is received as a community.

[민 2] 동남서북

[민 2] 동남서북

이곳 캄보디아 사람들은 동서남북을 잘 모른다. 지도를 읽는 뚝뚝 운전사도 거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여도 지도 볼 줄 모른다. 이곳에서 어디를 가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시장이름을 알아야 한다. 어느 시장 근처로 가자고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부터 오른쪽 왼쪽 알려 주어야 한다. 좌우구분은 어디서나 통하는 방향이다.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방으로 진을 친다. 육십만 대군?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노예출신들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동서남북을 가르칠 것인가? 하나님의 방법은 회막중심이었다. 동쪽은 해가 뜨는 쪽이다. 그리고 남쪽은 해가 뜨는 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이다. 서쪽은 바다가 있는 쪽이다. 북쪽은 (동남서쪽이 아닌) 나머지 쪽이다. 히브리어를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없으나 히브리어 단어가 갖는 의미상으로는 위와 같다.

// 동쪽은 해가 뜨는 쪽이다. 크마애어에서도 동쪽을 ‘캉(쪽)까읃(동)’이라고 한다. ‘까읃’ 태어나다 , 떠오르다, 나타나다의 의미를 가지니 해가 뜨는 쪽이라는 뜻이다. 남쪽은 머리를 뜻하는 ‘뜨봉’을 서쪽은 해가지는 쪽을 의미하는 ‘르읒’을 북쪽은 사람 발을 의미하는 ‘쯔응’ 을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회막을 중심으로 해가 뜨는 쪽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나머지 방향은 결정되었다. (써놓고 보니 당연하다.)

오늘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다 준행한다. 동서남북을 모르는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회막을 중심으로 해뜨는 곳에서 시작하여 각 지파를 배치하셨다. 오합지졸이 진영을 갖춘 군대가 되었다. 가고 쉬는 것은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랐고 자신의 위치는 자신이 바라봐야 할 깃발에 따랐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른다고 오합지졸을 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깃발에 속한 것일까를 알아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