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26-35

왕상 2:26-35

//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청을 이전의 모반사건의 연장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당시 아도니야의 모반에 가담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고향 아나돗으로 유배보냈다. 아비아달을 죽이지 않은 까닭은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에서 알 수 있듯이 선왕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을 함부로 죽이지 않은 것과 같다. 아비아달이 선왕 다윗과 동고(동락) 하였던 것도 이유의 하나로 덧붙인다. 이렇게 아비아달은 제사장 직을 파면 당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던 아비아달은 엘리 가문에서 제사장이 끊어진다는 말씀이 응하는 당사자가 된 것이다. (삼상 2장 3장)

아도니야의 반정에 참여했던 요압이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소식을 들었다. 그 역시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했다.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고 사면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였던 것일까? 그러나 솔로몬은 브나야를 보내어 요압을 치라고 하였다.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있는 요압을 죽이지 못하고 돌아오자 솔로몬은 재차 장막안에서라도 요압을 처단하라고 명한다.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대로 다시가서 요압을 죽였다. 솔로몬은 율법을 수호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출애굽기 21:14]

솔로몬은 요압을 대신하여 브나야를 군사령관을, 제사장 사독에게 아비아달의 역할까지 맡겼다.

정권교체에 따른 피비린내.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33] 솔로몬이 왕위에 앉아 첫번째로 한 일이 제단 뿔을 잡은 아도니야의 사면이었는데… 일의 결국은 피를 불렀다. 정녕 피흘림이 없이는 평강이 없단 말인가?

// 드디어 군대와 종교를 모두 거느린 제왕이 탄생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솔로몬이 퇴락하는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간다. 우리나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 패자들과 기득권 세력의 반성과 자숙이 필요하다. 패자들이 기득권자와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그 결과는 솔로몬 시대와 다를게 없을 것이다.

왕상 2:13-25 밧세바의 마지막

왕상 2:13-25

솔로몬이 왕위에 앉아 첫번째 행한 일은 아도니야를 살려주는 일이었다.

솔로몬이 다윗이 죽은 후 첫번째 행한 일은 아도니야를 죽이는 일이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 왕에게는 여전히 잠재적 위험 요소였다. 더군다나 아도니야와 함께 반역을 꾀했던 제사장 아비아달과 요압이 아직 살아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도니야는 왕권에 대한 미련에 제 무덤을 스스로 팠다. 밧세바를 찾아가서 다윗 말년을 시중 들었던 수넴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솔로몬에게 부탁해 달라고 한 것이다. 밧세바에게는 화평의 일로 왔고 아주 작은 부탁이라고 하며, 또 솔로몬이 왕위에 앉게 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인정하였지만 이 부탁은 삼척동자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는 왕권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 것이었다.

솔로몬은 모친 밧세바를 오른쪽에 앉히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할 심산으로)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했지만 수넴여인을 아도니야에게 주라는 밧세바의 요청에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라고 단호히 그 요청을 뿌리친다.

// 이 사건 이후로 밧세바의 이름은 솔로몬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아도니야와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다.

솔로몬은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라고 말하며 아도니야를 살려 주었다. 그러나 오늘 솔로몬은 아도니야에게서 악한 것을 본 것이다. 그 즉시 브나야를 보내 아도니야를 죽였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5 새번역]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욕심을 버려야 할 이유다. 그 어떤 욕심도 화평을 위한 것일 수 없다. 물론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고 포장 할 수 있는 거룩한 욕심도 있을 수 없다.

욕심은 죄의 씨앗이다.

왕상 2:1-12 유언

왕상 2:1-12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했다.

프롤로그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 나도 죽는다.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본론

  1. (힘써) 대장부가 되라. // 대장부라는 단어는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에 처음 ‘남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어진 구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다윗의 그늘에서 벗어나 솔로몬의 시대를 열어가라는 축복이 아닐까?
  2.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 //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법률, 계명, 율례, 증거로 기록되어 있다. 이미 주어졌다는 의미다. ‘지키라’라는 동사가 두번 반복되는데 아마도 개인적으로도 지켜야 하고 또 왕으로서 율법을 수호하라는 두가지 뜻이 있는 듯 하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축복한다. 형통에는 지혜롭게 행한다는 의미도 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라. //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다윗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다윗 가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윗은 율법의 준수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사람이 되라고 솔로몬을 축복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이루는 길이다.

에필로그

  1. 요압 //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도 다윗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다. 다윗의 누이 (혹은 여동생) 스루야의 세아들 중 한명이다. 그러니 다윗의 조카가 된다. 그는 정치적이고 권력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아브넬을 죽인 것은 동생 아사헬에 대한 복수라 하자. 이종사촌 아마사를 죽인 것은 권력욕이다. (예델은 스루야의 동생 아비가일의 남편) 다윗은 요압의 권력욕에대한 경계와 심판을 지혜롭게 하라고 당부했다. 괜히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까?
  2.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 //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풀라고 한다.
  3. 시므이 //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갈 때 다윗을 저주한 인물이다. 시므이의 이중적이 태도에 다윗이 죽이지는 않았지만 솔로몬에게는 그의 죄값도 지혜롭게 받으라고 한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순전히 다윗의 유언때문이다. ㅎㅎㅎ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 되었다. 사십년 왕으로 살았던 다윗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갔다.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다윗의 왕위에 앉았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삼하 7:12,13 새번역]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나라가 튼튼하게 세워졌다.

왕상 1:38-53

왕상 1:38-53

중요한 것은 반복해야 한다. 솔로몬의 대관식 절차는 아무리 간단하게 기술되었어도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 때, 실제 사건의 서술, 그리고 적대 세력의 보고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때 이렇게 세 번 반복된다. 재탕을 넘어 삼세번이니 확실한 사건이다.

솔로몬의 대관식에 참석한 주요 무리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추가되었다. 브나야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군대장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으로 보아 (삼하 8) 이들은 왕의 호위를 맡은 일종의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으로 피난 갔을 때도 이들은 다윗과 함께 했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보고 할 때도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을 빼지 않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의 왕위와 상징적으로 연결되는 군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여간 사병까지 모은 아도니야로부터 솔로몬을 지켜주는 일종의 안전 장치였을 것이다.

요나단은 아도니야에게 솔로몬의 대관식은 이미 끝났고 솔로몬이 이미 왕좌에 앉았다고 보고 한다. 왕의 신하들이 선왕 다윗을 축복하고 다윗왕 역시 침상에서 늙은 몸을 굽혀 솔로몬으로 자신의 왕위를 잊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한다. 자신의 왕위에 앉/을/ 자를 자기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니 자신의 왕위에 앉/은/ 자를 보았다고 기록해야 하는데…

// 왕의 신하들이 새롭게 왕위에 앉은 솔로몬을 축복한 것이 아니고 선왕 다윗을 축복하였다고 기록한 것도 새롭다. 축복은 새로운 왕이 선왕을 뛰어넘는 왕이 되기를 하나님께 바라는 내용이다.  마치 돌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부모를 축복하듯이.

요나단의 보고가 채 마치기도 전에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기 제 길로 갔다. 당연히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던 아도니야도 살 길을 찾아 제 길로 갔다.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준다. 집으로 보낸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는 우리 인생과 다르다. 누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맹세의 딸’이라고 이름한 밧세바에게도 잊혀진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 나단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다윗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단 혼자의 일이 아닌 각자 맡은 역할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반 백성들도 “솔로몬 왕 만세”로 화답하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 이유는 요나단의 보고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성읍이 진동 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45] 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선택한 것이다.

대선이 코 앞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권위를 기대한다. 국민들이 선택할 권위를 기대한다.

각기 갈 길로 갈것인가?

왕상 1:28-37 브나야

왕상 1:28-37 브나야

// 나단의 대면보고를 받은 다윗왕은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났다. 사무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었던 그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다 왕위는 대관식(사람의 추대)보다 기름부음(하나님의 선택)이 먼저다.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자신이 일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밧세바에게 네 아들 솔로몬이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맹세한 그것을 오늘 그대로 행하겠다고 다시 맹세하였다. 밧세바가 “다윗왕 만세”하고 물러났다.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군대장관) 브나야를 불렀다. 그들에게 솔로몬을 왕이 타는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데리고 가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솔로몬왕 만세”를 부른 후 왕궁으로 돌아와 왕위에 앉혀 자신을 대신하여 왕으로 모시라고 후계자 지명을 확실히 하였다.

브나야은 다윗의 후계자 지명에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니 브나야의 아멘은 다윗의 후계자 지명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지만 왕위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화답이었다.

// 다윗, 사독, 나단 이 세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에 비하면 브나야는 평신도 전문인이다.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절차를 명하자 사독이나 나단이 아닌 브나야가 화답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성경은 그를 [‘여호야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알고 계심’)의 아들 ‘브나야’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라고 반복해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직책이나 직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서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하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부터)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되는 하루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