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13:12-20] Serving and Servants

[John 13:12-20] Serving and Servants

“Do you understand what I’ve done for you?” [12]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you will be blessed if you do them.” [17]

I am the teacher, the master. You are the student, the servant. We are in different classes. We are aware of the differences in class. Did someone say ‘the student surpasses the teacher’? No, the servant cannot rise above the master, and the student cannot be higher than the teacher.

Jesus tells us this: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should also wash one another’s feet.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We need to wash ‘one another’s’ feet. We need to follow the example Jesus set. As you know, the worldly leaders oppress their people, and rulers abuse the population. But Jesus tells the disciples that this is wrong. He tells us that the powerful must serve, and the first must be last.

Jesus’ teachings turn things around. The one who serves is considered great. The servant is held in high esteem. He tells us to serve and be servants. This is what he did for us, and we must follow in his footsteps.

Perhaps we fail in this aspect because, while the word ‘serving’ holds no negative connotation, the word ‘servant’ definitely does. The former describes our actions, and the latter describes our status. Hence, we want to serve as owners, or leaders, not as servants or slaves.

But Jesus commands us, not only to serve, but to become servants. He tells us to serve (action) and be a servant (status). Merely acting like a servant is not good enough. Jesus wants us to become servants. Jesus came to Earth, prepared to die for his master. He put God the Father above him.

I dream of the heavenly feast. The feast where Jesus will serve me and look after me. Perhaps I should become a servant on this Earth.

[요13:21-30] 어둠속으로

[요13:21-30] 어둠속으로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 예수님은 심령에 괴로워 하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서로 의심하였다.[22] ‘의심하였다’라는 동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 쓰이는 단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에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에 사용된 단어와 같다. 제자들은 자신들중 하나가 누군지 궁금해서 답답했을 것이다.

요한은 당시의 사건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그 하나가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미 앞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함께해 온 제자들. 그들끼리도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관계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속은 알 수 없다.’ 내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그럼 누구지?

제자 하나는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있었다. 예수님은 그를 통하여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드러내셨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도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악역! 가룟 유다는 밖으로 나갔다. 밤이었다. 밤은 어둠을 상징한다.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다. 며칠 전 예수님은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12:36]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빛이신 예수님의 품을 떠나 어둠속으로 나갔다.

// 아론과 미리엄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미리엄이 문둥병 벌을 받았다. 모세의 중보로 바로 나음을 입었지만 미리엄은 이레 동안 진 밖에 갇혀야 했다.[민12] ‘안’이 아니라 ‘밖’에 갇혔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죄의 세상에 갇히는 것이다. 마치 자유를 향해 나가는 것 같지만 참된 자유는 진리 안에서 누리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다. 더이상 ‘절대진리’는 없다고 하면서 다를 뛰쳐 나간다. 그러나 다들 자신이 어디로 나가는지 알까? 어둠으로.

답답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예수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있는 것이 좋다.

[요13:12-20] 섬김과 종

[요13:12-20] 섬김과 종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

나는 선생이고 주인이다. 너희는 제자고 종이다. 클라스가 다르다. 우리는 클라스의 차이를 안다. 누가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종이 주인보다 클 수 없고 당연히 제자는 선생보다 높을 수 없다.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가르치신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대로 세상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 누르고 ,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큰자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종이 되어야 하다고 하셨다. (마20:25-27)

예수님의 가르침은 역설적이다.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종이 으뜸된 사람이다. 섬김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어라, 종이 되어 으뜸이 되어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행하라고 본을 보이셨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섬김’이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이 없지만 ‘종’이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자는 우리의 행동을 후자는 우리의 신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생으로, 또 주인의 신분으로 섬기길 원하지 종의 신분으로 섬기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령하신다. 시중드는 자가 되라 (행동). 종이 되라 (신분).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신분까지 변화되길 원하신다.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시중을 드신 예수님. 종처럼 행동만 하신 것이 아니다. 주인의 명령이면 죽기까지 복종해야 하는 종의 신분으로 오셨다. 이 성자 하나님을 성부하나님께서 으뜸이 되게 하셨다.

난 늘 천국잔치를 꿈꾼다. 예수님께서 허리를 동이고 나를 식탁에 앉혀주시고 시중드시는 그 잔치를. 이땅에서 내가 예수님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John 13:1-11] Unending Love

[John 13:1-11] Unending Love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1] Jesus’ love has one condition. He loves ‘his own’. He loves his sheep, the sheep he shepherds. He loves the sheep who listen to his voice and follow him. And this type of love has no end. This love is infinite, as well as eternal. What love is this?

“Like servants waiting for their master to return from a wedding banquet, so that when he comes and knocks they can immediately open the door for him. It will be good for those servants whose master finds them watching when he comes. Truly I tell you, he will dress himself to serve, will have them recline at the table and will come and wait on them.” [Luke 12:36-37]

This passage is very similar to today’s passage. In Luke, Jesus talks of the master serving in the future tense. But Jesus, in today’s bible passage, is doing just that: he is serving the disciples. The disciples were not wide awake and waiting for Jesus, yet Jesus proves his unending love by his acts of service.

Poor Judas Iscariot. He left those who would be loved until the very end. He has run away, away from the voice of the good shepherd and towards a different voice.

“Blessed is the one who does not walk in step with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that sinners take or sit in the company of mockers.” [Psalms 1:1]

Today, the Lord washes my feet. He loves me until the end.

[요 13:1-11]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11]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 예수님의 사랑에는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자기 양을 사랑하신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들을 사랑하신다. 이 사랑에는 다함이 없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의미는 무궁무진하게 사랑하신다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누가복음 12: 36, 37]

오늘 본문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종들을 시중들 것을 미래형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종인 제자들에게 그렇게 행하셨다. 제자들이 깨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증거일 것이다.

깨끗하지 않은 가롯 유다! 끝까지 사랑받아야 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안타깝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뛰쳐 나왔다. 선한 목자의 음성대신 다른 소리를 따라갔다.

그러나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시 1:1] 오늘도 주님은 말씀으로 나의 발을 씻기신다.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