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3:21-33] 메뚜기 ‘떼’

[민 13:21-33] 메뚜기 ‘떼’

부동산투어는 40일이 걸렸습니다. 오롯이 발품을 팔아 정보를 모았습니다. 모세가 명령한대로 그땅의 과일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먼저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입니다.”[27]라고 보고를 시작합니다. 시각적 효과보다 더 좋은 프레젠테이션 도구는 없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러나” 라는  부정 접속사로 그 땅을 설명합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28]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지역에 무슨 족속이 사는지 보고했습니다.

이제 보고서의 결론을 맺을 차례입니다. 갈렙이 먼저 나섰습니다. 갈렙은 우선 소동을 잠재웁니다. (두번째 보고 내용은 극히 상대적인 내용임에도 마지막에 자/극/적/인 ‘아낙자손을 보았으며’를 포함시킴으로 백성들을 두려움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 이 의견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동의 합니다.

그러나 반대가 열표였습니다. 나머지 열명은 한결같이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31] 라고 판결합니다. 그들은 반대 의견에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라고 덧붙입니다.

부정적인 의견의 말미에 아낙 자손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그것도 네피림후손, 거인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합니다.[33] 이들에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다가 올 사건입니다.

갈렙의 의견은 이렇게 묵사발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내리신 메뚜기 재앙을[출 10: 4- ] 벌써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구조사를 통하여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백성을 육십만 대군임을 알려 주셨고, 진영도 갖추게 해 주셨은데 다시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습니다. 메뚜기 한마리 한마리는 열명의 반대의사처럼 거인과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땅을 덮은 ‘메뚜기 떼’에는  애굽땅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철저하게 잊었습니다. 그 땅에서 먹었던 고기 맛은 잊지 못하면서 말이죠.

나는 작습니다. 뭐 메뚜기라 불려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메뚜기 떼’의 한마리, 한명이라는 것을 압니다. 수많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위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 선배들이 있습니다. 다들 각각 유니크 하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이들과 함께라면 메뚜기 같은 저도 하나님나라를 능히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한다고 추상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 주셨지만 하나되라고 불러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민 13:1-20] 부동산투어

[민 13:1-20] 부동산투어

오늘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2]

정탐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단서는 정탐군에서 (1) 열두지파에서 대표 각각 한사람, 2) 대표는 지도자급)  유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땅나누기 정보를 가져오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모세가 정탐군을 보내면서 알아오라고 한 내용들을[17-20] 읽어보면 꼭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동산 업자의 부탁이지요. 아마도 이 부동산 정보를 통해 각 지파로 하여금 그들이 앞으로 차지할 땅을 선택하도록 했을 겁니다.

열두명의 정탐군은 발빠르고 힘쎈 젊은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에브라임지파에서 모세에게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보낸 것으로 보아 각 지파는 이번 일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포도 한송이가 달린 가지를 두명이 들어야 했다는 것은 포동송이가 컸다는 의미도 되지만 정탐군들이 이제는 완전군장하기에는 늙었다는 뜻도 됩니다.) 이렇게 사십일을 다니면서 가나안 전체에 있는 부동산 정보를 모았습니다. 주변에 좋은 학교는 있는지, 병원은, 쇼핑몰은, 이웃들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와 체크포인트가 다르지만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은 집안 어른의 몫입니다.

내가 부모로써 정탐해야 할 곳은 어딘가요?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인지 자녀들에게 바르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미 정탐이 끝났나요? 아직 정탐중인가요? 당신이 정탐한 하나님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사시나요? 당신이 발견한 보화가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 하나님나라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사야할 보화가 뭍힌 밭이라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사야할 진주라고, 두렙돈의 과부처럼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드리고 살아가는 곳이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는?!

[민 12] 대면보고자 모세

[민 12] 대면보고자 모세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엄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

// 구스여자가 누굴까? 출애굽시 이스라엘과 함께 따라나온 이방인 여인일까? 이때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죽고 없었나? 십보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었는데… 그래서 혹자는 구스여인이 십보라일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취하였더니’ ‘취하였으므로’ 라는 동사가 반복된다. 그러니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히브리어도 배워야 하나) 사건은 미묘하게 흐른다. 민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칠십인 장로를 세우게 하셔서 모세의 일을 분담하게 했다. 그런데 모세로 하여금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워 일을 분담하게끔 조언한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십보라의 아버지 (모세의 장인) 이드로 였다. (출애굽기 18장)

2절에서 미리엄과 아론의 비방은 구스여인에서 권위문제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아론(미리엄) 집안과 모세 처가간에 권력다툼이 생겼나. 모세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장인을 돌려 보냈지만 (출 18:27) 결국 일이 터진 것인가?

모세의 온유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삼남매를 불러놓고 심판하신다. 그리고 권위의 차이가 있음을 ‘서면보고’ (환상으로, 꿈으로 은밀한 말로)와 ‘대면보고’(명백히 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거늘)의 차이로 설명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리엄의 문둥병이었다. 아마도 누나라서 대표로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론이 모세에게,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하여 문둥병이 나았다. 그러나 율법에 따라 미리엄은 이레동안  진 밖에 갇혀야 했다.

// 진 ‘밖’에 갇혔다. 보통은 안에 가두지 밖에 가두지 않는다. 안이 속박이고 밖은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주님 ‘안’에 자유가 있고 ‘밖’에 속박 (죄에게)이 있다.

미리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레동안 구름을 머물게 하셨다는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백성들이 이레동안 행진하지 않음으로 구름을 묶어 놓았을까?) 하나님께서는 때론 기다려 주신다.

내가 깨끗해 지도록, 내가 쓸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민 11:26-35] 바람

[민 11:26-35] 바람

칠십인의 노인들 중 엘닷과 메닷이 있었다. (히브리어로 이들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 과 ‘깊은 애정’이라고 한다.) 이 둘은 하나님의 영이 칠십인에게 임하였을 때 장막에 있지 않았고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둘에게도 영이 임하였고 진중에서 예언했다.

이 사실이 모세에게 전해졌다.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즉각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을 말리라고 보고하지만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백성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 모세는 문제의 본질을 알았고 여호수아는 아직 멀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만약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이 주어진다면 이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것이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 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큐빗쯤에 내리게 한지라…”[3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손이 크심을, 아니 전능하심을 보이셨다. 그당시 하룻길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사람이 모은 열호멜의 고기 양을 부피로 따지면 약 2 큐빅정도라 하니 (대충 2톤) 그 양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 31절의 ‘바람’은 모세와 칠십인 장로에게 임한 ‘영’과 같은 단어다. 하나님은 ‘영’으로 일하신다. 우리에게 ‘영’으로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 힘으로 순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의 샘이 되어야 할 그곳이 욕망의 무덤이 (기브롯 핫다아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람’이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거리와 두 큐빗쯤 높이로 충만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고기’만 보았다. 오직 ‘고기바람’만 났으니, 고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리 만무다.

당신은 무슨 바람이 났는가? 혹 춤바람 아니면 술바람

이왕이면 ‘성령의 바람’이 나면 어떨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7,18]

[민 11:16-25] ‘영’으로

[민 11:16-25] ‘영’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질릴 때까지 한달동안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토를 단다. “장정만 육십만명이나 되는 백성을 한달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요. 어림없습니다. 양과 소 떼를 잡아도, 아니 바다의 모든 물고기를 모아도 족하지 않습니다.”[21, 22]

//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애굽의 모든 지식을 다 잊어 버렸나보다. 자신들이 소유한 양과 소를 다 잡으면 부족할 수는 있어도,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아도 족하지 않다는 과장된 표현을 하다니. 쯪쯪.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라고 대꾸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손이 크신” 분이시다. 씀씀이가 후하실 뿐아니라 수단이 좋고 많다. 아니 수단이 좋고 많으신 분을 너머 “전능”하시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서의 열재양을 목격한, 아니 단순히 목격한 것이 아니라 대리자로 참여한 모세가 이것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 보다 자신의 계산이 앞섰다. 우리가 늘 범하는 잘못이다.

오늘 본문은 백성들을 불평과 원망으로 힘들어서 차라리 죽기를 구하는 [15] 모세에게 조력자 70명을 세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한다.  노인들 중 장로와 지도자가 될만한 칠십명을 모으라고 하셨다. 사실 ‘노인’과  ‘장로’는 같은 단어다. 그러니 노인 중의 노인을 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보다 젊고 힘있는  참모들을 조력자로 생각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들 칠십인인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무엇으로? ‘영’으로! 하나님의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칠십 노인들에게도 모세에게와 같이 ‘영’을 임하게 하셔서 예언하게 하셨다. ( 오래는 하게 하지 않으셨다고 끝맺는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죽음으로 면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불평과 원망을 함께 들어 줄 칠십명의 노인들을 세우셨다. 모세는 어쩌면 함께 ‘권위’로 불평과 원망을 억누를 참모들을 원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불평과 원망을 감내할 참모들을 주셨다.

사람의 손이 크면 얼마나 클까? 아무리 후하고 수단이 좋고 많아도 하나님 앞에 서면 손이 짧은 정도가 아니라 ‘마른 손’과 다름 없다. 마른 손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