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0:1-10] 은나팔 둘

[민 10:1-10] 은나팔 둘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시각적 신호만으로 온백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없다. 급한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다. 광야에서의 이동은 행진이었다. 시각적 신호외에 청각적 신호도 필요했다. (어렸을 때 조회를 마치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행진곡에 맞춰 교실로 입실했었다. 아직도 쌍독수리행진곡은 입에 맴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행진곡이 있었을까? 적어도 첫마디는 있었던 모양이다. 은나팔 둘을 만들어 불어서 행진의 신호를 삼았으니. 스피커도 없던 시절 온 회중이 성막 앞에 나왔을 때 모세가 한 말을 제일 끝에서는 어찌 들었을까? 하물며 회막 앞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각 지파의 진에 머물러 있을때야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기는 불가능 했으리라. 그래서 은나팔 두개로 요즘으로 하면 싸이렌을 울렸다.

은나팔 두개는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솔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9절 10절에 반전이 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지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고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은나팔 두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하고 찬양하는) 수단이었다.

내가 (우리가) 따라야 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내가 (우리가) 의지하고 찬양해야 할 분도 하나님이시다.

[민 9:15-23] 머물고 행진하기

[민 9:15-23] 머물고 행진하기

일생이 편하려면 남자들은 엄마와 아내와 네비게이션한테 꼭 순종해야 한다고 한다. 엥~~~ 영생이 편하려면  (영생을 누리려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가시적이기도 했다.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모양으로. 초막들이 즐비한 진영 한 가운데 웅장한? 회막이 있고 그 위에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었다. 동남서북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막을 롯데월드는 없었다.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어나면 진영 중앙에 있는 회막쪽을 바라 보았을 것이다.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준비를 해야했으니깐. 하루 일과의 시작은 회막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장의 명령을 기다리는 군사와 같이. 주목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이 있어도 아침마다 그들의 눈은 대장을 향했을 것이다. 직속상관이 아니라 제일 윗선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명령을 따라 진을 치고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명령을 따라…

하나님은 명령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종으로 (지켰더라로) 화답한다.

알지 못하는 땅, 그러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에는 구름기둥 불기둥 네비게이션이 필요했다. 단순히 지도안내가 아니라 교통흐름까지 알려준다. 한번도 가 본 길이 아니라서 절대순종이 요구되는 길이다.

(그러나) 머물고 떠나는 것은 가시적 명령에 따랐지만 광야 생활은 주어진 율법을 준행하는 삶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삶이라기 보다 약속의 땅에서 사는 삶이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법에 순종하는 삶이다.

개인적 성별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구름과 불기둥이 있어서 모두가 바라보고 움직였으면 좋겠다.

[민 9:1-14] 발렌타인데이

[민 9:1-14] 발렌타인데이

유대인의 달력은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성경에서도 모세오경과 포로기이후 달 이름들이 다양하다. 종교력과 민간력의 첫달도 다르다.  종교적으로 출애굽하면서 오늘날의 3,4월에 걸쳐있는 니산월이 첫달이 되었다. 그리고 이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지 등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부정해진 사람들은 유월절에 참여할 수 없었다. 첫 유월절(출 12)에는 없었던 규정이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고 난 후에는 시체를 만지고 부정하게 된 자들은 정결의식을 통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져야 했다. 그러니 정결케 되기까지 유월절 헌물을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 하나님께서는 발렌타인데이를 지정하셨다. 둘째달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유대력 2월 14일, 외우기 쉽게 발렌타인데이)  유월절은 하나님의 백성이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절기다.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가 동일하다고 한다. 소수를 위한 보충 유월절이지만 본 유월절의 규례를 간소화하지 않았다. 모든 율례대로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땜빵이 아니었다.

// 첫 유월절에도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출 12:49]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첫 유월절 규례에서는 이방인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출 12:43,44,45) 참석을 원하는 이방인은 할례를 받고 본토인과 같이 된 후에야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선행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광야에서도 이 조건이 적용되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한달  후 보충 유월절을 지정하셨다.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보충 유월절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을까? 구약의 유월절 규례는 삼진아웃이 아니라 이진아웃이다. 한번의 기회는 더 있을지 몰라도 삼세번은 아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발렌타인데이도 필요없다. 대신 매일 매일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살아야 한다. (고전 5:7)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정결해야 한다.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

내가 깨끗해서 거룩하다 인정받는 게 아니라 거룩하다 하시니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민 8:1-26] 보청기와 은퇴

[민 8:1-26] 보청기와 은퇴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에 대한 정결의식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정결의식의 핵심은 레위인이라 하더라도 죄에서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외적으로도 옷을 빨고) 또 아론 (제사장)을 통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옷을 단정히 입어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앞에 나갈 수 없다.

레위인정결의식이 레위인 회막에서 일할  인구조사( 4장) 보다 먼저인지 나중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여기서 다른 것은 회막에서 일할 나이를 다섯살 어리게 기록한다는 것이다. 서른에서 스물다섯으로. 솔로몬때로 가면 스무살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의 나이가 더  낮아진다. (민수기 4장과 이곳 8장사이에는 역사적 간격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는 봉사의 나이가 아니라 봉사 인원이 중요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좀 더 어린 나이의 레위인도 회막일 (혹은 관련된 일)에 참여 시켰을 것이다.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의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돕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 할 것이라.”[25, 26]

그런데 은퇴 나이는 구약에서 일관되게 쉰살로 규정하고 있다. 오십세. 주로 육체적 노동으로 회막일을 지원하던 레위인들에게 있어서 적당한 나이일지 모른다. 이때쯤되면 제사장의 지시를 들을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자신만의 노하후로도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힘에 겨울뿐. 그러나 회막일은 끝까지 제사장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일이다.

지금으로 하면 몇살 일까? 일흔? 하여간 은퇴후에는 돕되 일하지 말라고 한다. 도와라 그러나 일하지는 말아라.   선임자나 연장자는 자신의 경험과 경륜으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후임자나  젊은이들을 막아서는 안된다. 다만 하나님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늙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 들을까?

눈과 달리 사람의 귀가 어두워 지는 것을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주위는 안다고 한다. 영적인 귀가 어두워 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보청기가 필요하다면 은퇴해야 한다. (좋은 보청기가 많다고 하지 말자 24시간 끼고 살것도 아니면서.) 오히려 영적인 보청기는 신실한 믿음의 후배요 자녀다.

 

[민 7:12-89] 그분 목소리

[민 7:12-89] 그분 목소리

// 회막을 봉헌하면서 열두지파 지도자들이 제단헌물을 하루에 한 지파씩 드렸다. 드린 헌물은 열두날 동안 똑 같았다. 그런데 모세는 각 지파가 드린 예물을 일일이 반복하여 기록했다. 현대인의 성경은 반복해서 기록하지 않고 (몇절과 같음) 이라고 기록한다. 헌물을 드린 순서는 진영배치의 동남서북 순서와 같다. 열두날 동안 반복된 헌물에 차이가 없음은 84-88절에서 합산해서 정리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껫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89]

말하러 들어간 사람은 모세다. 그런데 실제로 말을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모세와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가 화자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청자인지 명확히 밝혀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도하러 (하나님께 뭔가 말하려 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내말만 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ㅠㅠ. 때론 나의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러니 결혼하라. 아내에게는 남편이 남편에게는 아내가 그런 좋은 친구다. 물론 하나님께도 넋두리를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다. 때론 오늘 본문처럼 길고 질리도록 반복되지만 들어야 한다.

나는 선한목자의 목소리를 아는가?

// 목소리를 모른다면 수화기를 냉큼 내려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