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7:1-11] 기름을 발라

[민 7:1-11] 기름을 발라

장막이 세워지자 모세는 장막과 장막안의 모든 기구와 제단과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때 하는 의식이다. 기름을 부음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물건의 권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낸다.

기름부음을 받은 장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이곳에 열두지파의 대표들이 헌물을 드렸다. 여섯대의 수레와 열두마리의 소.

하나님께서는 이 헌물을 레위인들에게 주어 회막에서 봉사할 때 사용하라고 하셨다. 가장 무거운 것을 나르는 므라리 자손에게 수레 넷과 여덟마리의 소를 그리고 게르손 자손에게 나머지 두대의 수레와  네마리의 소를 주었다. 성소의 기물을 어깨로 메어 나르는 고핫 자손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은 철저하게 직무에 따라 레위인에게 주어졌다. 장유유서의 서열도 아니고 하는 직무의 중요성?에 따르지도 않았다. 직함이 아닌 직무의 필요성에 따라 주어졌다.

우리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요일 2:27]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기름부음으로 거룩해 졌다. 우리의 권위가 기름을 부으신 주께 있다. 나의 거룩함은 기름부음이 가르쳐주신 대로 주안에 거하므로 유지된다. 외적으로는 내가 (우리가) 의를 행하므로 내가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된다.

나에게 무슨 은사가 주어졌는가? 나에게 주어진 은사도 장유유서의 질서나 나의 직함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위해 주어졌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때론 차별적으로.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이 나안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 거하는 것이다.

 

 

[민6:13-27] 내면적 나실인

[민6:13-27] 내면적 나실인

헌신의 마침은 축복이다. 개인적 축복이 아니라 공동체적 축복이다.

나실인은 서원으로 시작하고 제사로 마친다. 종결에 관한 법이 더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20] 한시적 나실인은 서원 기한이 차면 나실인 종결 각종 제사를 드려야 했다. 마지막이 화목제사다. 그 는 머리를 깎고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헌신은 헌물과 종결의식을 행함으로 마무리 된다. 법에 명시한 것은 기본이고 힘이 미치는 대로 하라고 한다.[21] 머리도 깎았고 포도주도 마셔도 되지만, 즉 더이상 외형적 나실인은 아니지만 내면적 나실인이 된 것이다.

// 하나님은 나에게도 거룩하라 하신다. 구별된 삶을 살라고 하신다.

그래서인가?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사장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신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은혜와 평강!

[민 6:1-12] 헌신

[민 6:1-12] 헌신

헌신은 “부정에서 떠나” 구별되는 것이다. 성경은 부정에서 떠나 구별된 사람을 ‘나실인’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셔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운 것도 어쩌면 이 단어와 관계있을 것이다.

나실인이 특별히 하지 말아야 할 것 세가지가 있다. 술과 이발과 시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 술은 성령이 계실 곳을 차지한다. 헌신하는 동안은 포도주뿐 아니라 포도즙도 생포도도 건포도도 먹지말라고 한다. 심지어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도 먹지말라고 명하신다. (성찬식때 포도주 대신 포도주스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은…) 하여간 술취하지 말라라는 명령은 내적으로 채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 머리는 권세를 뜻한다. 히브리어 구별하다는 단어의 명사형인 네제르에는 화관(왕관)이라는 뜻도 있다. (‘서원’, ‘구별’, ‘구별하다’ 히브리어로 다 비슷비슷한 단어인 듯.) 그러니 머리를 깎지 말라는 명령은 헌신한 자의 머리, 즉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외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7]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 9:60] 세번째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시체는 ‘죽은 생명체’이다. 생명은 죽음과 함께 할 수 없다. 헌신은 내적으로는 성령충만이요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드러내는 삶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는 삶이다.

헌신의 삶은 부지간에 무효가 될 수 있다. 내가 검댕이를 멀리해도 검댕이가 내게 달려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헌신의 삶이 무효가 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헌신을 새로 정하면 된다.[12] 일곱째 되는 날, 주일마다 정결케 하자. 작심삼일이 아니라 매일결심을 하면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이땅에서도 매일 부활의 삶을 살았던 바울 사도의 고백이다.

이땅에서 죽지 않으면 부활을 어찌 경험할 것인가?

[민 5:11-31] 의심의 법

[민 5:11-31] 의심의 법

공동체를 허무는 것은 내분이다. 그래서 내분의 원인을 제거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 그것도 부부관계이다. 따라서 “의심의 법”은[29,30] 부부간의 분열을 해소해 주는 법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정결케 하는 법이다.

아내의 성적일탈도 죄요, 남편의 의처증도 가정을 분열시키는 죄다.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한 법이 의심의 법이다. 제사장이 법대로 진행하면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31]

아내는 결백을 입증받든, 법에 따른 저주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더 이상 의처증의 죄에 머물지 않게 된다. 결백한 아내의 경우 임신으로 보상 받는다.

// 그럼 의부증이 있는 가정은?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마5:28 새번역] – 남자들이여 쓴물을 아멘 아멘하고 들이킬 자신이 있는가?

부부간에는 부정 행위도 없어야 하고 의심도 없어야 한다.

[민 5:1-10] 안과 밖

[민 5:1-10] 안과 밖

진영 안과 밖의 차이는 무엇일까? 안은 중심이 있고 밖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영 가운데에 거하셨다.[2] 이때 가운데라는 단어는 단순히 안 (in) 이라는 의미보다는 중심(centre)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포함하는 것 같다. 진영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회막을 중심으로 배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영 밖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닿지 않는 곳은 아니니다. 그러나 통치의 대상인 그의 백성이 머무는 곳이 진영(안)이다. 안과 밖의 차이는 통치를 받는 백성이 머물러야 할 곳과 머물러서는 안되는 곳의 차이다.

그런데 백성중에서 진영 밖으로 내보내야 되는 자들이 있었다. 나병환자, 유출증 환자,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부정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한 대상인데 진영밖으로 내보내 졌다는 사실은 나를 암울하게 한다. 저들이 뭘 잘 못했단 말인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나름 이해한다면 저들은 진영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군사로 계수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레위인이었다면 회막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광야 공동체는 진영이라는 ‘군사적’공동체 였고 저들은 그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방해가 되는 환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 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 거하느니라.”[3]

// 처음으로 ‘여’자가 언급되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건지 아닌지는 내 삶에 중심이 있는 지 없는 지로 판가름 난다. 중심없이 사는 사람은 진영 밖에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으니 하나님나라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진영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내 삶의 중심이시다. 구별되게 살아야 할 이유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영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지경을 넓히라는 것이다. 밧줄을 중심과 내 허리에 동이고 나가야 한다.

진영 밖 사람들에게도 중심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