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4:34-49] 3050

[민 4:34-49] 3050

레위인 중 회막일에 참여할 인구를 조사하였다.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이번에는 장유유서의 순서가 아니라 회막 가장 안쪽에서 성소의 물건을 다루는 고핫자손부터 계수하니 총 2750명이었다. 회막 덮개 등을 운반하는 게르손 자손은 총 2630명, 마지막으로 회막 기둥 등을 운반하는 므라리 자손이 총 3200명이었다. 그래서 모두 8580명이었다. 일개월 이상 레위인의 약 40%에 해당한다. 눈에 띄는 것은 므라리 자손은 절반이상이 3050에 속한다는 것이다. 음

오늘날 경제활동인구는 보통 만 14세부터로 본다. 유대인은 만 13세 (혹은 12세)부터 성인 대우를 한다. 물론 이 유대 전통은 14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니 구약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도 다른 지파의 군복무 나이를 스물이라고 했으니 레위인들이 직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파의 젊은이들보다 십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십년을 더 기다린다고 해서 그동안 취업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자신의 직무는 결정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입사후 보직이 주어진 후에도 실제 일에 투입되는 것은 10년차라는 거다. 오매~~

하나님의 일은 창의성보다는 순종을 요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직무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소경놀이의 술래가 되라는 것이다.

[민 4:1-33] 소경놀이

[민 4:1-33] 소경놀이

어릴 때 소경놀이를 해 보았을 것이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무엇을 찾거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놀이다. 술래가 눈을 가리면 주위에서 말로 소리로 술래를 인도한다.

오늘 본문 회막을 옮기는 일은 소경놀이와 비슷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술래의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 물건을 덮고 여러 술래들을 (고핫 자손) 제사장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 지시한다는 것이다. (쓰고 보니 많이 다르다.)

회막을 옮길 때 성소안과 성소안의 물건은 보아서도[20] 안되고 만져서도[15] 안된다. 이 직무를 담당한 고핫 자손은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의 지시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내 뜻과 내 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불순종의 댓가는 죽음이다.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회막의 다른 부분들을 옮기는 직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핫 자손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 그 자체다.

서른부터 쉰살. 레위인들은 서른이 되기까지 뭘했을까? 자기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취준생의 고뇌는 없었겠지만 혈기왕성한 이십대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하면 답이 없기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쉰이면 정년퇴임이다. 그렇다. 인생의 황금기가 직무를 담당할 시기다. 젊음의 어설픔이나 장년의 완숙함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거나 지나치다.

술래. 오늘날로 하면 순찰병이다. 병이면 지휘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면 술래나 (레위인) 지휘관 (제사장) 모두 소경놀이의 술래가 된다.

[민 3:40-51] 돈으로 대신

[민 3:40-51] 돈으로 대신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은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출 13:1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것을 세라고 하신다. 태어난지 한달이 넘은 장자의 수가 22273명이다. 장자대신 레위인을 자신의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제 계수한 레위인 수는 22000명이니 장자수가 273명이 더 많다. 그래서 레위인으로 대신할 수 없는 273명 분은 돈으로 내라고 하셨다.

// 레위인 수는 게르손(7500), 고핫(8600), 므라리(6200) 다 합하여 22300 명인데 정작 합산하여 22000 명으로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고핫자손의 수 8600명은 8300명을 잘 못 받아 적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론집안 300명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무리 주석을 뒤지며 따져보았자 정답은 모른다. 그냥 번역된 성경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속전(돈으로 대신함)은 한명당 5세겔씩 총 1365세겔이다. 세겔단위도 일반 세겔과 성소 세겔이 달랐나보다. 성소세겔로 하라고 하신다. (주석에 의하면 성소 세겔이 더 가치가 낮은 것으로 나온다.) 어떤면에서 백성에게 부담이 덜되는 쪽으로 적용했다고 할까? 그리고 이 속전의 금액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아 앞에서 언급한 300명의 차이가 아론집안 300명 제외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 속전을 내는 273명은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은 제비 22273개를 만들고 그중 273개에는 꽝을 넣어 꽝을 뽑은 장자들이 속전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민수기의 첫부분은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령대로 하였다로 끝난다.

하여간 오늘도 명령대로…

[민 3:14-39] 명령을 따라

[민 3:14-39]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내것’이라고 구별하셨다.[12] 이 레위인도 인구조사를 하라고 하신다. 레위에게는 게르손, 고핫, 그리고 므라리 세명의 아들이 있었다. 출애굽기를 통해 아론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장유유서’의 질서를 적용하지 않으셨다. 고핫사람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의 지휘관으로 임명받은 사람도 웃시엘의 (고핫의 네번째 아들) 아들 엘리사반이었다. 레위인 전체를 통솔할 책임자로 아론의 세째아들 (두 형이 죽었으므로 장자가 된) 엘르아살이 임명되었다.

레위인들도 성막주위를 배치되었고 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모두 거룩한 일이었다. 구별된 일이다. 따라서 외인이 가까이 할 수 없다.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38] 어제는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라는 다소 완곡한 표현이었는데 오늘은 정결케 하는 책임이 레위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같은 표현 다른 번역일수도 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계수된다. 하나님의 아신바 된다. 마치 선한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아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몰라서 세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합지졸의 백성들을,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을 잘 훈련된 군대로 바꿔가시는 하나님의 인원점검이다. 하나님나라 군대의 제식훈련이다.

명령을 따라 레위인을 계수하니 이만 이천명이었다.

[민 3:1-13] 다른 불

[민 3:1-13] 다른 불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그리고 이다말이다. 그런데 장자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하루 아침에 넘버2와 넘버 3가 죽었다.[4] //아론이 넘버1

아론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3]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에서 일을 하는 레위인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다.[8] 내 (하나님) 것이라고 구별하신 레위인을 맡은 집안이다.[12]

이런 아론의 집안이라도 외인이 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명령에 예외가 될 수 없다. [10] 넘버 2 나답과 넘버 3 아비후가 죽었다.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다. 이때 사용된 ‘다른’ 이라는 단어와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에 사용된 ‘외인’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라고 한다.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결국 ‘외인’이 가까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간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불과 ‘외인’은 다 부정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각각 성령을 속이다가 죽은 사건을 알고 있다. [행 5]

하나님 앞에 뭔가 감춘 것이 있다면 (불가능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외인’이라고 하신다. ‘외인’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 아니 하고자 하여도 죽게 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세상 사람들로부터 ‘뭔가 달라’라고 평가 받는 것은 괜찮으나 하나님께서 ‘외인’이라고 판단하시면 나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