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30-10:13

로마서 9:30-10:13 (공동번역)

하느님께서 자비를 담을 그릇으로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만드셨다. 30 이방인들이 오히려 믿음에서 난 의를 얻었다.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법을 추구했지만 끝내 그 법을 찾지 못했다. 32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공로를 쌓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겠다는 것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33 성서에 있는 [자 이제 내가 걸림돌 하나를 시온에 놓으리니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바윗돌이라.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하는 말씀대로다.
10:1 바울은 여전히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며 하느님께 간구한다. 2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열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열성이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서 문제다. 3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놓아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4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5 모세는 율법을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율법을 잘 지키면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6-7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얻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그리스도를 모셔오기 위해 우리가 저 높은 하늘까지 올라가야 하거나 땅 속까지 내려가야 할 필요는 없다. 8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음의 말씀이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다. 9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 11 성서에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다. 12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구별이 없다. 주님께서 만민의 주님이 되시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신다.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이 있다.

로마서 9:30-10:13
//하나님의 자비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유대인과 이방인에 차별이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부활하신 주님으로 나의 마음에 모시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 믿음은 나의 의지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놓게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율법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놓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율법주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구원의 실천이지, 말로 고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를 주님으로,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으로 마음에 모시고 순종(충성)의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 만약 자기 공로를 가지고 주여 주여 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했다며 자랑스럽게 주님 앞에 아는 체하고 나아갔는데, 주님이 그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면 그들에게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있을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 길을 가야한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유일한 길이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다.

로마서 9:14-29

로마서 9:14-29(공동번역)

14-16 하느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사오는 미워하였다면 하느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을 동정하신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고는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덜려 있다. 17-18 성서에는 하느님께서 파라오를 왕으러 세우신 것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하신다. 19-20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으니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하느님께 따질 수 있들까? 이것은 물건이 만든 사람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따지는 꼴이다. 21 옹기장이가 같은 진흙을 가지고 하나는 비싼 그릇을 다른 하나는 값싼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을까? 22 하느님께서는 진노와 권능으로 당장 부수어 버려야 할 진노의 그릇을 부수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참아 주셨다. 23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셔서 하느님의 영광을 담을 자비의 그릇을 만드셨다. 24 그 자비의 그릇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우리들 가운데는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있다. 25-26 호세아서에는 [내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겠고 내 사랑을 받지 못하던 백성을 내 사랑하는 백성이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리라] 라는 말씀이 있고 27-29 이사야서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 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고, 전능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주시지 않았던들 우리는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요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다. 주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신속히 그리고 엄격히 이 세상에서 다 이루시리는 말씀이 있다. 

로마서 9:14-29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기 원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담을 자비의 그릇을 만드셨는데, 이 자비의 그릇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다. 우리가 담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자비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자비의 그릇으로 만드셨다면 우리도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동번역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들이 자비를 입을 것이다 하고 번역한다.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성도 되었다는 증거다. 어제 주일 예배의 말씀도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교훈했다. 우선은 교회 안에서부터, 그리고 불신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자비의 그릇으로 살라고 하신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행복하다. 자비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모시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값비싼 그릇으로 빚어지지 않았어도, 값싼 질그릇이어도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주께서 사용하신다. 주님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시는 도구로 사용하소서.

로마서 9:1-13

로마서 9:1-13 (공동번역)

1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양심에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2 이런 바울에게도 큰 슬픔과 번민이 있다.  3 자기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동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4 바울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느님과 맺은 언약이 있다. 율법과 참된 예배와 약속이 있다. 5 유다인들은 훌륭한 조상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이스라엘 혈통으로 나셨다.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 6-7 하느님의 약속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며,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모두 아브라함의 자녀는 아니다. 이사악의 혈통을 이은 자만 아브라함의 자녀다. 8 육정의 자녀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약속의 자녀만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받는다. 9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낳은 아들이 약속의 아들이다. 10-13리브가가 낳은 두 아들의 경우에도 하느님은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야곱과 에서의 선행과 무관하게 하느님의 뜻대로 불러주신다. 이 원리대로하느님의 계획을 이루신다. 야곱을 사랑하신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9:1-13

//동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다고 말하는 바울. 물론 동족을 위한다는 것은 동족의 구원이지 동족이 원하는 바를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쉽지 않은 고백이다. 출애굽기 32:30-32에 보면 모세도 불순종의 동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간구했었다. 이들의 고백과 간구는 자신의 생명(구원)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함과 같다고나 할까? 우리 주 예수께서 가신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에 더 큰 열심을 내는 것 같다. 그러나 죽은 것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 목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우리의 선행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대로 불러주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전혀 없는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우리에게도 미래의 구원을 이루는 일이 남아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8:31-39

로마서 8:31-39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다. 그러니
31 무슨 말을 더할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였으니 누가 우리와 맞설 수 있을까?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이다. 33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할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다. 34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실?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단죄 하지 않으시고 변호)해 주신다.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을까?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36 성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매일 하느님을 위해 죽어가는 존재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를 받는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남는다. 38 바울은 확신한다. (나도 확신한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

로마서8:31-39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다. 우리를 위하신다. 우리를 응원하신다. 우리 인생길이 마라톤이요 장애물 경주라도 완주하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 몫도 있다. 우리가 달려야 한다. 성령의 법대로 일어서 가야한다. 그냥 주저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그냥 확신에 찬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확신한다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내하는 것은 필수다. 환난을 인내하고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참여해야 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성도는 매일 죽어가는 존재요 천대받는 존재로 살아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18-30

로마서 8:18-30 (공동번역)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소망으로 산다.) 18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19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20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희망이 있다. 21 피조물들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이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오늘날까지 다 함게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23 피조물만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다. 24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다. 눈에 보니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이다. 26 성령께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다 할 수 없을 깊은 탄식으로 하느님께 간구해 주신다. 27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신다. 그리고 마음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신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9 하느님게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다. 30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다.

로마서 8:18-30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였다면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환난을 당하지만, 인내와 연단을 거처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삼위 하나님과 기뻐하고 즐거워 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은 지금 당하는 고난/고통/환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감내하고도 남는다. 아니 환난을 (돈 주고) 사서라도 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도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제야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제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도가 간구해야 할 기도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따라 헛된 것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 주시도록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것이 우리를 통해 이뤄지기를 간구해야 한다. ////성령께서 내게서 떠나지 않기를 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28절 비유적 적용. 그냥 운전 중 빨간불 신호대기 경우를 생각하자. 내가 가는 방향은 막히지만, 대신 다른 방향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이때를 틈타 각자의 방향으로 잘도 지나간다. 이렇듯 나의 길을 막는 빨간불(고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파란불(평안)이 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하면 이상한가? 나만 독주하면 인생이라면 사회 전체의 신호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땐 고난을 사서라도 해야 한다. 우선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공동체가 바르게 돌아간다. 나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나 간선도로만 달릴 순 없다. 지선이나 골목길도 지나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기자가 노래하듯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다.) 우리 인생의 신호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