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 (1-11)

일곱째 나팔이 울리기 전 무대가 회전한다.

1-4 힘 센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주님의 재림을 연상하게 한다) 요한은 힘 센 천사 머리 위에 무지개가 (약속/언약)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변화산상의 모습같기도 하고) 그 발은 불기둥 같다고 묘사한다. (죄가 전혀 없으시다는 뜻이 아닐까?) 힘 센 천사의 손에는 봉인되지 않은 작은 두루마리를 (곧 말씀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그 왼발은 땅을 밟았다고 한다. (피조세계를 다스리신다.) 이 힘센 천사가 사자가 포효하듯 큰 소리로 외치셨는데 일곱 우레가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고 한다. 요한은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그 말씀을 기록하려고 했으나 하늘에서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기록하지 말라는 소리가 났다.

5-7 요한은 일곱 우레 기록을 하지 않고 다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를 본다. 천사는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창조주를 가리키며 지체하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한다. (무엇을 지체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인지?)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진다고 하신다. // 하나님의 그 비밀이 무엇일까? 분위기 상은 주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8-11 하늘에서 같은 음성이 또 요한에게 들린다. 요한에게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고 하신다. 요한이 천사에게 작은 두루마리를 요청하자 천사는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버리라고 요한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겠다고 덧붙이신다. 요한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먹어버렸다. 정말로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에 요한의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작은 두루마리를 준 천사가 요한에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야)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두번째 ‘화’와 마지막 세번째 ‘화’ 사이에 작은 두루마리를 가진 힘 센 천사 환상을 본다. 여섯째 나팔에 두번째 화가 미쳤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재앙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없었다.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필요하다고 적용했는데, 사랑은 말씀을 순종할 때 그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말씀의 주이신 예수님이 힘 센 천사로 등장하신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일곱 우레 소리를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서로 사랑하라’ 라는 새계명은,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때 이미 하신 말씀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천사가 들고 있는 작은 두루마리는 어쩌면 이미 주어진 말씀이요, 이 말씀을 먹고 소화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믿음의 지도자들이고 이 말씀을 전해듣고 진실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 성도들이라고 적용해 본다. 말씀은 정말 우리 귀에는 주옥같고, 입에는 달다. 그러나 듣고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은 정말 쓰다. 요한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하신다. 우리에게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일곱 우레가 무엇인지, 새로운 말씀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보다 주어진 말씀에 신실하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9:13-21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은 분다. 나팔소리가 나자, 하나님 앞 금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 하늘보좌 금제단은 순교자들의 기도가 드려지는 곳이다. 다시말해 한 음성은 순교자들의 기도와 성도들의 기도 그리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이들을 위해 간구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14 음성은 여섯째 나팔을 분 천사에게 말했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 이 네천사는  여섯번째 인을 떼었을 때 성령의 바람을 멈추려 했던 그 네천사가 아닐까?

15 네 천사가 놓였다. 네 천사를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일 권세를 허락받는 자들이라고 한다. // 요한은 네 천사가 언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일지 구체적인 년월일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다만 타락한 네 천사라도 스스로는 사람을 죽일 권세는 없다는 것이다. 허락을 받아야 한다.

16 네 천사만이 아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라고 한다. // 2억. 다섯째 나팔이 울렸을 때 무저갱에서 (은밀하게?) 나온 황충과 달리, 큰 유브라데 강, 다시말해 세상 문명의 한 복판에서 세력을 잡은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이 아닐까?

17-19 마병에 대한 좀더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다섯째 나팔이 불렸을 때의 황충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들의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왔다. 불과 연기와 유황을 세 재앙이라고 한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황충처럼 이들의 힘은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도 있다. 꼬리는 뱀같고 꼬리에도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사람을 해칠 것이라고 한다. // 황충처럼 은밀하게 독을 쏘지 않는다. 대놓고 독을 쏘고 독니로 문다.

20 그런데 살아남은 삼분의 이 사람들이, 재앙을 보았으면서도 자신들의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여전히 절하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재앙/재난이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혜가 필요한 이유다. 역으로 말하면 재앙이 아니라 성도들의 사랑이야 말로 사람들을 회개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의 병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라.

요한계시록 9:1-12

1 다섯번째 천사가 나팔은 분다. 그러자 하늘에서 땅으로 별이 하난 떨어졌다. 별을 의인화한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한다. // 교회에서 많이 듣던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타락한 천사로 이해하자.

2,3 그가 무저갱을 열자 무저갱에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같은 연기가 올라와 햋빛을 가려 주위가 어두워졌다. 그 어둠가운데 황충이 땅위로 나왔는데 (한마리가 아닌 여러마리?)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다고 한다. // 연기같은 연기, 권세와 같은 권세. 반복은 강조를 뜻할 것이다.

4 황충이 받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는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칠 수 없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할 수 있는 권세라고 한다. //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이 결국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복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5,6 하나님은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죽이지는 말라고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신다. 그 괴롭게 함이 전갈에게 쏘였을 때와 같이 괴롭게 함과 같다고 하신다. 얼마나 괴로우면  사람들이 차라리 죽기를 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죽지 못하고 죽고 싶어도 오히려 죽음이 그들을 피할 것이라고 하신다. // 죽이고 살리고는 오직 주님의 권한이다. 다섯달의 기간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반년이 채 안되는 기간이지만 충분히 긴 시간을 의미하나?

7-10 요한은 황충들을 묘사한다. 가장먼저 황충/메뚜기은 전투준비가 된 마병 같다고 한다. (오합지졸이 아니라 체계적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다.) 머리에는 금면류관과 같은 것을 썼다고 한다. (생명의 면류관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다. 그럴싸한 사이비랄까)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악마가 아니라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이빨은 사자의 이빨과 같았다고 한다. (갈기 있는 숫사자와 같이 권세있는 자 처럼?) 그리고 쇠로된 갑옷으로 가슴을 보호하고 갑옷의 비늘은 날개치는 소리를 내어 병거를 타고 달릴 때 굉음을 내었다고 한다. (제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과 같은 꼬리와 그 꼬리에 (독)침이 달려 있었고 그 독은 다섯달 동안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11,12 이 메뚜기(황충) 군단에게 왕이 있는데, 메뚜기들이 나온 무저갱의 사자로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 헬라어로 아볼루온, 곧 파괴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아직도 ‘화’ 둘이 남았다고 한다.

// 다섯번째 나팔부터 본격적인 ‘화’, 곧 재앙이 시작된다. 이전 것들은 재앙이라기 보다 재해라고 보는 것이 더 낫겠다. 하여간 재앙은 무저갱의 파괴자에 의해 치밀하게 훈련된 황충들에 의해 진행된다. (무저갱의 왕을 파괴자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과 얼마나 대조되는가?) 황충들은 일사불란하게, 친숙하게, 위엄있게 행동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맹독을 품은 꽃뱀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은 황충의 공격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이 재앙은 불신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다섯달 동안 죽을 정도로 괴롭게 함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최소한 생명은 보존되니 이게 어디랴? 할 수 있겠지만 화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증거는 앞에 순교자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일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날 심판대에서 살아 남을 유일한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증거다.

요한계시록 8 (1-13)

1 일곱째 인을 떼신다. (물론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떼신다.) 일곱째 인을 뗐는데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했다고 한다. // 폭풍전야라고나 할까? 한시간이 아니라 반시간쯤이라는 표현에서 뭔가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2 요한은 하나님 앞에 일곱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는 것을 본다. // 폭풍전야가 아니라 전쟁전야인가? 나팔은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 전장에 나갈 때 천군의 대장되신 주님이 명령을 전달하는 도구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3-5 나팔 전달식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는데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제단에 드려질 것이라고 한다. 향연은 성도의 기도라고 하나님 앞에 올려진다고 한다. 천사가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자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다. // 다섯째 인을 떼었을 때 본 순교자들이 연상되는 구절이다. 순교자의 수가 드디어 채워진 것일까? 또 바울이 말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연상된다. 폭풍전야, 전쟁전야지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바울이 인용한 우리가 종일 주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는 말씀이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한다. // 삼위 하나님이 지휘자다.

7-12 첫째 천사가 나팔은 분다. 피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져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다. 둘째 천사의 나팔소리에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졌다. 셋째 천사의 나팔소리에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아마도 민물)의 삼분의 일이 마실 수 없는 쓴 물이 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넷째 천사의 나팔소리에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져 낮과 밤의 삼분의 일도 빛이 없는 암흑이 되었다.

13 이때 요한은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의 소리를 듣는다. (하늘 보좌 주위에 있던 네 동물중 독수리 모양의 동물인가?) 독수리는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 환난은 이어진다. 땅과 바다, 하늘과 우주 어느곳 하나 재앙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다만 아직까지는 삼분의 일, 곧 전부가 아닌 일부다. 그러나 인내하고 연단을 통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화/화/화, 곧 세번의 나팔 소리가 남아 있다고 하신다. ‘화’는 불신자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자들에게는 ‘환난’으로 (박해로)  임하지 않을까?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본다. 그렇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넉넉히 이길 ‘화’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7 (1-17)

여섯째 인까지 뗀 결론은 진노의 큰 날에 과연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만 남는다. 물론 다섯째 인을 떼었을 때 보았던 천상의 순교자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있는 성도들은…

1 우주적인 재앙이 있은 후, , 요한는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것을 본다. 네 천사는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땅과 바다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한다. 바람이 없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성령께서 더 이상 역사하시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성령이 천사보다 약해서는 아닐 것이다.)

2-8 또 다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뜨는 데로부터 올라와 땅과  바다에 바람을 붙잡아 맨 네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꾸짖는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인치심이 계속된다고 하신다.) 요한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듣는다. 이스라엘 자손 각 지파 중에서 일만 이천씩 총 십사만 사천이나 되었다. 출애굽한 60여만의 이스라엘 자손에 비하면 훨씬 적은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상징성을 볼 때 12의 제곱과 10의 세제곱을 곱한 값이다. 다시말하면 충만한 수라는 것이다. // 우주적인 재앙으로 성령의 역사마저 중단되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까지 구원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럼 네 천사는 타락한 천사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9-10 환상 화면이 다시 바뀐다.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온 것을 본다. 셀 수 없는 큰 무리.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은 온 열방에서 인침을 받은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이긴 자들이다.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떼창을 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습니다.” 천상 예배찬양의 핵심이다.

11,12 모든 천사가 보좌의 장로들과 네 생물 주위에 서 있다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떼창에 동참한다. 이들도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5장에서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시작한 경배와 찬양이 모든 천사들로 그리고 온피조물의 떼창으로 퍼져나갔다면 이번 7장에서는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떼창에서부터 모든 천사의 찬송으로 다시 모아진다.

13-17 장로 중 한명이 요한에게 이 흰옷입은 자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요한은 자신은 모르지만 주님은 아신다고 대답하자, 주님이 요한에게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려준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다.” 주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보좌에 앉으신 삼위 하나님께서 이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하신다. (장막을 치신다는 것은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어주신다는 뜻이리라) 성전에,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이들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다. (‘다시’ 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신 것을 보아 주리고 목마르고 상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필수과정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면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보좌 우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나로 계심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을 이룬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을 12의 제곱과 10의 세제곱을 곱한 충만한 수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열방으로부터의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적은 무리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31,21절에서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그 나라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 말씀따라 이스라엘에서 참이스라엘, 곧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자들은 충만하지만 확실히 적은 무리일 것이나 (물론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인 숫자다), 열방에서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자는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요한이 듣고 본 환상이 위로가 되는 주일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