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0

다윗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를 노래한다. 다윗이 어떻게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를 노래할 수 있었을까?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설교한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이를 베드로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말씀도 바로 깨달을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이 아침에도 구한다.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은 우편에 앉아 다스리신다. 성부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다스리신다. 주님이 다스리는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한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 (우뢰도 아니고 해가 떠오르면 사라질 새벽이슬 같다고 하신다.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해도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주께 나가야 할 이유다.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선언이다. 성자하나님은 대제사장으로 세상 임금들을 무찌르실 것이다. 세상나라를 심판하여 진멸하실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은 의인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성자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은 같은 시냇물을 마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신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에 다윗은 시냇가에 심은 나누가 되어 참여한다. 다윗의 노래다. 나도 부르고 싶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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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동번역을 읽었다.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1야훼께서 내 주께 선언하셨다.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 2야훼가 시온에서 너에게 권능의 왕장을 내려주리니,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3네가 나던 날, 모태에서부터 네 젊음의 새벽녘에 너는 이미 거룩한 산에서 왕권을 받았다.” 4야훼께서 한번 맹세하셨으니 취소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은 영원한 사제이다.” 5당신의 오른편에 주님 계시니 그 진노의 날에 뭇 왕들을 무찌르리라. 6뭇 나라를 재판하여 시체를 쌓고 넓고 먼 저 땅에서 머리들을 부수리라. 7그는 길가에서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쳐들리라. (공동번역)

3절의 번역이 많이? 다르다. 공동번역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교제에 집중한다. 주의 백성, 주의 청년이 없다. 시적인 번역으로는 공동번역이 더 자연스럽다.

 

디모데후서 4:9-22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은 디모데를 부른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이둘은 바울을 버리고 갔는지 일이 있어 갔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지금 바울과 함께 있지 않다.) 그래서 바울과 함께 남아 있는 사람은 누가가 뿐이다.

 바울은 마가도 함께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마가가 바울의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필요한지는 밝히지 않는다.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다는 것을 보아서 바울에게 남아 함께 있던 사람이 누가 혼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각자의 사명에 따라, 혹은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잠시 떠났다고 볼 수 있다. 에베소에 보낸 두기고가 외투와 책을 가지고 다시 올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것은 개인적이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주님이 그의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알렉산더를 조심하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바울의 말(복음)에 반대하던 자였다. 공적으로 복음전도를 방해한 알렉산더에 대한 일종의 저주기도다.
대신 처음 재판정에 섰을 때 개인적으로 자신을 변호해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자비의 기도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허물로 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주님이 함께 계셔서 자신에게 힘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힘으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전도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자의 입과 같은 고난속에서도 자신을 구해주셨고, 구원을 이루셔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 집에 문안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린도에 머물고 있는 에라스도, 병으로 밀레도에 머물고 있는 드로비모도 언급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겨울이 되기전 서둘러 자신에게 와달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다. 으불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디모데에게 문안하며 편지를 맺는다. 주께서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축복하며. 주께서 심령에 함께 계시도록 은혜가 디모데와 디모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떻게? 믿음의 친구들을 통해,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친구들을 통해. 주님은 믿음의 친구들과도 함께 계신다.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나를 통해.
믿음의 소식을 나누는 다른 친구들을 통해.

디모데후서 4:1-8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령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나라를 다스릴 것을 믿으며 당부한다.
(하나님의) 말씀 선포하라.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해야 한다. 사람들이 듣지 않고 관심이 없어도 인내하며 가르쳐야 하고 책망과 경계로 권면해야 한다. 귀에 솔깃한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건전한 (바른)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는 설교자들을 청빙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대신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팔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힘을 다하여 완수해야 한다.
나 바울은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기 까지 믿음을 지켰다. 이제 나는 의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 시상식이 열릴 때 의로우신 심판관이신 주님이 의의 면류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믿음의 경주를 믿음으로 지킨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실 것이다.
주님의 재림과 주님이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를 두고 (믿고) 하는 바울의 마지막 유언이다. 무엇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을 소망을 남기는 유언이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받으라는 명령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은 감언이설이 아니다. 귀에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우리 욕심을 만족시키는 소리가 아니다. 복음은 진리다. 바울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의롭게 정의롭게 믿음의 경주를 마치라고 엄숙히 명령한다. 오늘 나에게도.

디모데후서 3:10-17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모든 불경건에서 돌아서라고 말하는 바울. 자신에게서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라 배우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자신이 택한 길이 박해와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주님이 자신을 박해와 고난으로부터 구해주셨다고 간증한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세상은 악한 자들과 사기꾼들이 판을 친다. 그래서 서로 속이고 속는다. 이런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비결을 바울은 성경이라고 말한다.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고 있는 그 진리를 지켜 나가시오. 그대는 어떤 사람들에게서 그 진리를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대도 기억하시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왔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할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16,17 공동번역)

멀리해야 할 불경건과 살아내야 할 경건의 길은 정말 다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길이 복음의 길이요, 복음의 길이 박해와 고난의 길이라고 전한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복음과 거리가 멀다. 복음을 말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은 말하지만 성도의 수난은 쏙 빼놓는다. 부활에 동참하는 것만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박해와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경건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어렵다. 배우고 훈련받아야 한다. 성경이 주어진 이유다.

 

디모데후서 3:1-9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때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여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휴~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에 너무 길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2장 22절에서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청춘의 욕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힘써 구하라고 권면 (명령)했다. 3장 6-9절에서는 청춘의 욕정에 무너져버린 말세를 사는 (이 시대를 사는) 그들에 대해 예를 든다. 욕정에 무너져 죄를 짓는 자들은 아무리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는 애굽의 마술사들이라고 한다. 모세를 대적했다는 것은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다는 의미요, 결국은 진리를 대적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부패하였을뿐 아니라 믿음에 관하여 버림을 받은 자들이다. 얀네와 얌브레 이름의 뜻은 ‘조롱’과 ‘지혜’라고 한다.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은 진리가 아닌 조롱받을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세대의 불경건으로부터 돌아서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에 관하여 버림을 받은 자가 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