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5:32-41] 필벌/신상

[민 15:32-41] 필벌/신상

고의로 범한죄에 대한 처벌은 “백성중에서 끊어지리라”였다. 그것도 온/전/히 끊어지리라. 이어서 안식일을 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 왔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어쩌면 안식일에 나무를 한 행동은 그동안의 관례나 관행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답을 하셨다. 법대로 해라.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치라. 온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해하였다. ‘일벌백계’의 교훈이 되었던 ‘신상필벌’의 예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계명을 기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이것도 명령으로 주셨다.)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도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39]

핵심은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40]이다. 내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은 방종하게 한다. 이 방종은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끊어지게 하는 원인이다. 백성이라면 하나님나라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순종해야 한다. 관행과 관례라고 덮어서는 안된다.

//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준행하기 위하여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아이들에게 성구암송 카드를 쥐어주고 외우게 하기는 쉽다.  그러나 준행하도록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어렵다. 내/가/ 본이 되는 수 밖에 없는데…

‘신상필벌’.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고의 하나님! 좀 극단적 사고인가? 사실 신상필벌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러니  ‘벌’보다 ‘상’을 기억해야겠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41]

이 말씀보다 더 큰 상이 있으랴!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민 15:17-31] 무엇을 들어 올릴까?

[민 15:17-31] 무엇을 들어 올릴까?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18]  또 다시 하나님의 법이 적용될 땅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2절에서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이라고 하였는데 18절에서는 ‘주어 살게하다’ 보다 함께 동행해서 데리고 가신다는 ‘인도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지만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3:3]라고 말씀하셨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할까 염려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결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땅은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해 주시는 땅이어야 한다.

또 제사 용어가 나온다. “거제” 쉽게 말하자면 제물을 높이 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였을 경우에 대한 두가지 후속 절차에 대해 말씀하신다. 먼저  공동체든 개인이든 부지중에 (고의가 아니라) 범죄한 경우다. 이경우에는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속죄하면 용서를 받았다. 그 순서가 의미있다. 먼저 화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린다. 순서가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느낌은 ‘하나님의 자녀니 (화제로 관계회복) 용서해 주세요 (속죄제로 용서받음)’ 이다. 속죄제가 먼저고 화제가 나중이라면 ‘용서해 주시면 하나님의 자녀로 지위회복’ 뭐 이런 느낌이다. 전자가 좋지 않은가?

공동체와 개인의 차이는 속죄제 제물이 숫염소 한마리에서 일년된 암염소로 바뀌는 것 뿐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법은 이스라엘백성 뿐아니라 그들중에 함께 한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문제는 고의로 범죄한 경우다. 히브리어 단어는 참 재미있다. 고의라는 히브리 단어는 19, 20, 21 에서 세번 반복된 제사 방법,  ‘거제’와 연관되어 있다.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20] 에서 ‘들어 드리다’와 ‘고의’는 같은 단어라고 한다. ‘고의범죄’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드는 (팔뚝질 하는 욕) 비방이 되니 ‘거제’ 즉 ‘하늘을 향해 헌물을 드리는 제사’의 반대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들어 올리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로 하나님의 백성중에서 끊어진다. 온/전/히 끊어진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

[민 15:1-16] 같은 법도, 같은 규례

[민 15:1-16] 같은 법도 같은 규례

패잔병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2] ‘호르마’까지 (진멸 당하기까지) 패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책망이 아닌 새로운 소망으로 다가오신 것이다.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게 사십년이라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래도 소망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첫번째가 제사에 관한 법이었다.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해야 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제사로 하나님앞에 나가는 것이었다.

// 제사 법은 어렵다. 제사 종류와 제사 방법에 따른 이름들 그리고 각각의 제사가 갖는 의미들. 그래도 ‘포도주’가 제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심히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야)  적용해야 할 법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드리는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그들과 함께 하는 이방인에게나 구분이 없었다. 유월절 규례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첫번째 유월절규례에서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으면이라는 선행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선행조건도 없다. ( 두번째 민수기에서 지킨 유월절 규례에서부터 선행조건이 빠졌다.)

이방인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는 것이 법이 되었다. “너희가 하는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14]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15]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법전이 있었다면 이방인들에게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는 대로, 즉 ‘본’이 있었다. (물론 법적용이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의미지만) 새로운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법’과 함께 솔선수범 자세가 요구되었다.

“같은 법도, 같은 규례”[16]  ‘같은 법  같은 판결’이라는 의미다. 법이 같으면 판결도 같아야 하는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에 살고 있다. 같은 법인데 다른 판결을 하는 사회다. 믿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땅은 하나님나라다. 하나님나라는 ‘같은 법도, 같은 규례’가 이루어 지는 나라다. 이 원칙을 믿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하는 대로 이 세상 사람들도 그리할 것이다.’

사십년 광야의 여정의 첫번째로 새로운 땅에서 해야 할 제사법을 가르치신 이유는 무엇일까? 광야에서는 어떻게 지내라고. 아마도 불충분하지만 새로운 땅에서 지켜야 할 법들을 광야에서부터 미리미리 연습하라는 것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땅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미리미리 살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면 이 세상 사람들도 그리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민 14:36-45] 막무가내

[민 14:36-45] 막무가내

광야 길이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열명의 정탐꾼이 하나님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를 제외한 열지파는 사실 중요한 지휘관 한명씩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이제 앞으로 사십년 동안 하나씩 불신의 댓가를 치뤄야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공지합니다.

백성들은 크게 슬퍼합니다만 또 다시 모세의 말을 자세히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휘관을 잃은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질 벌이 임박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사십년동안이라고 알려 주셨는데도 귀에 들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40]라는 엉뚱한 반응을 합니다. 이제라도 올라가면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42]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올라가겠다고 막무가내로 행동합니다.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44]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44] 입니다. 아마도 갈렙과 여호수아가 지휘관이었던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갈렙과 여호수아는 빠졌을 것입니다.) 행진할 때 가장 앞장섰던 유다지파가 빠지고 또 에브라임 지파가 빠졌다는 것은 지휘관 없이 올라갔다는 것이 됩니다. 결국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오합지졸은 싸울 수 없습니다. 고지를 점령하기는 커녕 (산꼭대기로 올라가기 전에) 아말렉인과 산간지대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을 물리칩니다. 호르마까지 이르렀다고 부연합니다. 호르마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민수기21장 3절에도 한번 더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이번 전쟁의 패배가 전멸수준임을 암시합니다.

// 45절을 다시 쓰면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막무가내의 신앙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필경은 패배입니다. 어떤 이는 기도로 하나님마저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막무가내의 나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민 14:26-35] 하나같이 -> 하나씩

[민 14:26-35] 하나같이 ->하나씩

내일부터 광야의 여정이 다시 시작됩니다.[25] 이 여정은 뿌린대로 거두는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로 불신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같이’ 죽이시는 심판은 거두셨습니다. 민족적 반역에 대해서는 용서해 주셨습니다.[20]

그러나 이스라엘 회중에 있는 ‘악’, 불신에 대해서 참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원망하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원망한 대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8]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원망했습니까? 저들은 “…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2] 이라며 불평과 원망을 했었습니다.  “이/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육십만 대군 전부가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0]  아이러니하게도 처자가 사로잡힐까봐 두려워 했던 백성들에게 그들의 어린 자식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심히 아름다운 땅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육십만 대군은 광야에서 엎드려 질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 회중의 반란에 모세와 아론이 회중앞에 엎드렸습니다.[5]  회중앞에 목숨을 내 놓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전이 되어 이제 회중들이 광야에서 엎드려지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죄악은 자식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불순종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두 엎드려 질 때까지 사십년 방황하게 됩니다. 정탐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쳐서 사십년 동안 죄의 댓가를 치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면 이렇게 됩니다.[34]

// 방황이란 단어는 가축들이 풀을 뜯으며 다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방황에 필요한 것이 목자입니다. 목자의 미움을 받으면 소멸되기까지 방황하게 되고 목자의 사랑을 받으면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하나같이’ 진멸 당하는 것은 면했지만 결국 ‘하나씩’ 뿌린대로 그 댓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씩’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같이’ (공동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