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1:16-25] ‘영’으로

[민 11:16-25] ‘영’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질릴 때까지 한달동안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토를 단다. “장정만 육십만명이나 되는 백성을 한달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요. 어림없습니다. 양과 소 떼를 잡아도, 아니 바다의 모든 물고기를 모아도 족하지 않습니다.”[21, 22]

//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애굽의 모든 지식을 다 잊어 버렸나보다. 자신들이 소유한 양과 소를 다 잡으면 부족할 수는 있어도,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아도 족하지 않다는 과장된 표현을 하다니. 쯪쯪.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라고 대꾸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손이 크신” 분이시다. 씀씀이가 후하실 뿐아니라 수단이 좋고 많다. 아니 수단이 좋고 많으신 분을 너머 “전능”하시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서의 열재양을 목격한, 아니 단순히 목격한 것이 아니라 대리자로 참여한 모세가 이것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 보다 자신의 계산이 앞섰다. 우리가 늘 범하는 잘못이다.

오늘 본문은 백성들을 불평과 원망으로 힘들어서 차라리 죽기를 구하는 [15] 모세에게 조력자 70명을 세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한다.  노인들 중 장로와 지도자가 될만한 칠십명을 모으라고 하셨다. 사실 ‘노인’과  ‘장로’는 같은 단어다. 그러니 노인 중의 노인을 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보다 젊고 힘있는  참모들을 조력자로 생각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들 칠십인인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무엇으로? ‘영’으로! 하나님의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칠십 노인들에게도 모세에게와 같이 ‘영’을 임하게 하셔서 예언하게 하셨다. ( 오래는 하게 하지 않으셨다고 끝맺는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죽음으로 면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불평과 원망을 함께 들어 줄 칠십명의 노인들을 세우셨다. 모세는 어쩌면 함께 ‘권위’로 불평과 원망을 억누를 참모들을 원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불평과 원망을 감내할 참모들을 주셨다.

사람의 손이 크면 얼마나 클까? 아무리 후하고 수단이 좋고 많아도 하나님 앞에 서면 손이 짧은 정도가 아니라 ‘마른 손’과 다름 없다. 마른 손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