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5:11-31] 의심의 법

[민 5:11-31] 의심의 법

공동체를 허무는 것은 내분이다. 그래서 내분의 원인을 제거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 그것도 부부관계이다. 따라서 “의심의 법”은[29,30] 부부간의 분열을 해소해 주는 법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정결케 하는 법이다.

아내의 성적일탈도 죄요, 남편의 의처증도 가정을 분열시키는 죄다.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한 법이 의심의 법이다. 제사장이 법대로 진행하면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31]

아내는 결백을 입증받든, 법에 따른 저주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더 이상 의처증의 죄에 머물지 않게 된다. 결백한 아내의 경우 임신으로 보상 받는다.

// 그럼 의부증이 있는 가정은?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마5:28 새번역] – 남자들이여 쓴물을 아멘 아멘하고 들이킬 자신이 있는가?

부부간에는 부정 행위도 없어야 하고 의심도 없어야 한다.

[민 5:1-10] 안과 밖

[민 5:1-10] 안과 밖

진영 안과 밖의 차이는 무엇일까? 안은 중심이 있고 밖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영 가운데에 거하셨다.[2] 이때 가운데라는 단어는 단순히 안 (in) 이라는 의미보다는 중심(centre)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포함하는 것 같다. 진영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회막을 중심으로 배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영 밖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닿지 않는 곳은 아니니다. 그러나 통치의 대상인 그의 백성이 머무는 곳이 진영(안)이다. 안과 밖의 차이는 통치를 받는 백성이 머물러야 할 곳과 머물러서는 안되는 곳의 차이다.

그런데 백성중에서 진영 밖으로 내보내야 되는 자들이 있었다. 나병환자, 유출증 환자,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부정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한 대상인데 진영밖으로 내보내 졌다는 사실은 나를 암울하게 한다. 저들이 뭘 잘 못했단 말인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나름 이해한다면 저들은 진영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군사로 계수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레위인이었다면 회막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광야 공동체는 진영이라는 ‘군사적’공동체 였고 저들은 그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방해가 되는 환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 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 거하느니라.”[3]

// 처음으로 ‘여’자가 언급되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건지 아닌지는 내 삶에 중심이 있는 지 없는 지로 판가름 난다. 중심없이 사는 사람은 진영 밖에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으니 하나님나라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진영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내 삶의 중심이시다. 구별되게 살아야 할 이유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영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지경을 넓히라는 것이다. 밧줄을 중심과 내 허리에 동이고 나가야 한다.

진영 밖 사람들에게도 중심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한다.

[민 4:34-49] 3050

[민 4:34-49] 3050

레위인 중 회막일에 참여할 인구를 조사하였다.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이번에는 장유유서의 순서가 아니라 회막 가장 안쪽에서 성소의 물건을 다루는 고핫자손부터 계수하니 총 2750명이었다. 회막 덮개 등을 운반하는 게르손 자손은 총 2630명, 마지막으로 회막 기둥 등을 운반하는 므라리 자손이 총 3200명이었다. 그래서 모두 8580명이었다. 일개월 이상 레위인의 약 40%에 해당한다. 눈에 띄는 것은 므라리 자손은 절반이상이 3050에 속한다는 것이다. 음

오늘날 경제활동인구는 보통 만 14세부터로 본다. 유대인은 만 13세 (혹은 12세)부터 성인 대우를 한다. 물론 이 유대 전통은 14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니 구약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도 다른 지파의 군복무 나이를 스물이라고 했으니 레위인들이 직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파의 젊은이들보다 십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십년을 더 기다린다고 해서 그동안 취업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자신의 직무는 결정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입사후 보직이 주어진 후에도 실제 일에 투입되는 것은 10년차라는 거다. 오매~~

하나님의 일은 창의성보다는 순종을 요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직무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소경놀이의 술래가 되라는 것이다.

[민 4:1-33] 소경놀이

[민 4:1-33] 소경놀이

어릴 때 소경놀이를 해 보았을 것이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무엇을 찾거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놀이다. 술래가 눈을 가리면 주위에서 말로 소리로 술래를 인도한다.

오늘 본문 회막을 옮기는 일은 소경놀이와 비슷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술래의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 물건을 덮고 여러 술래들을 (고핫 자손) 제사장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 지시한다는 것이다. (쓰고 보니 많이 다르다.)

회막을 옮길 때 성소안과 성소안의 물건은 보아서도[20] 안되고 만져서도[15] 안된다. 이 직무를 담당한 고핫 자손은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의 지시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내 뜻과 내 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불순종의 댓가는 죽음이다.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회막의 다른 부분들을 옮기는 직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핫 자손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 그 자체다.

서른부터 쉰살. 레위인들은 서른이 되기까지 뭘했을까? 자기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취준생의 고뇌는 없었겠지만 혈기왕성한 이십대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하면 답이 없기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쉰이면 정년퇴임이다. 그렇다. 인생의 황금기가 직무를 담당할 시기다. 젊음의 어설픔이나 장년의 완숙함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거나 지나치다.

술래. 오늘날로 하면 순찰병이다. 병이면 지휘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면 술래나 (레위인) 지휘관 (제사장) 모두 소경놀이의 술래가 된다.

[민 3:40-51] 돈으로 대신

[민 3:40-51] 돈으로 대신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은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출 13:1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것을 세라고 하신다. 태어난지 한달이 넘은 장자의 수가 22273명이다. 장자대신 레위인을 자신의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제 계수한 레위인 수는 22000명이니 장자수가 273명이 더 많다. 그래서 레위인으로 대신할 수 없는 273명 분은 돈으로 내라고 하셨다.

// 레위인 수는 게르손(7500), 고핫(8600), 므라리(6200) 다 합하여 22300 명인데 정작 합산하여 22000 명으로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고핫자손의 수 8600명은 8300명을 잘 못 받아 적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론집안 300명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무리 주석을 뒤지며 따져보았자 정답은 모른다. 그냥 번역된 성경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속전(돈으로 대신함)은 한명당 5세겔씩 총 1365세겔이다. 세겔단위도 일반 세겔과 성소 세겔이 달랐나보다. 성소세겔로 하라고 하신다. (주석에 의하면 성소 세겔이 더 가치가 낮은 것으로 나온다.) 어떤면에서 백성에게 부담이 덜되는 쪽으로 적용했다고 할까? 그리고 이 속전의 금액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아 앞에서 언급한 300명의 차이가 아론집안 300명 제외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 속전을 내는 273명은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은 제비 22273개를 만들고 그중 273개에는 꽝을 넣어 꽝을 뽑은 장자들이 속전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민수기의 첫부분은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령대로 하였다로 끝난다.

하여간 오늘도 명령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