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주안에서
사도 바울은 이제 ‘그러므로 주안에서’라는 안경을 끼고 에베소 성도를 본다.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방인 같이 행하지 말라고 한다.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한 몸, 즉 교회의 지체다. 그러니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이방인일 수 없다. 이방인은 생명이 없는 우상처럼 된다. 감각없는 자가되어 욕심을 따라 행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야 할 그리스도는 그런 분이 (우상이) 아니다. 대신
그리스도는 진리시다. 성도는 이방인과 다르게 진리를 듣고 진리 안에서 배운다. 진리가 아닌 옛습관을 따르면 옛사람 그대로다. 여전히 이방인이다. 바울은 은근슬쩍 육체의 할례도 옛습관을 따르는 것임을 지적하듯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옛습관을 따르면 유대인도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마음에 할롈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는 것이다.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입는다!
나는 흰 옷을 입은 날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하얀 새 옷을 입은 날에 꼭 누군가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한다. 염려했던대로 짜장 얼룩이 묻어서 집에 온다. 아무리 조심해도 짜장면 먹고 검뎅이 자국 없이 집에 온 기억이 거의 없다. 입가에 묻은 것은 닦으면 되는데 옷에 묻은 것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 새옷이 헌 옷이 된다. 이렇듯 새사람을 입어도 옛사람이 되기 쉽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는 새사람을 입는 것을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라고 표현한다.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복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한다.
흰 옷을 입으면 짜장면이 묻을까 조심하는데 그리스도로 옷입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