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받은 자
새사람을 입은 자,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는 사랑을 받은 자다. 요셉에게 채색옷이 입혀졌듯이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이 입혀졌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새사람, 그리스도로 옷입혀졌다. 그러니 사랑받은 자다. 하나님의 자녀다.
사랑받은 자녀는 부모를 본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바울도 성자하나님을 본으로 삼는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가장 큰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기위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한다. 음행, 더러움, 탐욕은 모양도 버려야하고 음담패설을 입에도 담지 않는 것이 성도에게 마땅하다. 대신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음행, 더러움, 탐욕은 우상숭배다.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수도, 그리스도로 옷입힐 수도 없다.
음행, 더러움, 탐욕은 새사람을 입은 사람이 아닌 불순종 하는 사람들, 옛습관을 따르는 사람들, 결국 우상숭배자들이다. 이들과 함께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파트너가 되지 말라는 뜻이니 동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심판대에 설 때 오른편 양에 속하고 왼편 염소무리에 들지 말라는 것이다. 줄을 잘서야 한다. 어렵지 않다.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면 쉽다. 내 이름을 부르시는 선한목자의 소리를 따라가면 된다.
선한목자의 음성을 아는가?
//사족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들이 너의 흰 빛 시샘하니
맑은 물에 깨꿋히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이 지은 ‘백로가’를 현대문으로 옮겼다. 이성계를 방문하지 말라고 모친이 부른 노래라고 전해진다. 방문울 마치고 돌아오던 정몽주는 이방원의 ‘하여가’ 에 ‘단심가’ 로 답하고 결국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다.
요즘 세상가치는 이방원 편이 우세한 듯하다. 그러나 내가 충성해야 할 (본받아야 할) ‘임’ 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