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

죽음을 이기는 믿음, 더 큰 믿음인 순종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대성통곡하는 것은 구약의 전형적인 회개자의 모습이다. 모르드개가 이랬고 각지방의 유다인들이 이랬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에 (아마도 왕후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를 물었었다. 제국 왕후의 숨통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베옷을 입은 모르드개는 화려한 대궐에 입궐할 수 없었으니 에스더는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는 시녀와 내시편에 입궐할 수 있는 의복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는 받지 않았다. 모르드개 자신이 하나님과의 숨통을 놓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에스더는 하는 수 없이 내시 하닥을 불러 모르드개를 만나 자초지종을 알아오라고 명하였다. 대궐 앞으로 나온 하닥에게 모르드개는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그리고 유다인을 멸하라는 조서의 사본을 에스더에게 전달하고, 에스더로 하여금 왕에게 나아가서 유다인을 구원을 부탁하라고 말했다. (굳이 하만이 언급한 은 일만달란트의 정확한 액수도 알려 준 이유는?)

하닥이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의 말을 전하자 에스더는 하닥편에 왕후로서의 자신의 처지와 궁전의 법도를 전한다. 처녀를 다시 모집한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부르지 않은지 이미 한달이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나아가면 죽거나 왕의 은혜를 입어야 사는 자신의 연약함을 토로하였다.

모르드개는 하닥편에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며 도전한다. (놀랍게도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절대적 유일의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 시킨다.) 유다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 곧 에스더 자신과 가문을 구하는 길이라고 덧붙인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를 위한 나의 희생은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교회의 지체된 나를 위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은 지난 에베소서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된 것처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다.

에스더는 마음을 정하였다. 자신을 포함하여 수산에 있는 유다인들이 삼일동안 금식기도를 한다음 궁전의 법도를 어기면서라도 왕에게 나가기로.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은 에스더의 마지막 소식을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순종했다.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이전까지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숨통이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절대적 유일의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순종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숨통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것도 믿음이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해 죽는 /순/종/은 더 큰 믿음이다.

오늘도 하나님나라를 소망만 하지 말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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