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8

에스더 8장

하루 해가 참 길다. 그 날에 제 발 저린 왕은 에스더에게 ‘보상’을 한다. 우선 (총리 관저)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다. 에스더가 자신과 모르드개의 관계를 밝히자 왕은 모르드개를 불러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주었다. 왕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개인적인 관계는 이렇게 극적 반전으로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에스더의 간청중 ‘나의 목슴을 살려주십시오’는 해결되었어도 ‘나의 민족을 살려주십시오’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악인은 제거 되었어도 ‘악인의 꾀’는 여전히 위협으로 남아 있었다. 에스더는 다시 한번 왕에게 나가야 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왕은 에스더를 향해 금 규를 내 밀었다. 에스더는 하만이 쓴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의 조서는 철회될 수 없다. 왕은 이미 하만을 사형시키고 하만의 지위를 모르드개에 주었으니 (하만에게 주었던 어느 ‘소수민족’이든 벌할 수 있는) 조서를 왕의 이름으로 다시 쓰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 주도로 작성되었다.

조서의 내용은 유다인들에게 유다인들을 치려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만의 조서는 근 일년 후를 바라보고 포고되었고 모르드개 조서는 하만의 조서가 발표된 후 두달정도 지났으니 아달월 (12번째 달)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아홉달 정도의 시간이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러시아 월드컵까지보다 더 길다.) 그러나 인도에서 구스 (아라비아반도?)까지 이메일을 보낼 수도 전보를 칠 수도 없었다. 급했다. 유다인들의 준비기간이 대적들에 비해 두달이나 뒤쳐졌던 까닭이다. (하만이 제비뽑아 정한 날도 조서를 전달하고 유다인들을 진멸한 준비를 위한 기간이 충분히 고려 되었으리라.) 왕은 이 조서를 왕의 일에 쓰는 날쌘 말들을 타고 빨리 전하도록 했다.

모르드개는 새옷을 입었다. 재가 묻은 굵은 베옷을 벗고 푸르고 흰 세마포 (가는 베 겉 옷)를 입었다. 마치 바로가 자기의 인장을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 (목걸이)를 걸고 자기 수레에 태웠던 것처럼. 모르드개는 조정 대신들이 입는 옷 (조복)을 입고 대궐에서 나왔다. 온 수산성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넘쳤다. 특별히 유다인들에게는 영광과 존귀함이 즐거움과 기쁨에 더해졌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사 61:3)

‘대신’은 ‘없이’가 아니다. 재 없이 화관이, 슬픔 없이 기쁨이, 괴로운 마음 없이 찬송이 아니라 재를 뒤집어 썻다가, 슬픔으로 애통하다가, 괴로운 마음으로 아파하다가 화관이 씌워지고 기쁨이 넘치고 찬송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 한국교회 어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바로 어르신들은 재와 슬픔과 괴로운 마음에서 화관과 기쁨과 찬송의 의의 나무가 되었다고 간증하시는데, 자기 자식들에게 재와 슬픔과 괴로운 마음이 닥치는 것을 대신 막아주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니 이해는 되나 자식들을 나약한, 쉽게 시들어 말라버리는 나무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성공으로, 자신들의 신앙으로 자식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불신’이 오늘 한국교회의 화를 자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술취함과 방탕함의 제국 백성들 중 이참에 유다인으로 개종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먹고 마시는 나라 백성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멀리 한국에서 들리는 소식은 오히려 가나안 성도가 는다고 하니… 교회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교회가 제국을 닮아간다. ㅠㅠ

토욜 아침이다.

에스더 7

에스더 7

6장은 (박수와 술객인) 하만의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만의 왕의 부름을 받아 잔치에 (끌려)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내시들이 부르러 오지 않았다면 세상지혜자들은 하만에게 무엇이라고 조언했을까 궁금하다.  // 우리도 언제 부르실지 모른다. 마지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더디지 않다.

왕은 하만과 함께 에스더의 잔치에 서둘러 (빨리) 갔다. 두번째 잔치에서도 술기운이 오른 왕이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면 소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드디어 ‘삼세번’이다. 에스더는 대답한다. “왕이여!” (그녀의 속마음은 하늘의 하나님을 향했을 것이다.) 그래서 본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읽을 수 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면,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간청입니다. 나의 겨레를 살려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청입니다. 나와 내 겨레가 팔려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살육당하게 되었습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종이나 여종으로 팔려 가기만 하여도, 내가 이런 간구를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한 일로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3,4절 새번역, 임금님 ->하나님, 말씀->간구)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간구에 아하수에로 왕의 입을 열어 묻게 하셨다. 감히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자가 누구냐? 에스더는 하나님의 대적이 바로 악한 하만이라고 대답했다. 하만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하수에로 왕도 잔치자리에 (심판석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술기운이 확 깼다. 왕인 자신이 하만에게 속아서 (종이 되어) 조서를 내렸다는 것에 스스로 화가나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은 화를 식히기 위해 후원으로 나갔다. 이 일을 어찌 할꼬.

하만에게 있어서 구원의 통로는 이제 오직 에스더였다. 에스더의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 여전히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왕이 이 광경을 보고 하만을 벌할 구실을 찾았다.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시중들고 있던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가렸다. 그 시대는 얼굴이 곧 지위였고 이름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하만은 이인자가 아니다. 얼굴 없는, 아니 이름도 지위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한번만’이 안통하게 되었다.

한 내시가 왕에게 (하만을 부르러 갔을 때 보았을)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나무를 준비하였다고 하자 왕은 그 나무에 하만을 달라고 명하였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한 그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렸다. (하만에게 자신의 책임도 다 씌워버리자) 마치 자신의 수치를 깨끗하게 감추었다고 생각했는지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때야 멈췄다.

오늘 역할극 무대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하나님 역을 맡았다. 에스더의 소원도 들어주고 악한 하만에게 벌도 주고. 그러나 행간을 보듯이 세상 임금은 완전하지 않다. 하만 단독범이라고 덤터기를 씌우고 사형을 시켰다고 자신의 죄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매달 나무를 준비하셨고 아들은 그 나무에  매달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셨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에스더 6

에스더 6

유대인에게 있어 밤은 하루의 시작에 가깝다. 유대인들은 일과를 마치고 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하니 뭔가 하나님께 하루의 시작을 맡기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오늘 본문은 ‘그날 밤’으로 시작한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역사하시는 시간이다.

첫잔치를 마친 날 왕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왕조실록?을 (책이 없던 시대의 유일한 기록물이였을 것이다.) 읽게 했다. 불면의 왕은 새벽이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암살음모를 밝힌 모르드개 기사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어떤 상을 주었는지 물었고 내시(신하)들은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왕은 내시들에게 누가 왕의 뜰에 있는지 물었다. 때마침 아침일찍, 아니 새벽부터 (하만 역시 흥분해서 잠을 못잤으리라. 잔치생각과 모르드개 매달 생각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기 위해 왕께 구하러 왔다가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먼저 먹힌다.ㅋ) 왕의 부름을 받았다. 하만은 자신의 청을 구하기 전에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말았다. 그래서 아전인수격 답을 하였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을 (하만 자신이라고 생각함)  왕의 신하중 가장 존귀한 자로 (자기라고 생각못함 ㅋㅋ) 하여금  왕 같이 존귀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자충수라고 한다.

왕은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인 하만의 말이라면 시비를 따지지 않았다. 왕명을 따라 하만은 어쩔 수 없이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에 태워 수산성 거리를 다니며 이 사람은 (모르드개는) 왕이 존귀하게 하시길 원하는 사람입니다를 선포하였다.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앞으로 돌아왔으나 하만은 (모르드개을 나무에 매달라는 왕명 대신) 골치거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유불리에 대한 처세에 굉장히 빠르다. 요즘은 눈치를 세상지혜라고 하는 것 같다. 세상 지혜자인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는 하만의 운?이 다하였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하만이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 박수와 술객으로부터 (친구와 아내 세레스로부터) 액땜할 방책을 구하기도 전에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마는) 하만은 다시 잔치에 불려갔다.

내일이 주어진 이유는 오늘도 (밤에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 에스더는 내일을 기대했다.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5:8)”라는 에스더의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답변은 그런면에서 이중적일 수 있다. 내일은 왕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리이다. 그렇다고 오늘 (그날) 해야 할 일에 대한 순종을 미룬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다림 자체가  순종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급하고 바쁘다. 내일을 위해 투자하면서도 내일이 없듯이 바쁘게 산다. 그래서 정작 내일에 대해서 모른다.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니 어쩔 수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내일이 (미래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기다림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즐기는 것도 믿음이고 순종이 아닐까? 그 역사에 참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에스더 5

 

제 삼일 에스더가 왕앞에 나갔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이 열흘 채식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였던 것 처럼, 금식한) 에스더는 왕에게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다.  왕은 에스더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금 규를 내밀었다.) 일단 살았다.

나라의 절반이라 주겠다는 왕의 질문에 에스더는 왕에게 하만과 함께 잔치에 초청했다. (10여년전 왕의 잔치초대에 응하지 않아 폐위된 와스디를 기억하자.) 에스더는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참석해 달라고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며, 하만과 함께 초대함으로 보다 공식적인 잔치로 승격시켰다. (하여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한 왕은 술김에 다시 한번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에스더의 소원을 물었다. 에스더는 내일 한 번 더 잔치에 하만과 함께 참석해 달라고 초대했다. 내일 소원을 말하겠다고 답했다. 에스더도 ‘삼세번’을 의식했었나. 왕의 마음을 확실히 돌려놓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신중했다.

왕과 함께 잔치에 참석한 하만은 교만을 너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았다. 우쭐한 마음으로 잔치에서 돌아오면서 하만은 대궐 문앞에서 (세리처럼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만히 앉아있는) 모르드개를 보고 마음이 상했다. 집에가서 일단 친구들과 아내를 불러 자랑질부터 했다. 그러나 내일도 왕빼고 자기 혼자만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모르드개 때문에 잔치분위기를 망친다고 불평했다.

남존여비, 여필종부는 지나간 허언이다. (하여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하만은 그의 아내 세레스와 친구들의 조언을 따른다.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매달라고 청하라.’ ( 왕이 소원을 말하라고 한 대상은 에스더였는데…) 하만은 그 조언을 좋게 여겨 모르드개를 매달 나무를 우선 세웠다. 자기 만족을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 오늘날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들과 다름이 없다. 악해도 너무 악하다. 준비부터 악하다.

// 어전의 뜰, 잔치자리, 대궐앞, 하만의 집. 장소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 다르다. 이세상은 세상법을 어겨가면서도 도전해야 할 어전의 뜰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을 초대해서 삶을 나누는 잔치자리이기도 하며, 세상의 비난을 받으나 묵묵히 신앙을 지켜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레스를 (황금을) 따르는 하만의 집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세상법과 타협하며, 잔치자리에서는 취해 버리며, 불법을 자행해 세상의 비난을 받는, 만몬신을 따르는 하만의 집처럼 되어버렸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니 에스더보다 세레스가 더 많은 세상이 되었기 때문인가?)

교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아침의 아픔이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나와 내 자식이 잘 된다면 세상의 악함에 묻어가도 된다는 생각, 좁은 길 대신 남들이 다 가는 넓은 길로 가겠다는 생각.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도 흥하여야 하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소서.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나를 초대하신 분이 누구신지, 누구와 함께 초대 받았는지, 잔치에 입고갈 예복(삶)은 있는지 더 깊이 생각하는 하루를 기대하며 또 다시 마음에 새기는 구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에스더 4

죽음을 이기는 믿음, 더 큰 믿음인 순종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대성통곡하는 것은 구약의 전형적인 회개자의 모습이다. 모르드개가 이랬고 각지방의 유다인들이 이랬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에 (아마도 왕후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를 물었었다. 제국 왕후의 숨통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베옷을 입은 모르드개는 화려한 대궐에 입궐할 수 없었으니 에스더는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는 시녀와 내시편에 입궐할 수 있는 의복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는 받지 않았다. 모르드개 자신이 하나님과의 숨통을 놓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에스더는 하는 수 없이 내시 하닥을 불러 모르드개를 만나 자초지종을 알아오라고 명하였다. 대궐 앞으로 나온 하닥에게 모르드개는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그리고 유다인을 멸하라는 조서의 사본을 에스더에게 전달하고, 에스더로 하여금 왕에게 나아가서 유다인을 구원을 부탁하라고 말했다. (굳이 하만이 언급한 은 일만달란트의 정확한 액수도 알려 준 이유는?)

하닥이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의 말을 전하자 에스더는 하닥편에 왕후로서의 자신의 처지와 궁전의 법도를 전한다. 처녀를 다시 모집한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부르지 않은지 이미 한달이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나아가면 죽거나 왕의 은혜를 입어야 사는 자신의 연약함을 토로하였다.

모르드개는 하닥편에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며 도전한다. (놀랍게도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절대적 유일의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 시킨다.) 유다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 곧 에스더 자신과 가문을 구하는 길이라고 덧붙인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를 위한 나의 희생은 공동체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교회의 지체된 나를 위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은 지난 에베소서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된 것처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다.

에스더는 마음을 정하였다. 자신을 포함하여 수산에 있는 유다인들이 삼일동안 금식기도를 한다음 궁전의 법도를 어기면서라도 왕에게 나가기로.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은 에스더의 마지막 소식을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순종했다.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이전까지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숨통이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절대적 유일의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순종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숨통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것도 믿음이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해 죽는 /순/종/은 더 큰 믿음이다.

오늘도 하나님나라를 소망만 하지 말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순종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