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1-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대학생 때 어느 여름수련회 주제였다. 어느 종교가 고난을 받으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떤 종교가 함께 어려움을 겪자고 제안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그런 종교는 없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도 결코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수련회 주제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를 설교한다고 해도 그 고난은 복의 과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은 복음도 아닌 복만 남는다.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함께 어려움을 겪자고 권면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결과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 것이라고 한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인생에 고난이 닥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누구나 고난을 피하고 싶어한다. 종교를 고난의 도피처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바울은 아들같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왜냐하면 주의 일에 동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한다. 바울은 이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길, 사도의 삶을 산다.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도 유언으로 이 생명의 약속을 상속하는 것이다. 편지지만 유언장이나 다름없다. 바울은 자신이 누렸던, 누리고 있는, 그리고 영원히 누릴 은혜와 긍휼과 평강으로 편지한다.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가?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를 이은 믿음을 감사한다. 디모데가 조상으로부터 받은 믿음, 즉 청결한 양심과 눈물의 기도와 거짓없은 믿음을 생각하며 감사한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 믿음이 디모데에게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감사한다. 바울은 이것을 디모데가 바울 자신의 믿음도 상속받을 자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울이 상속하고 싶은 믿음은 청결한 양심과 눈물의 기도와 거짓없는 믿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을 더하는 것이다. 한발 더나아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달 울 첫째 아들 고등학교 졸업 만찬에서 나는 아들에게 손해봐라, 낮아져라, 겸손해라,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편에서라,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들을 사랑하면 세상을 (천하를) 얻게 된다고 권면했다. 솔직히 나는 이것들을 아들에게 상속할 위인이 못된다. 그러나 울 아들은 ‘복음을 위한 고난’을 상속해 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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