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9-18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다. (9) 이것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어야 하는(8) 이유다. 구원해 주시고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셨다는 것이다.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라고 부르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실은 죽음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시는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 은혜는 이미 (영원) 창세 전에, 즉 다시말해 시간 세계가 있기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해 계획된 것이다. 이 은혜의 계획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밝히 드러났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이 곧 복음이요 생명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고 가르치는 자로 임명을 받았다고 구원받은 자신의 거룩한 부르심, 즉 바울 자신의 소명을 디모데에게 말한다. 바울 자신은 이 소명을 따라 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고난받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바울은 확신가운데 말한다. 자신을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신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그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아들같은 디모데에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바울 자신이 가르쳐준 말씀을 따라 살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께서도 도우시는 일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맡겨진 거룩한 부르심, 즉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을 지켜야 한다. 이 순종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두 사람의 이름까지 디모데에게 들먹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아니다. 바울과 함께한 사람도 있다. 오네시보로. 바울 정도가 되면 주님의 힘으로만 살 것 같은데 오네시보로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는 여러번 나에게 용기를 붇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에 와서도 자신을 만나 주었다고 한다. 바울은 오네시보로 집에, 오네시보로에게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자비를 내리시기를 바란다고 오네시보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디모데와 나눈다. 바울은 디모데 역시 에베소에서 행한 오네시보로의 봉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구원받은 자,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진 자는 거룩한 부르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로 죽는 것이다. 아기가 모태에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면, 거룩한 부르심은 아기가 울고 스스로 호흡하고 자라는 것이다. 아기가 모태에서 나왔는데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면 결국 사산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부르심, 선한 것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살아도 죽은 것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