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왕하 4:27)

자신의 품에서 자신의 아이가 죽었으니 그 어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평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영혼이 괴로왔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평안을 구하나 평안은 댓가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참 평안을 줄 수도 없다. 소위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다. 주님 앞에서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오히려 영혼까지 괴로와 하는 사람을 품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도리다. 우선은 함께 괴로와 하는 수 밖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께 겸손히 도움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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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든 문제에 항상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숨기신 것도 있다. 그러니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께 겸손히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선은 괴로움을 받아 주어야 (이해 못해도) 한다. (게하시처럼) 우선 물리치고자 해서는 안된다.

 

 

 

열왕기하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이러고 산다.

한번은 내가 한국에 들어왔더니 거기에 여러 귀한 분들이 (각각) 나를 간권하여 음식을 사 주셨으므로 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분들을 (각각) 만났더라.

삼년만의 한국방문은 이렇게 식탁의 교제로 차고 넘친다.

모두에게 감사.

열왕기하 3:1-12

여로보암과 아합의 길을 따른 여호람. 아합의 사후 급격히 기운 이스라엘에 대해, 새끼 양 십만마리의와 숫양 십만마리의 양털을 조공바치던 주변 모압이 독립을 선언하자 여호람은 분단 된 형제국가 유다와 연합하여 모압을 치기로 한다.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은 에돔과 연합하여 에돔광야 길을 따라 모압을 칠 예정이었으나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유다왕 여호사밧이 에돔 광야 길을 택한 이유가 에돔을 동참시켜 연합군의 수를 불릴 인간적 꾀를 따른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물을 구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돌이켜 주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에게 여호와께 묻자고 제안하고, 여호람의 신하들은 엘리야를 수종들던 엘리사가 있다고 보고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주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사에게 있다고 했다. 세 왕은 엘리사를 찾아갔다. (신하를 보내 엘리사에게 오라고 명하지 않았다.)

돌이켜 주님께 묻는 것도 늦지 않다. 내 꾀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열왕기하 2:15-25

/1/

선지자 수련생들은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머무는 것을 보고 엘리사를 선지자 수련의 주인? 으로 모셨다.

선지자 수련생 무리는 엘리사를 설득하여 엘리야 시체를 찾고자 했다. 엘리사의 만류에도 수련생들은 엘리사가 부끄럽도록 간청하였다. 엘리사는 마지못해 허락했으나 수련생들은 헛수고만 했다.

주 하나님이 부끄럽도록 강청하는 기도도 헛수고다. 주님이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강청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엘리야가 남긴 것은 성령의 역사, 말씀의 능력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취한 엘리야의 겉옷에 능력이 있는듯 다른 소품을 구한 수련생들의 잘못된 열심이었다.

/2/

여리고 성읍의 물. 성읍은 풍수지리가 좋으나 물 자체는 나빴다. 성읍 사람들은 엘리사에게 물문제를 제기했다. 엘리사는 소금을 물이 나오는 근원에 뿌려 나쁜 물을 좋은 물로 바꿨다.

엘리사가 뿌린 소금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물을 고쳤다’는 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렸다. 엘리사는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했다. 곰이 나타나 조롱하던 아이 사십이 명을 찢었다. 엘리사는 갈멜을 거쳐 사마리아로 겄다.

엘리사의 저주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에 힘이있다.

열왕기하 2:1-14

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에 태워 데리고 가셨다.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사를 붙좇았다. 결국 엘리사는 엘리야의 선지자 지위를 상속 받았다. (곳곳에 선지자 수련생 (제자) 들이 있었고 그들도 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었다.)

엘리사는 (승천하면서) 엘리야가 흘린 겉옷을 취했지만 엘리야의 능력을 받지는 못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하나님께 능력을 구했을 때 엘리야의 능력이 임했다. 능력은 엘리야나 엘리야의 소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 있다.

선지자 수련생은 무엇을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일차적 예언은 주어진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전하는 것이다. 예언이 계속되던 때에도 주어진 말씀을 공부하는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