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는 철저히 자기주도로 하나님의 신탁을 이용했다. 신탁에 없는 남유다 아하시야 왕도 죽였다. 개들이 이사벨을 먹고 이사벨을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는 신탁을 들었음에도 이사벨을 장사하려고 했다. 물론 주님은 신탁을 이루신다.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을 멸절하는 것도 예후는 자기 주도로 진행한다. 그는 왕이 되리라라는 신탁을 받았으면서도 백성의 인정을 받으려고 협박하고 회유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아합의 아들 칠십명을 죽였다.
예후는 요람 왕가에 문안을 오던 남유다 왕 아하시야 형제 일행 42명도 죽였다. 아하시야 왕을 죽인 것과 함께 이것도 신탁에 없는 내용이다. 예후는 신탁을 이용해 철저하게 자기 사람을 만들어 갔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에게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예후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한 ‘자기 열심’으로 신탁을 이행했다. 사관은 아합가문의 심판에 대해서는 예후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을 이루었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예후가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위해서는 자기 주도로 일관했다. 예후에 대한 나만의 편견일까?
‘나의 열심을 보라’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이다. 하나님의 열심에 굴복하고 순종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