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에서 무려 42년을 다스린 여로보암 왕 시대에 남유다에서는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어 52년간 다스리게 된다. 아사랴에 대한 평가역시 선왕 아마샤와 다르지 않다. 아사랴가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따랐으니 당연한 결과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 판박이 평가다. 사관은 주님이 아사랴를 치셔서, 아사랴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헤서 왕자 요담을 통해 통치했다고 마무리 한다. 본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주님이 나병으로 아사랴을 치셨다는 것은 아사랴의 교만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세의 누이 미리엄도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다가 나병이 걸렸었다. 나병이 아사랴를 겸손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병으로 말미암은 겸손이 52년이라는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음~~
아사랴 제 38년에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42년의 통치가 마감되고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어쩌나 예후의 4대손이다. 스가랴 역시 부친 여로보암 2세와 동일한 평가를 받는다. “…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그러나 부친 여로보암과 달리 6개월만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의 반역에 죽임을 당한다. 사관이 살룸의 통치기간을 아예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살룸은 바로 므나헴의 반역에 죽었을 것이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망할 때까지 브가히야에게 왕위를 물려준 므나헴을 제외하곤 암살과 쿠데타의 연속이다.) 므나헴의 평가에서 보듯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은 결과다. 사관은 /평/생/ 이라는 단어를 덧붙인다. 므나헴은 백성들을 착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침으로 이스라엘을 유지한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잠29:2).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돈의 도움으로 평화를 살 수 없다. 북이스라엘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 왕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다. 족보는 더군다나 어렵다. 이름도 섞여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든 모든 왕들은 주님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다스리신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교만해서는 안된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해도 42년동안 다스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후대는 반년만에 망할 것이고 그 나라는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다스림은 우리로 순종의 자리에 나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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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남유다 아마샤와 아사랴. 둘 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 아마샤는 에돔에 대한 승전으로 교만하여 북이스라엘에 덤비다가 패전하고 재위29년만에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들 아사랴도 여호와께서 나병으로 치신 것으로 보아 교만했으리라. 그러나 나병으로 겸손해졌을까? 무려 52년동안 남유다의 전성기를 이어간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 스가랴. 둘 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 여로보암은 42년을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아들 스가랴는 (예후의 4대손이다) 반년만에 반역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반정에 반정을 거듭하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쇠락한다.
그아버지에 그아들이다. 그러나 삶의 굴곡은 아버지와 아들이 많이 다르다.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나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다’라는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