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아하스. 요시야가 애굽 바로 느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위를 계승하나 여호아하스는 요아스의 길을 가지 않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사관은 이것을 그의 조상들이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적는다. 사관이 남 유다 최악의 왕으로 꼽는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라고 할 때도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라는 수식은 붙지 않았다.
잠시 건너뛰어 여호아하스를 이은 여호야김을 평가할 때도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라고 적었다.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와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는 유다가 멸망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호아하스는 애굽 바로 느고에 대적한 요아스를 이은 왕이라 느고가 애굽으로 잡아가고 만다. 대신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형 (여호아하스 보다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두살 위다)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개명시켰다. 엘리아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언약에 따라 주님을 섬기고자 했던 요시야는 아들에게 엘라아김 (창조주 하나님이 세우셨다)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바로 느고는 여호야김 (여호와가 세우셨다)라고 불렀다. 아마도 느고가 창조주 하나님을 유다 민족 신으로 격하시키고자 했을 수도 있고, 이방 느고를 통해 주님이 하신 일임을 교훈하고자 했을 수도 있겠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에서 죽고 만다.
여호야김은 느고에게 은과 금을 바쳤다. 느고에게 은과 금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애굽에 의해 세워진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공격에 바벨론의 속국이 되어 섬겼다. 그러나 세해가 지나자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에 반기를 들었다.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애굽에 대한 충성일까 아니면 은과 금을 바친 애굽에 마음을 둔 결과일까? (그게 그거) 하여간 여호야김은 화를 자초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유다 조상들의 모든 행위, 유다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주님은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고자 하신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사관은 애써 이 모든 일을 자초 한 것을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고, 므낫세가 무죄한 피를 흘린 것을 주님께서 결코 용서하실 수 없어서라고 므낫세를 희생양을 만들었지만 말이다.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쳐 의지한 애굽은 다시는 국경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사관은 적는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속에서 흐름을 정확하게 읽지 못한 유다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유다는 이렇게 망해 간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했을 때 의지해야 할 것은 주님이시다. 눈을 들어 산들을 보아도 우리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주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