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4:8-25:7

여호야긴.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선은 대를 잇기가 힘든데 악은 정말 잘 넘어간다. 여호와 보시기에 계속 악을 행하자 주님은 바벨론으로 다시 심판하신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직접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야긴을 잡아갔다. 느부갓네살 왕은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집어내고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 하였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 특별히 지도자, 용사, 장인, 대장장이 등등을 포로로 잡아 갔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비천한 자만 남았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 그러니깐 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이름 뜻 여호와의 선물) 대신 왕으로 삼고 이름을 시드기야 (여호와의 의로움)으로 바꿔버렸다. 느부갓네살은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도구로써 유다를 심판했다.

이쯤되면, 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을 통해 뭔가를 배웠어야 할 시드기야가 아닌가? 그런데도 시드기야도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주님대신 바벨론에 의해 꼼짝달싹 못하는 애굽을 의지한 것이다. 사관은 주님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으로 주님 앞에서 쫓아내실 때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예루살렘은 이년을 못버텼다. 예루살렘 성에 양식이 떨어졌다. 성벽이 파괴되자 시드기야는 밤중에 성을 버리고 아라바 길로 도망 쳤으나 바벨론 군대에 의해 여리고 평지에서 잡혔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는 두눈을 빼고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 떠오르는 생각

//1 성전은 금광인가? 앗수르에게 퍼주고 애굽에게 퍼주고도 뭔가 남은 게 있었나보다. 엉뚱한 비유를 든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퍼주고 또 퍼주어도 또 퍼줄 사랑이 있는 곳. 그런데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이름뿐이 교회는…

//2 비천한 자만 남았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님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 (시 41:1)

//1+2 교회는 퍼주고 퍼주고 또 퍼주어 가난해져야 한다. 먹고 마시는 세상나라가 아닌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나라가 교회 것이기 때문이다.

//3 주님은 느부갓네살을 통해 여호와의 선물 (맛다니야)를 여호와의 의로움 (시드기야)로 개명시켰다.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았으면 의롭게 사는 것이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 의로움 없이 은혜만 누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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