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그 때에 히스기야는 병들었다. 그것도 중병에 걸렸다.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주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셨다.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왕으로서 인수인계를 하여라.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주님께 기도했다. 다른 것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의지다. 심지어 선지자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산헤립의 편지를 펼쳐놓고 주님께 기도했던 히스기야는 자신의 마음을 찢고 (마음을 펼쳐놓고)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동안 흐느껴 울었다. (3 새번역)]
생명의 위로가 아닌 죽음의 선언을 전했던 이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도 기도했으리라. 그리고)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히스기야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하셨다.
[네 조상 다윗을 돌본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를 고쳐 주겠다. 사흘 뒤에는 네가 주의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서,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주님께서 히스기야를 고치시고 사흘 뒤에는 성전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다는 증거를 요청했다.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로 해 그림자를 십도 앞 혹은 십도 뒤로 움직이게 할 수 있으니 히스기야에게 선택하라고 말했다.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나는 증거를 요청했다. 이사야가 주님께 기도하자 아하스가 만든 해시계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났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주님은 히스기야의 살려달라는 애걸에 주님의 뜻을 바꾸셨을까? 아니 우선 히스기야는 살려달라고 애걸했을까? 히스기야의 기도문을 읽고 또 읽어도 살려달라는 애걸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진실함과 온전한 순종과 선한 일 햄함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히스기야는 어쩌면 십자가 상의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는 심정이었을 수 있다. 앗수르 산헤립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선한 구원의 손길에 대한 기도 응답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의 울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집을 정리하라’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울음이지 않았을까? 당시 히스기야에게는 왕위를 계승시켜줄 아들이 없었을 수 있다. 아니면 어렸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들이 주님을 순종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는 집안을 정리하라’는 주님의 부탁을 이룰 수 없으니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십오년을 더 살게 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은 ‘너는 집안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기한을 주신 것이다. 주님이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주신 대답을 보면 확실하다. 주님은 자신을 다윗을 돌 본 주님이라고 소개하고, 다윗을 보아서라는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고 하셨다. 다시말하면 영원한 다윗의 위를 약속하신 주님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의 기한을 알려 주신 것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주님은 히스기야가 기력을 회복하여 ‘너는 집을 정리하라’라는 왕위 계승 준비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신 것이다.
나도 한 번 죽는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라”라고 진정으로 진정으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심판대에 섰을 때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보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많이 부족해서, 엉엉 울게 되겠지만. 오늘 하루도 주님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라고,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