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17-37

요구한 은 삼백, 금 삽십 달란트를 받아내었으면서도 앗수르 왕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했다. 이미 지난 공격에서 유다의 다른 성읍들은 초토화 시킨 후라 일사천리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것이다.

앗수르 군대는 이번에는 히스기야가 쓸 카드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히스기야를 협상테이블로 불러냈다. 히스기야는 왕궁책임자 엘리야김, 서기관 셉나, 사관 요아를 내보냈다. 앗수르 왕이 직접 온 것이 아니니 히스기야도 마지막 남은 배짱을 부려본 것일까?

앗수르의 랍사게가 선동했다. “네가 무엇을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 다시말하면 “네가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느냐?”라고 유다 협상단을 자극했다. 사관은 어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 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평가했었다. 그랬던 히스기야가 자주국방을 의지하여 유다를 요새화하였지만 이미 초토화 당한 후가 아닌가?

랍사게는 계속 조롱한다. 너희가 계획했던 자주국방은 이미 무너져 더이상 군대도 없는 주제에 말싸움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다고 애굽의 도움을 구하겠느냐? 애굽도 이미 상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애굽에 신뢰하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 것이다. 마지막 남은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 뿐이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산당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하도록 하지 않았느냐. 앗수르가 유다를 치는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뜻이다. 랍사게의 조롱은 유다말로 이어졌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는 유다 백성들이 듣고 있는 데 랍사게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나보다. 그래서 랍사게에 자신들은 아람말을 알아 들으니 유다 말 대신 아람말로 대화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랍사게는 오히려 유다말로 유다 백성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히스기야에게 속지말고 항복해라. 히스기야는 너희를 앗수르에서 건져내지 못한다. 여호와만 의지하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앗수르에게 항복하면 잘먹고 잘 살 수 있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아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신이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 무엇보다도 형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의 함락을 모르느냐? 마찬가지로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겠느냐?

랍사게의 조롱과 항복하라는 선동은 역설적으로 유다가 의지해야 할 분은 이제 여호와 한분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여호와라고 하여도 앗수르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할 수 없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랍사게의 마음 한구석에는 히스기야가 다시 여호와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삶에도 쓸 수 있는 카드는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지식도, 나의 재물도, 나의 건강도 아니다. 지식도 재물도 건강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모두 무너질 것들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도전한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느냐?

네가 무엇을 의지하느냐?

 

열왕기하 18:1-16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3,4)]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 남유다에서는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 이전의 왕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라는 반쪽 칭찬만 받았다. 그런데 히스기야에 와서 드디어 산당을 제거했다.

산당은 자신들만의 신들을 섬기는 장소, 혹은 사람이 만들어 세운 우상들이다. 히스기야는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뱀을 부수고 그냥 구리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 대신 절하는 우상의 신상들, 물건들을 제거했다.

사관은 이런 히스기야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5)라고 평가한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했다. 주님과 마음이 합한자라는 평가를 받은 다윗과 같은 평가다.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않자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함께하시며 히스기야를 형통하게 하셨다. 앗수르에게 굴복하지 않는 용기도 주셨다. 블레셋 땅을 쳐서 영토도 확장했다. 그리고 유다 성읍들을 요새화 했다.(13)

히스기야 왕, 4 년에 앗수르는 사마리아를 포위했고 삼년안에 함락시켰다. 히스기야 제 6년, 호세아 왕 제 9년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사관은 다시한번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저기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깨뜨렸으며,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순종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한줄로 정리한다.

사마리아의 포위부터 함락을 지켜본 히스기야 왕은 유다를 요새화 했다.(13) 히스기야 왕은 ‘전 유다 성읍의 요새화’만이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십년 가까이 공들인 유다 성읍들의 요새화는 히스기야 제 14년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급기야 산헤립에게 화친을 요구하고 앗수르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앗수르 왕은 은 삼백,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했고 히스기야 왕은 성전 창고의 은금으로 모자라 성전 기둥의 금칠을 벗겨서 주어야 하는 수치를 당했다.

주님과 연합했다고 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고 형통만 기다리지는 않는다. 히스기야는 주변국가와의 싸움에서 국방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유다 온 성읍을 요새화 했다. 그런데 채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앗수르의 침공을 당했고 요새화의 수고는 헛수고가 되었다.

주님의 뜻과 나의 준비, 나의 열심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히스기야 이야기가 결론나지 않아서 나의 적용도 결론내기 힘들다. 다만 ‘의지할 분이 주님이시다’라는 명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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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지 할 것인가? 열왕기 사관은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사마리아가 앗수르에게 포위되고 급기야 함락되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전 유대 성읍들의 요새화’ 정책을 추진했다. 여호와께 연합하여 주님을 떠나지 않았던 히스기야, 주님은 이런 히스기야와 함께 하시며 히스기야를 형통하게 하시고 앗수르에게 굴복하지 않을 용기도 주셨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함락당하자 히스기야는 ‘유다 성읍들의 요새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십년 가까운 요새화는 (자기 의지는)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급기야 산헤립에게 화친을 요구하고 앗수르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앗수르 왕은 은 삼백,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했고 히스기야 왕은 성전 창고의 은금으로 모자라 성전 기둥의 금칠을 벗겨서 주어야 하는 수치를 당했다.

히스기야의 요새화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물어야 한다. 주님에 대한 열심이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가? 주님이 주시는 형통이 지속되면 주님을 의지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분간하기 쉽지 않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형통할 때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왕하 18:1-16)

열왕기하 17:24-41

주님의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백성들은 앗수르로 잡혀갔다. 앗수르 왕은 대신 사마리아 여러 성읍들에 여러 민족의 이방인들을 이주시켰다. 이주민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했을리 만무했다. 주님은 사자들을 그들에게 보내 몇명을 죽였다.

사관은 사마리아에 이주한 이방인들 몇이 사자에게 죽임당한 사건을 그들이 주님을 (몰라)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방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사마리아 땅을 다스리는 신의 법을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마리아 땅신(지신)의 제사장을 데려와 사마리아 지신의 법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의 허락을 받아 사마리아에서 잡혀갔던 제사장 한명을 귀환 시켜 벧엘에 거주하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지 가르쳤다.

(사마리아에 남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귀환하여 벧엘에서 여호와를 어떻게 경외할지 가르친 제사장은 여호와 창조주를 사마리아의 지신(땅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이주해 온 각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상을 만들었다. 32절이 하이라이트다.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2)]

저들의 혼합된 종교적인 열심은 온전히 ‘자기를 위하여’ 행한 것이었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함도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관은 34절에서 바로 잡는다.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4)]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35 절부터는 아주 혼란스러운 본문이다. 사관은 사마리아의 혼합된 잘못된 종교적 열심이 역사를 기록하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다고 적는다. 사마리아에 이주한 다른 민족 이방인들에게는 야곱의 자손에게 세우신 주님의 언약이 어떻게 받아드려졌을까? 사관은 단순히 사마리아의 남은 자들이 이방인들을 좇아 행한 것을 책망하는 것일까? 사마리아 땅에 이주해 온 이방 민족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신 여호와, 이스라엘 민족신을 받아들여야 했을까? 우리 입장에서는 맞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앗수르 땅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교지에서도 영적전쟁은 항상 존재한다. (지신 수준의 싸움에서 기독교가 항상 이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출애굽 열재앙에서 보듯 아홉 재앙을 버텨낸다. 많은 경우 먼저 지치는 것이 선교사들이다.)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그들의 자자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한다. (41b)”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도 그럴 것이고 서구의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언약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서 이루신 언약을 잊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그 어떤 종교적 열심보다 중요하다. 주님을 땅의 신, 지신으로 삼아 자기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주님이라는 존재를 알거나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고 언약을 준수하는 것이다.

음 생각이 얽히는 아침이다. 보혜사 성령님 도우소서.

열왕기하 17:1-23

남유다 왕 아하스 때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오죽하면 호세아 (구원자)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러나 이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사관은 앞구절을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않았다) 강조하나 역사는 뒷부분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따라 흐른다. 호세아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은 (앗수르 조공국에서 해방?) 애굽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호세아는 앗수르 왕에 의해 감금 당하고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로 끌려가 앗수르 땅 여러 고을에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다.

사관은 이일의(이스라엘의 멸망) 이유를 열거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의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했다.  가나안에서 쫓아낸 이방사람의 규례와 이방을 모방하여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여호와를 배역하여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여호와께서 행하지 말라고 하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여 여호와를 믿지 않았던 조상들을 따라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 (우상)을 따르며 이방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다.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의 형상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겼다. 자녀들을 제물로 드렸다. 복술과 사술로 자기의 영혼을 팔아먹는 악을 행했다. 그러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시고 멸망하게 하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제 유다지파만 남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19,20절.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게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은 18절과 마지막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와 어떻게 조화될까?

만약 유다가 순종하였으면 유다의 순종으로 이스라엘 온 족속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유다의 불순종으로 결국 유다도 같은 길을 가게 된다는 예언일까?

북이스라엘이 멸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윗 왕조에서 분리시키셔서, 이스라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여로보암은  주님을 버리고 떠나 이스라엘 백성으로 큰 죄를 짓도록 만들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사관은 결론적으로 정리한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자꾸 반복해서 18~20절을 읽어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고, 그들을 그 면전에서 내쫓으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그러나 유다도 또한 그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규례를 그대로 따랐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내쫓으시고, 그들을 징계하여 침략자들의 손에 넘겨 주셔서, 마침내는 주님의 면전에서 내쫓기까지 하셨다.”(새번역)

만약 유다가 순종하였더라면, 한 지파 유다의 순종으로 북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주님의 면전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벌을 용서 받았을까? 결국 유다도 같은 길을 간다고 역사는 말한다. 다만 주님은 영원한 다윗의 위에 대한 언약을 지키셨다.

 

열왕기하 16

북이스라엘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던 베가 제 17년에 남유다에서는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사관은 “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러나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그는 직접 산당과 언덕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고 분향하였다.(새번역)”라고 아하스 왕의 삶을 요약한다.

아하스 왕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공격하였을 때, 역사적 정황상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남유다를 끌어드리려고 했지 침략전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유다를 에워쌌지만 남유다를 이기지는 못했다.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남유다가 반앗수르 연합에 참여하지 않자 아람은  잃었던 옛땅 엘랏만 회복하는데 그쳤다. 아하스는 이런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라고 아첨하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성전 곳간의 은금을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다. 앗수르 왕은 곧바로 옳거니 기회다 하면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 왕 르신을 죽였다. 아하스는 구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다.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도면을 세밀하게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그왕에 그제사장이라고 해야하나.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왕이 보내온 도면에 따라 이미 제단을 완성했다. 다메섹에서 돌아 온 아하스는 새로 만든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산당제사와 다를게 없었다. 아하스는 성전 기물들도 다시 배치했다. 제사 방법도 바꾸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에게 동조했다. 제사장 아사랴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직접 분향하려던 조부 아사랴 (웃시야)가 나병에 걸렸음도 잊었던 것일까? 사관은 남유다를 구원?한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한 처사라고 기록한다. 아하스 왕은 평생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다 죽음을 맞았다.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앗수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결과다.

왕이 직접 성전을 산당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이야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사람들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든다. 자신들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찾는다. 이름모를 신들에게 분향한다. 오늘날은 돈을 의지한다. 자식들도 돈의 노예로 만든다. 자녀들을 불태워 신들에게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기에 평안이 없음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2)